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하나 둘러메고 6

생장 피에드포르 - 론세스바예스

by 백승인

다섯째 날, 드디어 순례의 첫 아침이 밝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인 여섯 시 무렵, 우리는 아침도 거른 채 숙소를 나섰다. 배낭을 옮겨주는 ‘동키 서비스’를 의뢰한 뒤, 가벼운 배낭만 메고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숙소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샌드위치와 물을 파는 작은 가게가 있어 서둘러 두 개씩 사두었는데, 아내는 산을 넘어야 하는 길이니 혹시 음식과 물이 부족할까 걱정스러워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걷기도 전에 작은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문득, 제주 우도 올레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침을 굶고 나섰다가 늦게야 식사를 했던 날, 배고픔을 견디지 못했던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아내가 같은 상황을 두려워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첫날 일정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무려 25.1km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미 많은 순례객들이 길을 나서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민가와 숙소를 지나 한참을 올라서니 발아래 평화로운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우리는 길가 한쪽에 돗자리를 깔고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데, 지나던 한국인 젊은이들이 다가와 “두 분 뒷모습이 참 보기 좋다”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 카메라로도 사진을 남겨주며 “멋진 부부”라 격려해 주고 앞서 나아갔다.


멀리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오리손 산장이었다. 피레네 산맥을 하루에 넘기 어려울 때 머무는 곳으로, 순례자들에게는 마지막 쉼터 같은 곳이다. 산장 앞은 이미 순례자들로 붐볐고, 우리도 나무 테이블에 앉아 아침에 사둔 샌드위치를 나눠 먹었다. 반쪽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불러, 나머지는 배낭에 넣었다.


다시 길을 나서자 길가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세워진 성모자상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조용히 다가가 순례의 무사한 여정을 기도했다. 이어지는 길에는 순례 중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는 십자가와 꽃이 곳곳에 놓여 있어 마음이 숙연해졌다. 제주 올레길의 파란 말 모양 ‘간세’ 표식을 떠올리며, 산티아고 길을 상징하는 조개껍데기와 화살표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의 푸드트럭에서는 한국어가 함께 적힌 메뉴판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 순례자가 많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순례자들의 여정은 저마다 달랐다. 우리처럼 걷는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말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짐수레를 끌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대부분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모습이었고, 가벼운 차림은 드물었다. 바욘에서 만났던 대만 여성도 거대한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것을 우리가 지나쳤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만났을 때는 우리처럼 간편한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었으리라.



잠시 들른 ‘롤랑의 샘’은 문학적으로는 의미 있는 장소라 했지만, 실제로는 물이 흐트러져 그다지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니 국경이 나타났다. 검문소 하나 없는 국경선, 대신 스페인 나바라주를 알리는 큰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기념사진을 남기며 새로운 나라로 들어섰음을 확인했다.


길 위에서 만난 젊은 한국 커플은 무거운 배낭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짐작컨대 함께 하는 여행을 의미 있게 보내려 선택한 길일 텐데, 벌써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물론 남의 일에 불필요한 걱정일 뿐이지만, 부부 또는 연인이라는 인연의 무게가 이 길 위에서도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우리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아내는 작은 배낭을 멨음에도 고관절 통증을 호소했다. 몇 걸음마다 쉬어야 했지만, 제주 올레길을 완주했던 경험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 마침내 오후 네 시경, 론세스바예스의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숙소 옆 넓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사람 중에 파리 한인 민박집에서 만났던 대구 출신 여성이 있었다. ‘우리는 새벽에 출발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일찍 길을 나선 걸까?’ 부지런함에 감탄하며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흔들었다.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니 숙박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미 30여 명 넘게 대기 줄에 늘어서 있었다. '동키 서비스'로 미리 보낸 배낭을 찾은 후 아내를 대기 줄에 남겨두고, 나는 근처 사립 알베르게 ‘라 포사다’를 찾아갔다. 다행히 빈방이 있었고,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여권을 가져오라 하기에 다시 공립 알베르게로 뛰어가는데, 잠시 사이에 방이 다른 이에게 돌아갈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내와 함께 다시 ‘라 포사다’를 찾아가 프런트에서 계산을 마친 후 배정받은 2층 방으로 들어서자, 아내는 호텔처럼 깔끔한 실내를 보고 아이처럼 기뻐했다. 저녁은 1층 대형 식당에서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는 순례자를 포함해 1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했다. 둥근 테이블마다 열 명 남짓이 둘러앉았지만, 영어가 서툰 우리 부부는 그저 식사에 집중했다. 의외로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녹두 수프와 닭고기, 생선 요리… 기대 이상이었다. 아내는 특히 녹두로 만든 수프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매점에서 산 냉수 두 병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 직후 갑작스러운 오한이 몰려왔다. 온몸이 떨려 급히 침대에 몸을 누이자, 놀란 아내가 이불을 덮어주고 꼭 끌어안아 주었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진정되었고,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순례길 첫날은 이렇게 끝이 났다. 고단했지만,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새삼 확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