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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 이도 Apr 01. 2022

영화 <아수라>는 느와르인가?

느와르란 무엇인가?


오늘은 영화 아수라에 나타난 느와르적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는, 느와르에 대해서 알아보고, 영화 아수라에서 느와르적 특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인물, 사건, 배경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느와르


1946년 여름, 몇 주 동안 파리 전역의 극장에서 다섯 편의 미국영화를 연이어 개봉했고, 이 영화들에는 기괴하고도 폭력적인 톤이 공통적으로 나타났으며, 독특한 성격의 에로티시즘이 가미 되어있었다. 필름느와르[1]는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웨스턴이나 갱스터 장르처럼 세팅과 갈등이라는 컨벤션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톤과 분위기라는 보다 미묘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독일 표현주의나 프랑스 누벨바그[2]와 같이 영화사의 특정 시대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필름 느와르는 도시의 어둡고 미끈거리는 범죄와 부패를 그려낸 40년대와 50년대 초반의 할리우드 영화를 가리킨다. 필름느와르는 장르라기보다는 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느와르 영화는 죽음의 영화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필름느와르의 독점적인 요소는 아니다. 필름느와르를 구성하는 요소 중 몇 개를 보자면, 필름 느와르는 내부, 즉 범죄자의 관점을 가진다. 또, 도덕적 결정론에 관하여 경찰들이 전통적이고 바른 모습보다는 부패한 모습들로 그려진다. 그 결과, 시나리오 작가들은 사설탐정을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등장시키게 된 것이다. 인물의 양면성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불확실성도 하나의 요소로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필름 느와르에서 나오는 희생자들에게 나타나는 모호함과 그 희생자를 열악한 환경에 둠으로써 가해자들의 주목을 끌게 되고 희생자들은 가해자가 되지 못했기에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또, 여자를 둘러싼 모호함 등이 있다. 주로 인물에게 치명적인 팜파탈(Femme Fatale)은 자신이 만든 함정에 희생자들을 빠트린다.


필름 느와르는 폭력의 테마를 새롭게 만들었다. 우선, 첫째로 필름 느와르는 모험 영화가 보여주는 공정한 결투라는 컨벤션을 포기한다. 정정당당한 기회는 이미 결정된 승부, 구타, 냉혈한 살인자에 의해 밀려난다. 둘째, 처형 의식에 대해 그 어떤 영화들보다 많고 광범위한 잔인성과 가학성의 사례들을 보여 준다. 셋째, 필름 느와르에서 불안을 유발시키는 것은 폭력성보다는 이상하게 뒤틀린 플롯이며 기괴함이란 동기의 불확실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어떤 것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러한 혼란이야말로 필름 느와르가 가진 기묘한 몽환증적 특징의 핵심이기도 하다. 즉, 혼란스러운 행동들과 불분명한 동기들, 선과 악은 구별되지 않은 채 도덕적 기준은 완전히 왜곡돼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관객들은 괴로움과 불안을 함께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필름 느와르의 목적은 특정한 소외를 만들어내는데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름 느와르의 양식적 특성을 살펴보면, 하나, 대부분의 신은 밤과 같은 조명아래 촬영되었다. 둘, 수평선보다 사선과 직선이 더 많이 사용된다. 사선은 화면을 분할하여 화면을 불안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셋, 배우와 배경은 종종 같은 강도의 조명을 받는다. 필름느와르에서는 중심인물이 그림자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넷, 구도적인 긴장감이 물리적인 행위보다 선호된다. 인물들을 통한 표현적인 행동들보다 시네마토프그래프적으로 인물 주변에서 신을 움직인다. 다섯, 물에 대해서 거의 프로이트적인 집착이 있는 듯 보인다. 여섯, 낭만적인 내래이션이 즐겨 쓰인다. 일곱, 뒤엉킨 연대기적 배열은 절망과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뒤얽힌 시간적 시퀀스를 사용하여 시간 조작을 교란시키지만 고도로 양식화된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다. ‘어떻게’가 ‘무엇’보다 항상 더 중요하다.


