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퇴직 전까지 나는 골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30대 시절, 공무원이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골프 금지령을 내리기도 할 만큼 공직자에게 골프는 마치 금기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40대가 되면서 조금씩 변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사람들도 늘어났고, 주변에서는 하나둘 골프를 시작하는 동료들이 생겼다. 술자리에서 골프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고, 자영업이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도 골프가 주된 화제였다. 자신이 쓰던 골프채를 줄 테니 시작해 보라는 선배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웃음으로 거절했다.
사실 20대 때부터 나는 한국처럼 좁은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넓은 땅을 차지한 골프장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친구나 동료들이 아무리 골프 이야기를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겼고, 50대가 될 때까지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것은 퇴직 후였다. 시간 여유가 생기다 보니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마침 처조카가 자신이 쓰던 골프채 세트를 건네주면서 배워보라고 권했고, 그게 계기가 되어 골프 연습장에 등록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초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 보니, ‘똑딱이’ 연습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자세도 어설펐고, 헤드에 정확히 맞지 않거나 공보다 바닥을 더 많이 때리는 탓인지 손이 저려서 한밤중에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아내는 수시로 나에게 “헌법 1장 1조 “라고 놀려댄다. 젊은 시절 헌법 공부를 한다고 법전을 펼쳐 놓고서 겨우 제1조만 읽고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빗대어, 매사에 끈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실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내가 배워보겠다고 덤볐다가 끝을 보지 못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학 공부, 기타,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드론… 그리고 그 목록에 골프가 추가되었다. 파란 잔디는 스크린으로만 본 채 겨우 연습만 하다가 포기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대체제가 있었다. 우연히 ‘파크골프’를 알게 된 것이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아내와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골프채도 구입하고, 매주 한 번씩 파크골프장을 찾았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우선 쉬웠다. 기존 골프 연습 덕분인지 금세 적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아내와 함께 파크골프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자세를 이렇게 해야 한다, 시선 처리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등 나름의 ‘지도’를 했는데, 정작 내가 친 공이 아내의 공보다 항상 더 좋은 위치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 중 대부분의 남편들이 아내에게 비슷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그냥 웃곤 했다.
파크골프장에 가면 70대는 물론 80대 부부도 흔히 볼 수 있다. 함께 라운드를 돌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분들이 예외 없이 하는 말이 있다.
“아직 60대면 팔팔할 때야. 지금 열심히 즐겨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그래, 나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여전히 팔팔한 60대다. 아직 해볼 것이 많고, 배울 것도 많다. 골프채를 다시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파크골프만큼은 꾸준히 즐기고 싶다.
내 방 한쪽 벽면에는 골프채가 들어 있는 가방과 기타가 마치 궁전의 정문을 지키는 근위병처럼 나란히 서있다.
언젠가 다시 내가 가방에서 꺼내 주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들은 몇 년째 먼지만 쌓여가고 있지만, 파크골프채는 아직 현역이다. 언제까지 현역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이 순간을 즐길 뿐이다.
이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해 망설이지 않으려 한다. 내 인생의 다음 ‘똑딱이’는 무엇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