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두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오랜 시간 함께하며 마음이 통했던 동료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서너 명의 동년배들과 10년 넘게 정기적으로 점심을 같이하며 일상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퇴직 후에도 이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함께할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퇴직을 1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부부 동반으로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동료들과의 관계를 퇴직 후에도 지속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퇴직을 준비하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더 이상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고 연금 범위 내에서 생활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내되 수시로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겠다는 것이었다.
퇴직 후에는 아내의 권유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한편, 제주에서 한 달을 보내며 오름 40여 곳을 다녔다. 그렇게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후 매일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서너 시간도 견디기 힘들었다. 도서관 방문 횟수는 점점 줄었고, 결국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수준이 되었다. 대신 주민자치센터에서 펜 드로잉을 배우고, 드론을 날려 보기도 하며, 당구장, 만화방, 영화관 등을 찾았지만 하루를 온전히 채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막연하게 그려왔던 퇴직 후의 여유로운 생활이 사실은 무료함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실감했다.
퇴직 후 2개월쯤 되었을 때, 동료들과 부부 동반으로 6박 7일의 남도 여행을 다녀왔고, 다시 2개월 뒤에는 강원도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여행 중 나는 동료들에게 행정사 합동사무소를 차리자는 제안을 했다. 뜻밖에도 아내들이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아내는 "남편이 퇴직하고 4개월을 함께 지내보니 내 곁으로 돌아와서 반갑고 고맙지만,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활동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심지어 한 동료의 아내는 "사무실 경비를 내가 부담하겠다"고까지 했다.
아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우리는 사무실을 마련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20곳이 넘는 장소를 둘러본 끝에, 허름하지만 재래시장과 가까워 식당이 많고 교통도 나쁘지 않은 지역의 한 건물 3층을 선택했다. 사무용 책상과 의자, 회의용 테이블과 의자, 캐비닛, 복합기 등 기본적인 가구를 갖추고 인터넷을 개통했다. 퇴직한 지 8개월 만에 우리는 공식적으로 새로운 일터를 갖게 되었다. 이후 구청에 개업 신고를 하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이제 아침이면 출근할 곳이 생겼다. 다시 출근한다고 당당하게 문을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할 줄은 몰랐다. 단순히 수입을 위한 일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목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행정사 합동사무소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퇴직 후에도 동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10년 넘게 함께했던 점심 자리의 인연이, 이제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가는 든든한 기반이 된 것이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