필름느와르는 크게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 시기는 대략 1941년에서 1946년 동안의 전쟁기이다. 두번째 시기는 1945년에서 1949년 사이인 전후 리얼리즘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49년에서 1953년 사이로, 정신병적 행동과 자살 충동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필름느와르 시대의 정수이기도 하다. 이 시기야말로 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10년간 서서히 낭만적인 관습들을 떨쳐 낸 후기 느와르 영화들은 마침내 그 시대의 근본적 논쟁점에까지 파고들게 되었다. 50년대 중반까지 필름느와르는 천천히 사라져가는 중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범죄영화의 새로운 스타일이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사회를 비평하고자 하는 시도는 미국식 삶의 방식에 대한 요상한 확신에 가려지게 되었고 기술적으로 밝은 조명과 클로즈업을 요구하는 텔레비전으로 인해 독일의 영향은 점차 감소되었고 컬러 촬영의 등장이 ‘느와르’의 스타일을 날려버리는 결정타가 되었다. 또한, 필름느와르가 경시되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학보다 영화적 연출에 더 의존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필름느와르는 장르적 특징뿐만 아니라 스타일적 특징도 지니고 있기에 도망자들의 거친 열정을 그리는 방식이 그들이 왜 도망치는지를 설명하는 플롯보다 더 중요하다. 또한, 시각적 관례, 상징적 표기 그리고 인물 유형을 자유롭게 끌어들이는 만큼, 문화의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가치들도 자유롭게 접목시킨다.


필름느와르가 만들어진 40년대 할리우드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었다. 첫째로는, ‘전쟁과 전후의 환멸’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을 강타한 극심한 절망은 사실상 30년대에 대한 지연된 반응이었다. 대공황 내내, 영화는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줬다. 또한, 국외에서의 연합군 측 프로파간다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와 국내에서의 애국심을 고취해야 한다는 요구로 인해 어두운 영화의 태동이 둔화 되었다. 필름느와르는 스튜디오 시스템 안에서 몸부림쳤지만, 그리 두드러지지 못했다. 둘째로는, ‘전후리얼리즘’이다. 전쟁 직후에 영화를 만들어내는 모든 나라들에서 리얼리즘이 부활했다. 관객들은 미국에 대해 보다 많은 정직과 엄한 시선을 열망했고 그들이 수십 년간 보던 동일한 스튜디오가 아닌 그 이상을 원하게 되었다. 리얼리즘적인 움직임은 미국의 전후 분위기와도 잘 맞았고, 필름느와르를 상류층 멜로드라마의 영역에서 떼어내서 더 적절한 위치로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거리로 가져왔다. 셋째로는 ‘독일의 영향’이 있다. 할리우드는 20, 30년대에 쇄도한 독일 이민자들의 주요한 수용처였다. 그리고 독일의 영화 제작자들과 기술자들은 대부분 미국의 영화 체제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 무렵, 인공적인 스튜디오 조명을 쓰는 독일 표현주의 효과가 거칠고 꾸밈없는 외관이 특징인 전후 리얼리즘과 모순되는 듯했지만 겉보기에 상충하는 요소들을 하나의 스타일로 융합할 수 있는 것이 필름느와르의 독특한 특성이다. 마지막으로 ‘하드보일드 양식’이다. 하드보일드파 작가들 역시 필름느와르가 받은 스타일적 영향 중 하나로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싸구려 통속 소설이나 언론 기사에 그들의 근원을 둔다. 그들의 주인공들은 나르시시즘적이고 패배주의적으로 살아간다. 40년대 영화가 미국의 ‘터프한’ 도덕적 기층에 의지할 당시, 하드보일파는 이미 주인공, 조연, 플롯, 대화, 주제 등에 대한 컨벤션을 구축해 놓았다. 독일 이민자들처럼, 하드보일드 작가들은 필름느와르를 위한 맞춤 스타일을 보여 주었다. 독일인들이 느와르 촬영에 영향을 준 것처럼 하드보일드는 느와르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쳤다.


2. 영화 <아수라>

영화 아수라는 폭력과 부패가 판을 치는 하드보일드 느와르로서 부패한 형사가 악인들과 손을 잡고 서로가 서로를 짓밟으며 이용하는 이야기이다. 강력계 형사인 한도경은 시장이지만 성공을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박성배의 뒤를 봐주고 돈을 받는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위해 한도경은 박성배의 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한도경을 이용해 박성배의 비리와 범죄 행위들을 캐내려는 검사 김차인에게 약점까지 잡히게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 호형호제하던 동생을 박성배의 수행원으로 보내주고 생기는 갈등까지 생기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물고 무는 이야기이다.

안남시라는 시의 시장인 박성배는 표리부동한 인물로서 겉으론 시민들을 생각하는 좋은 사람인척 연기까지 하지만 실제로는 성공을 위해 살인 교사부터 각종 범죄를 저지른다. 강력계 형사인 박도경은 영화 초반에 박성배의 재판의 증인이 되어줄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실수로 선배경찰을 죽이는 사건 속에서 김차인에게 약점까지 잡히게 되고 아내의 병원비를 핑계로 헤어나올 수 없는 악의 굴레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박성배의 범죄 행위들을 캐내려는 검사 김차인은 한도경의 모든 악행들을 알고 이로 한도경의 약점을 잡고 한도경을 이용해 박성배의 증거자료들을 모으려 한다. 검사로 나오는 김차인조차도 검찰 수사관 도창학과 함께 폭력과 거짓으로 한도경을 협박한다. 바른 경찰이자 한도경의 친한 동생인 문선모는 처음엔 한도경의 악행들을 부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한도경의 도움으로 박성배의 수행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돈의 맛을 알아가면서 박성배의 비서까지 죽이는 등 악한 행위들을 서슴없이 하는 악인들 중 한 명이 된다. 박성배가 한도경보다 문선모를 신임하게 된 것도 박도경이 박성배와 김차인을 배신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에서 옳은 행동을 해야 하는 경찰과 검사, 시장 모두가 악인으로 나오는 이 영화는 마지막으로 박성배의 비서의 장례식장에서 혈전을 벌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 모두가 죽으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3. 영화 <아수라>에 나타난 느와르적인 면

