차가운 공포 속 따듯함이 느껴지는 <렛 미 인>(2008)
새하얀 눈이 솜이불마냥 포근히 쌓인 스웨덴의 한 마을, 그 차가운 눈 속에 느껴지는 따스함과 더욱 붉어지는 잔인함 속에 눈은 더 하얗게 눈부신다. 영화가 공개되고 국내외에서 극찬을 받으며 여전히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렛 미 인>은 볼수록 잔인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영화다. 비슷하게 2019년에 개봉한 스웨덴의 <경계선> 또한 소외를 다루는 판타지물이지만 그보다 더 단순하고 약간은 유치하게 느껴지는 <렛 미 인>만큼 호소력이 느껴지진 않았다. <렛 미 인>은 보면 볼수록 ‘심플하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스토리라인을 갖는다. 왕따 소년이 뱀파이어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 거기에 중간중간 엮이는 낮에 욕조에서 잠들기, 피를 다 뽑아먹지 못한 인간은 뱀파이어가 된다던지 뱀파이어의 특성을 나타내는 요소들 또한 북유럽 특유 신화적인 느낌을 더한다. 이 심플한 스토리 라인 속에서 소외를 둘러싼 인간 군상의 두 가지면을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소외는 소외를 채운다
주인공 오스칼은 이혼한 부모와 지내며 각각 만나지만 제대로 된 대화 등 관계를 깊은 형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그 외에 오스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은 없고, 특출난 성질 하나 없는 오스칼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늘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대항하려하지만 실현하지는 못하던 때, ‘너도 대들어’라고 말해주는 이엘리를 만난 것이다. 친구는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 사람으로부터 피를 만들어내는 이엘리와 친구가 되어줄 수는 있지만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오스칼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소외 속 전가되는 폭력
매번 친구들에게 깔봄을 당하던 오스칼은 이엘리가 가난한 것처럼 보이자 자신이 받았던 눈빛으로 이엘리를 내려다본다. 자신이 무시당한만큼 자신도 남을 무시하면 자신이 올라가는 줄 아는 실수. 자신의 친구가 되어준 에일리임에도 자신이 당했던 일을 해보는 오스칼이 이해되지않는 것은 아니다. 시기적으로 이엘리와 친구가 된 후, 오스칼은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에게 막대기로 상처를 내 피를 본다. 내내 당장이라도 피를 만들어 낼 수 있던 칼을 지니고 다니던 오스칼 마음에는 피를 먹기 위해 필요로 하는 이엘리와 같은 존재를 마음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피를 봐야 했던 이엘리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를 보고자 했던 오스칼의 모습은 겹쳐지기에, 이엘리는 이엘리 자체로 존재하는 캐릭터이지만 오스칼의 내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영화는 소외와 피(폭력)를 떼어놓지 않고 보여준다. 과연 폭력의 목적은 무엇일까. 결핍으로 인한 빈자리를 잘못된 힘으로 채우려는 노력은 슬프게도 뱀파이어가 없는 이 현실 세계와도 다르지 않다. 폭력 속에 소외와 결핍을 겪은 경우의 대다수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불어 너무나 안타깝게도 폭력 속에 놓인 이들과 소외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관계가 된다. 오스칼은 이엘리라는 인물 덕에 친구들의 괴롭힘을 끊어낸다. 만약, 현실판으로 이엘리가 오스칼의 내면이라면 오스칼은 무자비한 살인마가 되는 것이다. 영화는 두 아이들의 소소한 연대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중요한 지점을 엮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