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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 이도 Dec 31. 2021

<어느 가족>, 현대와 가족의 경계면에서의 마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작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가족> 원제가 되는 <万引き家族> 손님을 가장한 도둑이라는 뜻의 万引き(만비키) 가족의 한자 家族의 합성어이다. 영화 제목과 같이, 영화는  장면부터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기 위해 쇼타( 카이리 ) 화면 안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모두 아무 연고 없이 모이게 되었지만 이들은 ‘할머니' 역할을 하는 하츠에 시바타(키키 키린 ) 연금과 도둑질, 부모 비스무리한 역할을 하는 오사무 시바타(릴리 프랭키 ) 노부요 시바타(안도 사쿠라 ) 일들로 아키 시바타(마츠오카 마유 ) 유리(사사키 미유 ) 더해진  6명의 생계를 이어나간다.

-가족을 가장한 도둑들-

남의 것을 훔치는 죄에 경중을 따지는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대놓고 물건만 훔치는 도둑보다 손님을 가장한 도둑이 좀 더 나쁘게 여겨지는 이유는 상대의 경계심을 낮추는 물질적 사기뿐만 아니라 감정을 기만하는 행위가 추가된다는 것이다. 첫째 손녀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숨긴 채 죽은 전남편의 아들 부부를 찾아가 돈을 얻어내는 하츠에, 다 보여주지는 않지만 동생의 이름을 훔쳐 퇴폐업소에서 일하는 아키는 돈만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부자 간의 모습을 보며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쇼타와 부자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여동생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들킨 후 말하는 쇼타와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도망치는 오사무와 노부요가 수감되고 친부모의 정보를 알려주며 쇼타에게 끝까지 숨기려는 오사무에게 노부요는 ‘우리는 자격이 없어'라고 객관화하는 모습에 오사무의 끝없는 욕심은 파트너였던 노부요에게조차 외면당한다. 이것들은 후에 돌고 돌아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와 이들을 갈라놓는 주범이 된다.


-가족은 무엇으로 연결되는가-

‘노부요와 돈으로 연결되었지?’ 아키의 질문에 오사무는 마음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오사무와 노부요의 과거를 알고 나면 이 말은 배신감을 들게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유리를 처음 데려온 오사무에게 잘못 엮이지 말고 어서 데려다주자며 나가던 노부요는 유리에 대한 애착보다는 유리 부모에 대한 불쾌한 감정 뒤 유리를 다시 데리고 돌아온다. 첫날 밤, 자다가 오줌을 싼 유리의 옷을 잡아당기던 노부요는 유괴로 발각되는 두려움과 유리를 데리고 있고자 비밀을 지켜준다는 동료에 말에 일자리까지 포기하게 된다. 옷을 사면 폭력을 당하는 기억을 가진 유리를 안아주는 노부요의 모습에서 가족으로 포장된 이들에게 진심으로 무언가를 알려준 건 노부요와 유리뿐이 아닐까 싶다. 가족은 ‘혈연’이라는 바깥 사람들의 생각에도 이들은 그에 반하는 형태를 만들어가지만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연결의 태를 한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듯하면서 훔치는 행위로 이루어진 가족의 민낯을 모조리 드러낸다. 유리가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고, 다시 폭력에 놓여지면서, 피로 연결되었지만 온전하지않은 가족의 모습을 보며 ‘그럼에도 가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느새 관객에게 던져진 상태가 된다.


‘무언가'를 꾸준히 훔쳐 누리는 이들이지만 분명 이들에게는 이들에게 돈 없이 가질 수 없었던 것들과 돈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가족을 다루는 듯하지만 가족이란 체제를 사회가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사회가 규정하지않은 가족의 형태를 통해 현대와 가족의 경계면에서의 마찰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평범한 삶을 살고자하는 이들의 어느 하나 잘못된 것을 알지만 이해되었던 이들의 진짜 죄는 마트에서 생활품을 훔치기였을까, ‘가족’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이 누리고자 했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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