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59분,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로부터 알림톡 하나가 도착했다.
‘OOO님 그동안 헌혈참여에 감사드리며, 2026/00/00일부터 연령초과로 헌혈참여가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CRM센터’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행정은 참 세심하고 친절하다. 헌혈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까지 알려주는 꼼꼼함과 정중함에, 괜히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네 뒷산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앙증맞은 쓰레기통을 볼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 있던 대형 쓰레기통이 사라진 지는 오래됐는데, 공원 산책로에 웬 쓰레기통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반려견의 배설물을 버리는 용도라고 했다. 그 밖에도 횡단보도 주변에 설치된 대형 파라솔, 서가와 냉난방기가 있는 버스 정류장 등, 행정이 참 다양하고 섬세하게 변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헌혈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당시 내가 활동하던 성당 단체의 선배 중 한 사람이 주기적으로 혈액을 보충해야 하는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헌혈 증서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단체 구성원들이 함께 헌혈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다들 별다른 망설임 없이 팔을 걷어붙였던 것 같다.
이후 30년 넘게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도 가끔 헌혈했다. 대한적십자사에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들리면 학생과 군인, 그리고 공공기관 직원들이 단체 헌혈 대상이 되곤 했다. 헌혈 버스가 회사로 찾아와 주었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지 않게 참여할 수 있었다.
어느 해인가 동료 직원 한 사람의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적이 있다. 급히 다른 지역 병원으로 가서 성분헌혈을 할 사람이 필요하니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동료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었고, 얼굴만 아는 정도의 사이였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병원까지 따라갔다.
병원에서 한참 기다렸지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결국 함께 간 사람들 모두 헌혈하지 못한 채 그냥 돌아왔다. 헌혈은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그 동료에게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쯤 듣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끝내 듣지 못했고, 그때의 사소한 서운함이 지금까지도 희미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중국 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는 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아버지 허삼관의 이야기가 나온다. 배우 하정우가 연출하고 주연을 맡아 2015년에 개봉한 영화 「허삼관」도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피를 파는 일이 가능했다.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에 이르던 시절, 매혈은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말까지 혈액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문제가 언론을 통해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1999년 개정된 혈액관리법에 매혈 금지 조항이 도입되었고, 그 이후에야 완전한 매혈 금지가 자리 잡게 되었다.
요즘은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릎에서 소리가 나고, 이유 모를 불편함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마치 몸이 “이제 좀 쉬어 달라”라고 아우성치는 것만 같다. 주민등록상 만 65세가 되는 날, 드디어 노인이 되었음을 실감했는데, 이제는 헌혈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늙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70세가 되기 전에 다시 제주 올레길 완주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그 작은 꿈을 마음에 품으며, 헌혈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조용히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