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어 퍼펙트 데이>
**영화를 다 보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입니다.(스포일러 주의)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Fernando Leon de Aranoa) / 스페인 / 2017 / 106’
최애 감독의 필모를 정주행하며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를 보고 베니시오 델 토로(Benicio Del Toro)에 빠져있던 어느 날, 당 배우 주연의 <어 퍼펙트 데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길래 잔뜩 기대하며 보았다. 120분은 거뜬히 넘기는 영화들 속에 106분은 길지 않게 느껴졌고 어두운 영화관 스크린의 검은 화면 중앙에 하얗게 떠오른 ‘A PERFECT DAY’를 볼 때, ‘꼭 다시 봐야지’라고 생각하던 순간이 잊혀지지않았다. 다시 보고싶은 영화들, 아직 보지 못한 수많은 명작들, 새로 개봉하는 신작들 속에 밀리고 밀리던 와중 드디어 다시 보게 된 <어 퍼펙트 데이>는 여전히 나에게 ‘어 퍼펙트 필름’이었을까.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1995년 발칸 부근의 요구르트와 유머로 유명한 한 동네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후유증으로 가득한 마을에 국경 없는 원조회(AID ACROSS BORDRES)로 파견된 안전 담당자 맘브루와 조력자 B가 주역을 이룬다. 한 마을에 총 3개뿐이던 우물 중 한 우물에 사체로 오염되자 이들의 임무는 ‘우물 살리기’ 다시 말해 ‘사체 꺼내기’가 된다. 첫 번째 난관은 사체를 올리던 밧줄이 끊어져 맘브루, 새로 온 위생관리자 소피로 구성된 맘브루팀, 현지인 통역사 다미르가 포함된 B의 팀으로 나누어 밧줄을 구하기로 한다. 도움을 청하러 간 UN본부에서는 군 원칙을 내세우며 황당한 이유로 거절당하고 현지인들을 찾아간 B는 끝난 분쟁에도 남은 주민들의 서로를 향한 경계심과 악감정만을 목격하게 된다. UN본부에 가는 길, 형들에게 공을 빼앗긴듯한 니콜라와 중재하려는 맘브루에게 겨누어지는 소년들의 총은 긴장감과 이곳의 분위기를 한 번에 와닿게 만든다.
몇 년 만에 다시 보니 아쉬운 부분들도 있지만 좋았던 이유들은 명확해졌다. 일단은 완성도가 높았다. ‘오염된 우물을 살려야 한다’, 명확한 미션이 주어진 성배 찾기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은 적절하게 흘러갔다.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풍경 같던 인물들 또한 큰 역할을 한다. 막힌 길에서 목격했던 소몰이 아주머니, 축구공을 뺏긴 소년 니콜라, 공 덕에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물고 상황적 배경을 자연스레 제시하고, 새로운 사건을 주기도 하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주며 자연스럽게 서사를 진행시킨다. 또한 소로 함정을 만든 지뢰를 만나는 이들의 태도를 통해, 특히 소피의 태도를 통해 ‘인물들의 성장’까지 볼 수 있다. 처음 함정 소를 만났을 때, 원칙과 실상황의 차이에 당황하지만 두 번째 함정 소를 만났을 때는 좀 더 여유로운 자세로 완벽 적응하여 지뢰를 넘어간다. 영화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로는 영화가 보여주는 태도였다. 앞, 뒤로 나란히 달리는 자동차에서 무전기로 주고받는 방식과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어야 할 농담들을 계속해서 건네는 B. 아이러니하게도 폭탄으로 지붕이 없어진 방엔 햇살이 가득 들어와 밝히고 누군가의 죽음을 이룬 밧줄은 새로운 사람들을 구하는데 이용된다. 또, 비만 안 오면 되는 상황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허무함을 겪지만 그럼에도 희망적인 이유는 또 다른 곳에서 그 비는 도움으로 작용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 집중해. 지금 이 순간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여기는 돈만 주면 뭐든 가능해요’. 영화 속 상황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대사면서도 이는 전쟁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구한 밧줄이 끊기고 열심히 구한 공을 되찾아주기까지 하는데 팔아버리는 아이, 전쟁 앞에 사회(인간)와 정부가 전쟁을 겪은 후(혹은 전시에)에 만들게 되는 메커니즘을 생각해보게끔 한다. 어느 하나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가장 ‘완벽한 날’을 만드는 방법인 것 같다. 그러면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던 일들이 어느샌가 풀릴 것이다. 마치 비만 안 내리면 되는 상황에 내린 비 덕분에 우물의 시체가 떠오른 것처럼, 교수형을 당한 이들의 목에 있던 밧줄 덕에 다시 한번 시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어려움과 행복은 계속해서 주고받으며 또 다른 A perfect day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제일 얄미운 감독의 유형이다. 약 5년 만에 다시 본 영화는 그간의 나의 성장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아쉬운 부분들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굳이 그런 류의 농담이 아니어도 되겠는데, 카티야의 임무와 역할은 분명히 뭐였는지, 소피의 태도 변화를 위한 대조라기엔 너무 극단적인 태도들. 너무나 유연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감독이었기에 ‘할 수 있겠는데 왜..’, ‘왜 굳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종 사람들과 얘기할 때면 나는 <어 퍼펙트 데이> 같은 영화를 만들겠노라 말했다.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불쾌한 농담들, 소모적이고 도구적인 역할들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