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 오전 11시 칸타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람 끝에 찬 기운이 맴돌았는데, 오늘은 확연히 다르다. 따스한 공기가 얼굴에 와닿고, 회색빛 아파트 숲은 어느새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황매화로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노랗고 빨간 꽃들 사이, 활짝 핀 목련이 ‘나도 여기 있소’ 하듯 하얀 그림자를 여기저기 흩트려놓았다. 공원 길을 걷다 보니 팔각정과 그네 의자 사이, 앞마당에는 어지간히 성질 급한 빨간 튤립도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고 가는 사람 중에는 반팔 차림의 젊은이도 간혹 보인다. 이런 날 집에만 있는 건 날씨에 대한 모독이라며, 아내는 예배를 마친 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자고 말했다.
아내가 적을 둔 교회는 평소 목사의 설교 중심으로 예배를 진행하지만,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만큼은 특별하다. 바로 성가대의 칸타타가 있기 때문이다. 칸타타는 바로크 시대의 성악 형식으로, 독창과 합창, 기악 반주가 어우러진 음악극 같은 예배다. 작은 교회에서 1시간 가까이 성악곡을 듣는다는 건, 말 그대로 축복이다. 신자들의 반응도 뜨겁고, 때론 앙코르까지 이어진다. 교회의 칸타타는 코로나가 번져나가던 시기를 제외하고 23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는데, 특히 지휘자가 병원 치료하던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도 멈추지 않았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 숭고한 여정을 음악으로 체감하며 감사의 마음을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바람을 쐬러 가자던 당초 의욕과 달리, TV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후 2시 가까워져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우리가 종종 찾는 단골 산책 코스는 인천대공원이다. 집에서 가깝고, 주변에 식당과 카페도 많아 가볍게 한 끼 먹고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무엇보다 호수를 중심으로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넓은 공간은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날도 평소처럼 인천대공원 남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영주차장으로 갔는데, 평일엔 늘 여유 있던 주차 공간이 단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운이 좋았다.
대공원 남문 근처에는 찰보리 국수를 파는 식당이 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테라스까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길 건너편 건물 2층, 보리밥 정식 간판을 내세운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창밖을 내려다보니, 국숫집에 막 들어온 손님이 보였다. 그들을 보며 “아마 1시간 안엔 먹지 못할 걸” 했더니, 아내가 내기를 제안했다. 우리가 밥을 다 먹기 전 저 손님에게 음식이 나오면 아내가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기는 것으로 했다. 진 사람이 밥값을 내기로 했다. 20분쯤 지나, 내가 비빔밥을 몇 숟가락 남겨두었을 때,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기 음식 나왔네요.”
대공원 안으로 들어서니,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듯했다. 사람들 틈을 피해 걷는 게 쉽지 않을 정도였다. 겉옷을 차에 두고 온 게 다행이었다. 셔츠 하나만 입었는데도 따뜻하고,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호수를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대공원을 나서며 늘 그랬듯 근처 빵집에 들러 바깥에 놓인 의자에 앉아 빵을 나눠 먹었다. 평범하지만 포근한 시간이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도로로 들어서려는 찰나, 아내의 전화기가 울렸다. 아들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점심을 늦게 드셨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라는 아들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좋지!”라고 대답했다.
통화를 끝내고 내가 말했다. “보리밥은 문지방 넘으면 바로 꺼져.”
아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밀가루는 휘지고.”
점심을 먹은 지 채 한 시간, 빵을 먹은 건 오 분도 안 된 일이지만, 손주와 함께 먹는 밥이라면 언제든 무엇이든 소화시킬 수 있다. 마음속 따뜻한 그릇 하나가 또 채워질 시간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