위에서 정리한 필름 느와르의 요소에 의하면 필름느와르는 범죄자의 관점, 경찰들이 부패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그로 인해 사설탐정이 등장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영화에선 사설탐정이 등장하진 않지만 경찰들과 정부 사람들 모두 부패하게 그려지고 있다. 혼란스러운 행동들과 불분명한 동기들, 선과 악은 구별되지 않은 채 도덕적 기준의 왜곡이 잘 드러난다. 이에 대해 감독의 “차단할 수 있으면 악이 아니다. 각자 처한 환경이나 구조에 맞춰 생존 방식을 택할 뿐이다. 선악 개념은 희미하다. 그렇게 모두들 선과 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산다.”라는 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 또한 영화 아수라는 악의 집결지인 안남시의 전경을 오프닝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사건이 진행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장소가 좁아지고 외부와 차단된 밀폐된 공간들을 배경으로 한다. 심지어 마지막 엔딩 장면의 공간인 장례식장은 창문조차 존재하지 않는 폐쇄된 공간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폐쇄되고 고립된 공간을 통해 답답함을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을 이야기 끝까지 공간의 구석까지,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또한, 영화에서 한도경이 거리를 걸을 때 주변은 40년 이상 된 낡고 쇠락한 건물과 당장이라도 허물어 질 것 같은, 재개발이 필요한 공간들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로 이루어져있다. 인물의 주변을 통한 표현들은 인물을 통해 직접적인 표현을 하는 것보다 관객들로부터 불안을 유발시키는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인물의 불확실성이 느와르의 또 다른 요소로써 작용했다고 본다. 또한, 실제 지명이 아닌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설정함에 의해 느와르적인 스타일의 농도가 진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감독은 “필름 느와르의 영향을 받아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야기 공간으로써 가상적인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힌 적 있다. 현실의 모습을 과장해 영화 스토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범죄와 음모가 판을 치는 하나의 세계관이 필요했고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개발붐이 한창 불던 시절 권력기관과 권력자들이 모여서 개발을 빌미로 토건업자와 결탁하고 서로 이권경쟁을 벌이는 시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요소를 보자면 대부분의 느와르 영화에서 등장하는 팜파탈이 주인공에게 치명적이기도 한데 ‘아수라’에서 팜파탈은 등장하지 않지만 여성이 등장함으로써 주인공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점에서 어느 정도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를 비교적 기능적으로 사용한 점은 조금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감독은 “‘아수라’라는 세계에 팜파탈을 만들고, 정의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야 할지 란 의문이 들더라. 이 이야기에는 전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필름느와르의 목적은 특정한 소외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있기도 한데, 감독은 “지독한 소용돌이 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 통증, 혼란을 관객에게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라고 말함으로써 관객이 인물의 괴로움과 불안을 함께 경험하도록 하는 필름느와르적인 특성을 감독이 영화에 나타내려 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문을 열고 밀어 죽인다던지, 죄수자들이 칫솔을 날카롭게 깎아 찔러 죽인다던지 하는 장면은 광범위한 잔인성과 가학성이 드러나는 느와르의 폭력의 특징 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신은 밤 또는 실내, 그조차도 밤과 같은 조명의 수준의 실내에서 촬영한다. 딱 한번 낮의 외부 장면이 있는데 이조차도 흐린 날이며 한도경의 범죄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 오는 밤, 빗 속에서의 카체이스 장면은 느와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물과 차의 체이싱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인 장례식장은 창문 하나 없이 밀폐되어 있으며 화면을 사선으로 만들어 화면을 분할하여 불안하고 불안정함을 강조시킨다.

*사진출처: 네이버



[1] 필름느와르(film noir)-주로 암흑가를 무대로 한 195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를 가리켜 프랑스 비평가들이 붙인 명칭.

[2] 누벨바그(nouvelle vague)-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에 일어난 새로운 물결.

[i]감독 인터뷰-헤럴드POP, 스타뉴스, 씨네 21[i]

참조 문헌-필름 느와르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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