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 - 팜플로나
순례 셋째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우리 부부가 앉은 테이블엔 유독 동양인이 많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홍콩 출신의 미국인들이었다. 외모가 서로 닮아 형제들처럼 보였고, 우리는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사진도 함께 찍었다. 낯선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웃음을 나누다 보니, 이 여정이 조금씩 내 일상에 녹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간단한 아침을 마친 뒤 짐을 챙겨 동키 서비스를 의뢰하고, 오전 7시 30분경 팜플로나를 향해 길을 나섰다.
오늘은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21.4km. 이번 순례의 마지막 걸음이 될 구간이었다. 이틀 동안 50km 가까이 걸었지만, 제주 올레길을 완주했을 때처럼 하루만 쉬면 다시 발걸음을 뗄 힘이 생긴다. 아직은 젊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산티아고까지 이어가지는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는 더 힘차게 걷고 싶었다.
길을 걷다 보니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그라피티로 둘러싸여 있는 창고인 듯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글씨와 함께 스페인 국기에 'X' 표시를 해 놓은 것으로 보니 "혹시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바스크'와 관련이라도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차창 너머로 곳곳에 그려져 있는 그라피티를 본 기억이 났다. 미관을 해치는 범죄행위 혹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예술이라는 두 시각의 간극이 꽤나 먼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예술행위를 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예술품을 손상시키는 짓은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수리아인을 지나 팜플로나를 바로 앞에 둔 아레라는 마을 근처, 길가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반가운 우리말이 들려왔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모두 따로 순례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동행하게 된 사이라고 했다. 남자는 각각 장기 휴가를 얻은 공무원, 대학생이고, 여자는 회사원이었다. 어제 그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낯이 익은 얼굴들이었다. 팜플로나의 공립 알베르게에 묵을 예정이라는 그들에게, 우리는 내일 마드리드로 떠날 계획이라 작별 인사를 대신해 함께 늦은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막달레나 다리를 건너 거대한 성벽을 따라가다 보니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흔히 보던 성문이 눈앞에 보였다. 수말라카레히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문을 지나 팜플로나 시내로 들어온 우리는 작은 타파스 바에서 다양한 음식을 나누며 순례길의 에피소드와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내는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뿐인 아들이 생각이 났는지 내게 작은 소리로 “우리 아들도 잘 지내고 있겠지?” 하고 미소 지었다. 우리 부부는 젊은이들이 편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100유로를 건네고 먼저 자리를 떴다. 짧지만 온기가 남는 만남이었다. 여행을 끝내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지 한 달쯤 되었을 즈음, 대학생이라는 젊은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그의 표정이 더없이 환했다.
숙소는 시내 중심의 호텔이었다. 짐을 풀고 잠시 쉰 뒤, 시내 구경에 나섰다. 팜플로나는 인구 20만의 활기찬 대학도시로, 기원전 1세기 로마 장군 폼파올로가 세운 도시라고 한다. 매년 7월이면 ‘산 페르민 축제’가 열려, 황소들이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질주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축제 기간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잠자리와 물가가 두 배로 뛴다고 한다.
우리는 콘시스토리알 광장의 시청을 지나 나바로 박물관을 들른 뒤, 골목골목을 걸었다. 로마나 피렌체처럼 장대한 도시도 좋지만, 작은 고대 도시를 걸으며 만나는 건물과 광장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인상적인 건 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좁은 골목과 차량 진입이 제한된 구역이 많아, 걸음을 멈춰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중세풍 건물 사이사이 놓인 재활용 쓰레기통도 눈에 띄었다. 직업병처럼 ‘우리 동네에도 이런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진으로 남겼다. 광장 한편엔 현수막이 걸린 인파가 모여 있었는데, 아마도 시위가 아닌가 싶었다.
저녁 무렵, 다시 거리에 나섰다. 사람들로 북적였고, 주민보다 순례객과 관광객이 더 많아 보였다. 아내는 ‘빠에야’를 먹고 싶다고 했지만,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물어보다가 결국 아내를 숙소 앞에 두고 혼자 찾으러 나섰는데, 한참 헤맨 끝에 돌고 돌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근처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가게 안은 이미 만석이었지만, 다행히 한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어제 수비리에서 저녁을 함께 했던 독일인들이 근처에 있는 것이 보였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그제야 하루의 여정이 온전히 마무리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