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셋째 날, 베르사유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 13호선과 지상 철도 T3a를 갈아타며 이동했다. 베르사유로 가기 위한 RER. C선을 이용하기 위해 도착한 기차역에서는 매표소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결국 자동판매기를 이용해 표를 끊으려 했지만, 작동 방법을 몰라 난감했다. 그때 다행히도 프랑스 젊은 남녀 한 쌍이 다가와 기꺼이 도와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열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얼마 전 사는 집 가까이에 있는 햄버거 매장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키오스크 사용이 서툴러 망설이고 있던 나를 본 한 젊은 청년이 다가와 도와준 덕분에 원하는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참 친절하고 멋지다.
베르사유 사토역에 내려 베르사유 궁전에 도착하자,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패키지여행으로 왔을 때는 가이드가 입장권을 미리 준비해 주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줄만 서면 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줄 끝에 섰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주변 사람들 중 이미 입장권을 손에 쥐고 있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주변에 물어보니, 매표소는 궁전 광장 왼편 건물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줄을 맡기고 서둘러 매표소로 향했다. 입장권을 사서 돌아와 보니, 아내는 어느새 입구 가까이 있었다. “언제 이렇게 빨리 갔지?” 농담을 건네며 다시 줄에 합류했다.
베르사유 궁전 내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답게 여전히 웅장하고 화려했지만, 이미 몇 번 둘러본 곳이라 그런지 예전만큼 큰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궁전 뒤편으로 나서니 눈앞에 펼쳐진 정원과 운하의 풍경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흔히들 베르사유의 진짜 매력은 궁전보다 정원에 있다고들 하는데, 직접 보니 그 말이 실감 났다. 정원은 여의도의 약 세 배에 달하는 800헥타르의 넓은 대지 위에 20만 그루의 나무, 수많은 산책로와 운하, 20여 개의 분수, 200점이 넘는 조각상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와 ‘4단 케이크’처럼 생긴 라토나의 분수와 넓은 잔디밭을 지나, 태양의 신 아폴로가 전차를 타고 바다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아폴로의 분수를 지나자 대운하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걷다 보니, 베르사유 궁전에 비할 바 없이 아담하고 수수한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루이 14세가 궁정 생활의 답답함을 피해 머물렀다는 ‘그랑 트리아농’이다. 이곳은 이후 나폴레옹 1세와 드골 대통령도 사용했고, 오늘날에는 외국 국빈을 맞이하는 영빈관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내부에는 당구대와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흥미롭고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다시 오른쪽 방향으로 10여 분 정도 더 걸으니 마리 앙투아네트의 영지가 나왔다. 그녀는 사치스러운 궁전 생활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목가적인 삶을 즐겼다고 한다. 작은 농장과 시골 마을을 재현해 놓은 이곳은 마치 동화 속 장면 같았다. 그중에서도 연못가에 있는 ‘사랑의 신전’은 앙투아네트가 애인과 밀회를 나누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아내와 나는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전 내부는 물론 광활한 정원까지 둘러보느라 다리가 꽤나 아팠다. 정원을 둘러보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단체 여행으로 왔을 때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정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기에 그 자체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베르사유에서의 하루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이곳은, 다시 찾아와도 여전히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