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콩코르드 광장, 바욘, 생장 피에드포르
넷째 날은 파리를 떠나, 순례가 시작되는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샤이요 궁전으로 향했다. 에펠탑을 보기 위해서였다. 탁 트인 광장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으로 이동했다. 개선문 앞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붐볐고, 그들 중 일부는 도로 한복판까지 나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기념사진을 남겼다.
이후 서둘러 샹젤리제 거리로 내려와 걷다가, 길 건너 명품 매장이 보이는 노상 카페에 들어갔다. Uni Sex라는 이름의 카페는 온통 빨간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에스프레소와 핫 초코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길 건너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샹젤리제 거리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뻗은 12개의 거리 중 가장 넓고 유명한 거리로,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약 2킬로미터를 곧게 이어주는 가로수길이다. 인도를 포함하면 폭이 124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카페를 나와 콩코르드 광장까지 천천히 걸으며 파리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오벨리스크가 보일 무렵, 길 건너편의 미술관을 지나쳤다. 그곳은 그랑 팔레와 프티 팔레로, 복합문화공간이자 파리 시립미술관이다. 특히 프티 팔레의 상설 전시는 무료인데, 렘브란트, 루벤스, 모네, 시슬레, 피사로, 세잔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파리가 선사하는 뜻밖의 행운이랄까. 아쉽게도 우리는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은 채 지나쳤다.
콩코르드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광장으로, 많은 영화와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루이 15세 광장이라 불렸지만, 프랑스 혁명기에는 단두대가 설치되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된 혁명광장으로 바뀌었다. 이후 희망과 화합을 상징하는 '콩코르드(Concorde)'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선물 받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고, 광장 바닥에 깔린 돌은 바스티유 감옥의 벽돌이었다고 한다.
이후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몽파르나스 지역으로 이동했다.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긴 뒤, 몽파르나스 역에서 오후 1시 출발하는 테제베(TGV)를 탔다. 점심은 열차 안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로 해결했다. 오후 5시, 바욘 역에 도착했지만 생장피에드포르로 향하는 버스는 밤 9시가 넘어야 출발한다고 했다. 시간을 아껴보고자 다른 여행객들과 택시 합승을 시도했지만 두 번이나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역 앞의 멕시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둘러볼 만한 곳을 찾느라 지도를 검색해 보니 역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다리 건너편이 바욘시내인 듯했고 오른쪽으로 멀지 않은 위치에 그 도시의 성당이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미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배낭을 맡길 곳이 없어 무거운 짐을 앞뒤로 짊어진 채 약 20분을 걸었다. 가는 길에, 역 앞에서 택시 합승을 제안했던 동양계 여성을 마주쳤다. 그녀는 대만 출신으로, 오늘은 이곳에 머물고 내일 생장피에드포르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숙소에 짐을 풀었는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잠깐이라도 말을 나눈 적이 있어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마을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큰 성당이 나타났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약 1시간가량 미사에 참석했는데, 나는 영성체도 모셨다. 프랑스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미사 전례는 세계 공통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간혹 나가는 동네 성당에서의 미사와 별반 다르지 않아 익숙한데, 다만 영성체를 모시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신자들은 무릎을 꿇거나 선 채로 손으로 받거나, 입을 벌려 직접 받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했고, 나는 평소처럼 선 채로 손으로 받아 모셨다.
낯선 도시에서의 기다림 속에서도 뜻밖의 만남과 특별한 경험이 이어졌다. 순례길의 시작은 그렇게 조용히 다가왔다.
밤 10시 30분경, 드디어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을까?"였다. 버스 승객만 해도 30명이 넘었기에 혹시 빈방이 없을까 걱정이 앞섰다. 아내에게는 천천히 따라오라고 하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순례자 안내센터로 향하는 오르막 길을 거의 뛰다시피 했다. 1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달리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 이유는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느리게 걷고, 주변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순례 첫날부터 숙소 걱정에 허둥대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자 안내센터에 도착했지만, 예상과 달리 뒤따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리 숙소를 예약해 온 이들이 많았던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순례자 등록을 마친 후 안내받은 숙소로 향했다. 짐을 풀고 간단히 씻은 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 있었다.
순례자 숙소는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무는 곳이라 침대에 벌레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우리는 침대 위에 비닐을 넓게 깔고 구석구석에 살충제를 뿌렸다. 움직일 때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우리가 머문 방에는 이층 침대가 6개 있었고, 침대가 다 차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먼저 잠든 사람들을 깨울까 조심스러웠다. 파리에서부터 긴 이동 끝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쉽게 잠이 들지는 않았다. 내일 과연 잘 걸을 수 있을까? 악명 높은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