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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 이도 Mar 21. 2022

일본의 전후 상황을 보여준 <복수는 나의 것>

이마무라 쇼헤이 / 일본 / 1979 / 140’

1979 개봉한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복수는 나의 (復讐するは我にあり)> 일본 사회의 파시즘적 징후에 대한 영화로, 고도성장기의 피폐한 일본인  시대적인 동기가 영화에  나타나 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고  시대 상황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것이 작품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또한 그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비교적 빠른 성장을 했으나, 산업의 불균형과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세계 대공황의 여파는 일본을 군사력을 강화하고 위기를 타개하고자 군국주의로 몰아갔다. 그 결과 노동자·농민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기존 정당의 부패, 사회주의 운동의 확대, 중국 혁명의 진전 등으로 국내의 불안은 한층 가중되었다. 이에 군부를 중심으로 한 파시스트 세력이 성장, 국가개조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자는 운동이 일어나며, 파시즘은 본격화되었다. 이 일본 파시즘의 특징은 천황제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천황신앙·천황에 대한 충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국민의 의식·생활을 획일화하고, 일본 민족의 우월성·대동아공영권 건설을 강조,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천황제는 지배체제의 중심이었으며, 의회는 존속되었다. 이러한 파시즘 속에서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하여,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이 만연하면서 신앙 탄압 또한 고도의 성장을 위한 파시즘 징후의 하나였다.

 영화는 1963년 10월부터 도쿄올림픽이 열리던 해 1964년 1월에 걸쳐, 2명을 살해하고 도주하며 대학 교수와 변호사 등을 사칭하여 3명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총 80만 원을 갈취한 니시구치 아키라 사건을 모티브로 1976년 사키 류조(佐木隆三)가 사건을 취재해 쓴 논픽션 장편 소설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추가 취재하여 1979년 영화화하여 소설과 동명으로 개봉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와오의 살인의 순간들을 무감하고 냉정하게 보여주며, 일반 스릴러에서의 긴장감보다는 다큐멘터리적으로 장면들을 흔들림 없이 나열한다. 실존 인물인 니시구치 아키라는 기독교 가톨릭 신자로 ‘나는 천일옥(千一屋)이다. 천에 하나밖에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라고 호언하는 사기꾼이자 연쇄살인범으로 총 12만 명에 달하는 경찰의 수사망을 뚫고 78 일 동안 도망쳤지만, 1964 년에 구마모토에서 체포되어 43 세의 나이로 처형된다. 영화에서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너무나 당당하게 사람을 죽이는 극 중 이와오를 보면서 무엇이 이토록 그를 잔혹한 살인마로 만들었을까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데 영화는 이와오의 이러한 살인행각의 원인과 무엇을 원망하는지조차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며 이해시켜주지 않는다.

단 한번 등장하는 이와오의 어린 시절 과거 장면으로 그의 납득할 수 없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증오와 무관심한 가정의 환경 그리고 추악했던 성장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일본이 아직 서구의 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때, 목사이자 어부인 아버지는 천황에 대한 복종을 위해 생업과도 연결된 어선을 빼앗긴다. 종교에 대한 순종이 아닌 군인의 폭력 앞에 무력하게 어선을 빼앗기는 아버지를 보며 이와오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이 분노는 곧 변질되어 그의 반항심을 키우고 그를 괴물로 만든다. 이는 나아가 이와오를 통해 종교에 대한 탄압, 군국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영화로써 형상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마무라 감독은 이와오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의 괴물로 두고, 이 괴물을 만든 것은 정확한 어떤 원인보다는 이 사회 자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고도의 성장을 위한 천황의 획일화를 위해 억압하고 독재적이고 국수적인(보수적인) 사회가 개인의 감정이나 욕망에는 개의치 않고, 그 중 하나인 개인의 종교까지 말살하였고 이들을 보고 자라면서 결국 다음 세대에서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억압에 대한 억눌림이 반사회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표출됨을 영화에서 이와오의 과도한 남성성이 살인(폭력)과 섹스로 분출되는 것을 통하여 보여준다. 영화에서 악인은 에노키즈 이와오로 보이지만 등장인물 모두가 병들어있다. 아내 가즈코 또한 남편의 부재로 욕망이 시아버지 시즈오와의 관계로 드러난다. 아내 시즈코도 사회의 피해자인 것이다. 정신적으로 억눌리고 억압된 욕망이 욕정과 충동 등으로 폭발적으로 분출되자 이런 상황이 되고 피해자들도 속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감독은 이와오라는 이해 불가능한 인물을 중심으로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폭력에 연루된 인간 욕망의 뒤틀린 생태계를 보여주려고 하면서 시즈오와 가즈코나 하루의 어머니 또한 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 이와오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흉악한 본성을 지닌 인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19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으로 전후의 일본 영화계에서 활약하며 오오시마(大島渚), 나카히라(中平康) 등과 함께 일본의 누벨바그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를 부정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그림자를 다양한 각도에서 파고드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이 중에도,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본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보다는 그 시스템으로부터 밀려난 밑바닥 삶의 질긴 본능에 주목했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폐해들을 문제 삼은 감독의 다른 작품《가라유키 상》(1975년), 《간장 선생》(1998년) 등에서도 감독의 일본 군국주의 비판을 볼 수 있다.

결국 모호한 살인의 원인과 내러티브는,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일치하였다. 감독은 인간의 욕망 분출을 통해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당시 시대상에 의한 혼란스러움과 제국주의 사상이 팽배하여 군국주의가 이끄는 폐해, 혼돈과 인간성의 말살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현실과 영화의 시각화된 구성으로도 이해 불가한 것을 억지로 설명하려 들지 않고 담담하게 감독이 얻어낸 것은 전후 일본 사회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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