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하나 둘러메고 7

론세스바예스 - 수비리

by 백승인

둘째 날 아침,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을 떴다. 어제의 피곤함은 온데간데없고 상쾌한 기운이 먼저 찾아왔다. 아내는 전날 밤 숙소 욕조를 빨래통 삼아 빨래를 잔뜩 해두었는데, 마르지 않은 옷가지는 비닐봉지에 담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우리는 다시 동키 서비스에 배낭을 맡기고, 작은 가방만 둘러멘 채 길을 나섰다. 오늘의 여정은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22.2km였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으니, 롤랑의 십자가를 지나 첫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식당에 들러 빵과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순례길은 마을과 농장, 숲과 작은 언덕을 번갈아 지나며 이어졌다. 어제는 해발 1,450m의 높은 능선을 넘어야 했지만, 오늘은 론세스바예스(950m)에서 시작하는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다. 우거진 숲이 만든 그늘 아래로 이어지는 흙길은 대부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다져 만든 길이라고 했다. 걷다 힘이 들면 작은 카페에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이어갔다.





길 위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있었다. 특히 아시아인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젊은 사람들이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부엔 카미노!”를 건넸다. 간단한 인사였지만, 그 말속에는 함께 길을 걷는 동료로서의 격려와 연대감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오늘의 목적지 수비리에 도착했다. 많은 순례자들은 여기서 5km 더 걸어 라라소아냐에 묵지만, 우리는 미리 수비리의 숙소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라비아 다리라는 고풍스러운 돌다리를 건너자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우리가 예약한 알베르게도 그곳에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올라간 방에는 이층 침대 세 개가 놓였는데, 그중 하나를 골라 아내는 아래층, 나는 위층을 차지했다. 그제야 주인이 건넨 종이를 펼쳐보니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말 것, 침대 위에 빨래를 널어놓지 말 것, 공용 공간에서 소란 피우지 말 것…”


그런데 이미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방에 들어왔고, 아내는 침대 위에 젖은 양말을 가지런히 널어두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소리 내지 못하고 한참을 웃었다. 건너편 침대 아래층에는 가슴에 털이 수북한 서양 남자가 웃옷을 벗은 채 잠들어 있었는데, ‘옷을 벗고 눕지 말 것’이라는 규칙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소한 규칙 하나하나가 사실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짐을 정리한 뒤, 우리는 젖은 빨래를 건조기에 넣어 돌리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식당과 레저용품 가게, 빵집 등이 있어 제법 큰 마을인가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인구 250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들이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돌다리를 건너갔다가 사진을 찍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데 자동차 옆에 서있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드골 공항에서 파리 시내까지 함께 이동했던 전직 교사였다. 머나먼 타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다시 만나니 이산가족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는 서양인과 함께 있었는데,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행은 카를로스라는 스페인 가톨릭 신부라고 했다. 그는 신부님 덕분에 며칠 전 이곳에 두고 간 바지를 찾으러 100km 떨어진 곳에서 되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신세 진 것 같아 신부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신부님은 “다른 이를 도울 수 있어 오히려 감사하다”라고 미소 지었다.

대화 중 신부님이 우리 부부에게 북한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깜짝 놀라서 아니라고 했더니, 한국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으면 다들 우리처럼 반응한다며 재미있어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저녁은 숙소 1층 식당에서 순례자들과 함께했다. 오늘은 원형이 아니라 장방형 테이블이었는데, 인사를 나누고 보니 독일·프랑스·호주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운데 자리에 앉은 호주 출신 여성이 크고 거침없는 목소리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중에, 사람들은 제각기 바로 옆이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내는 옆자리에 앉은 젊은 프랑스 연인과 손짓을 곁들여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맞은편 독일 남자에게 차범근·차두리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내 서툰 영어 탓인지 뜻이 잘 통하지 않았다. 첫날에는 누군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다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이제는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 수 있다는 점이 뿌듯했다.


그렇지만 한 시간이 넘는 저녁 자리는 다소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하루하루 길 위에서 배우는 것은 걷기만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며 지키는 규칙, 나누는 인사, 짧은 대화가 곧 순례의 또 다른 풍경이 되어 우리 곁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