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 이도 May 04. 2022

하마구치 류스케 <우연과 상상> 시사회 리뷰

그 우연의 마법들은 바로 감독의 상상이었다.


71 베를린국제영화제(2021)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현재 <드라이브 마이 >  영화제, 오스카(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다수 부문에서 후보로 오르며 한국에도 더욱 많은 팬들을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다. <우연과 상상> 40내외 단편 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 프로젝트로 <드라이브 마이 >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단편’과 ‘장편’의 차이가 있다면 인물과 플롯 모두 단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감독은 이 점을 잘 활용하여 심플하고 흥미로운 플롯 라인에, 그 과정을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런 연출 스타일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강점이라는 의견이다. 그냥 ‘만났어. 안 잤어. 또 만날 거 같아'가 아닌,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고, 다음 만남을 위해 이렇게 얘기했어'라는 그 과정을 얘기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2부 중간쯤, 나오는 세가와가 지은 소설을 세가와 앞에서 읊으며 소설에 왜 이런 부분을 넣었냐고 질문한다. 나오의 질문에 세가와는 '이 부분을 통해 독자의 관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거죠'라는 식의 말을 건넨다. 도발적인 도입부를 시작으로 묘한 긴장감을 주며 끝까지 관객들의 관심을 쥐고 있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연출작이다.



등장하는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부, <魔法: よりもっと不確か/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모델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는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스타일리스트이자 절친 츠구미(현리로부터 거래처에서 만난 새로운 남성과의 인연에 대해 듣는다. ‘달리는 택시 안’이라는 조명, 카메라 각도 등 연출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텍스트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빠른 컷 전환이 아닌 원 쇼트를 보는 듯한 긴 호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상 이야기의 대부분이자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 모두 택시 안에서 대화로 이루어진다. 꽤나 긴 대사임에도 연기를 하는 듯한, 다음 이야기를 알고 대화를 주고받는 연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도 프레임으로 하여금 같은 공간에서 츠구미의 ‘썰’을 듣는듯한 느낌을 준다. 이후 나오는 이야기들도 다른 주제이지만 비슷한 느낌의 연출 형식으로 진행한다.

2부, <扉は開けたままで/ 문은 열어둔 채로>

사사키(카이 쇼우마)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기혼 대학생 나오(모리 카츠키)는 사사키의 부탁에  담당 교수인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의 명성을 추락시키려 한다.

3부, <もう一度/ 다시 한 번>

동급생 이름조차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20년 만에 고향의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한다. 돌아오는 길, 유일하게 가장 친했던 아야(카와이 아오바)를 마주치게 된다.


세 편의 이야기에는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마법이 작용한다. 이러한 마법들은 우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지만 그로 인한 주인공들의 반응과 결과는 제각각이다. 또한, 마법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작용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마법은 중간, 두 번째는 말미, 세 번째는 초반에 작용한다. 영화의 구조를 보자면, 1부는 앞서 말했듯 ‘나의 친구’ 츠구미의 이야기를 메이코와 흥미진진한 연애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2부는 좀 더 높은 성적 긴장감을 가지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 긴장감을 가지고 3부를 들었을 때, 묘한 위로를 받게 된다. 마치 2부에서 세가와의 작문법처럼 말이다. 영화의 가장 첫 장면인 ‘모델 츠구미를 촬영하는 사람들을 보는 관객(카메라)'이라는 시선에 시선을 통해 순식간에 몰입도 높이며 시작한다. 그리고 1,2부의 감정구축 덕분에 긴장도가 좀 풀리는 듯한 3부는 오히려 힘을 받을 받게 된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관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감독의 상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때로는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있고, 묘한 긴장감 속에 긴 대화에도 관객의 관심을 놓지 않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좀 더 확실해지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있자면 중간중간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인물들의 솔직함이 나온 순간들이었다. 우연과 상상 속에서, 우리의 솔직함이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아수라>는 느와르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