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 - 마드리드
여덟째 날 아침, 우리는 어제 들러보지 못했던 팜플로나의 골목길을 다시 걸었다. 순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은 여전히 길 위에 있었고, 마음은 떠날 준비를 서두르지 않았다. 헤밍웨이 길을 따라 투우장 앞에 있는 그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그 근처에 놓인 소몰이 동상 앞에 서서 시내 골목길을 가득 채운 소와 사람의 거칠고 뜨거운 아우성을 상상했다.
중앙 광장 카스티요에는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 자리한 카페 이루나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그곳은 이른 아침이라 한적했지만,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파리에서도, 스페인에서도 헤밍웨이가 머물렀다는 카페와 식당, 호텔이 너무도 많았다. 만일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을 기획한다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의 유명한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덕분이라고 한다. 팜플로나의 이른 햇살 속에서 나는 ‘문학이 남긴 흔적을 따라 걷는 여행’의 매력을 새삼 느꼈다. 문득 인생도 여행도 결국은 ‘떠남과 머무름의 반복’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마친 뒤, 9번 시내버스를 타고 팜플로나역으로 향했다. 렌페 고속열차에 올라탄 우리는 창밖으로 멀어져 가는 팜플로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단지 하루 머문 도시였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창밖 풍경이 점점 사라질수록 아쉬움은 커지고, 그 자리를 추억이 천천히 채워갔다.
오후 2시 40분,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했다. 무거운 배낭은 수하물 보관소에 맡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내로 나섰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이요 광장이었다. 행사 준비 펜스와 차양막으로 다소 어수선했지만, 넓은 광장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을 품고 있었다. 광장 한 편의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먹은 한치 튀김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여행의 피로를 녹여주는 한 조각의 추억이었다. 아내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한치 튀김이 제일 맛있었어”라고 종종 말한다.
근처 산 미겔 시장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형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시장은 마치 온실 속 세계 음식박물관 같았다. 다양한 음식 냄새가 어우러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섞여 들려왔다. 아내는 사람들 틈에서 상그리아 한 잔을 손에 들고 작은 탁자 옆에서, 붉은 술빛 속에 여행의 여유와 행복이 담겨 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드리드 왕궁 쪽으로 향했다. 왕궁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아쉽지만 유럽의 찬란한 역사를 품고 있는 왕궁 내부를 관람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옆에 있는 성당으로 갔다. 성당 입구에서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아내가 등에 멘 가방에 손을 대려던 젊은 남녀가 있었다. 내가 그들을 제지하는 순간, 긴장이 돌았지만 그들의 쑥스러운 미소에 화는 풀렸다. 여행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따르지만, 그조차도 지나고 나면 이야기가 된다.
성당을 나와 왕궁이 바라보이는 옆 계단에 앉아 사람들 틈에 섞여 왕궁을 바라봤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마드리드의 중심인 솔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마드리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곰 동상이 있는데,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라고 알려져 있듯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우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정중앙을 표시하는 제로 포인트가 광장 바닥에 있고, 그걸 밟으면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언젠가 다시 마드리드를 찾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다시 아토차 역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그때 10대로 보이는 소녀 둘이 아내의 배낭을 건드리는 것을 뒤에서 걷던 스페인 할머니가 보고 알려주었다. 소매치기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할머니는 따뜻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말했다. 비록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심해요”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 짧은 순간에도 인간의 온기가 있었다.
밤 10시 20분, 우리는 마드리드 바하라스 공항에 도착했다. 다음날 오전 6시 55분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 한구석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작동하지 않는 에스컬레이터 아래쪽 구석은 조용했다. 그러나 편안한 잠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기가 스며들고, 등은 점점 아파왔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마저 웃음이 났다. 함께 있는 사람 덕분이었다.
다음날 아침,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해 네 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위해 에펠탑과 파리라는 글자가 새겨진 작은 커피잔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아들과 지인들에게 줄 마카롱을 샀다. 지금도 아침이면 우리는 그 잔으로 커피를 마신다. 손에 닿는 잔의 온기 속에서 파리와 스페인, 그리고 순례길의 기억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3일 동안 약 70km를 걸으며 만난 사람들, 그들의 미소와 인사, 그리고 함께 걸었던 아내의 뒷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길 위에서 우리는 깨달았다.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며, 마음이 멈추지 않는 한 인생의 여행은 언제든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여행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다시 또 다른 길을 꿈꾼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한 달쯤 살아볼까.”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