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대성당, 몽마르트르 언덕, 뤽상부르 공원
여행 둘째 날 아침, 지하철 지도를 손에 들고 낯선 역에 내려 파리의 거리를 걸었다. 숙소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어 이동은 무척 편리했다. 파리의 지하철 노선은 실핏줄처럼 촘촘하게 퍼져 있었고, 운행 간격도 짧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역에는 티켓 창구가 따로 없고 자동판매기만 있었는데, 1회용 티켓을 10장 묶음으로 사서 사용했다. 서울 지하철이 파리를 본떠 만들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이용 방식이 낯설지 않고 금세 익숙해졌다.
첫 목적지는 시테 섬 동쪽의 루이 섬이었다. 프랑스 왕 중 유일하게 성인으로 추앙받는 루이 9세의 이름을 딴 이 섬은, 18세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급 주거지로 고즈넉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다. 골목을 걷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는데, 여행 안내서에서 본 적이 있던 ‘베르티용’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갔는데 주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종업원이 영어로 설명해 주었지만 잘 알아듣지 못해, 원했던 것과는 달리 한 컵에 두 가지 맛이 담긴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사실은 두 컵에 각각 다른 맛을 주문하려 했던 것인데, 실수를 어색한 웃음으로 덮었다. 아내도 함께 웃으며 나의 무안함을 감쌌다.
루이 섬에서 생루이 다리를 건너 시테 섬으로 들어서니, “최초의 파리는 시테 섬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실감 났다. 동네 작은 공원과 같은 요한 23세 광장 너머로 드러난 노트르담 대성당의 웅장한 뒷모습이 압도적이었다. 몇 해 전 단체 관광 때 그 광장에서 자유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웃는 얼굴로 다가와 손목에 끈을 묶으려던 흑인들의 호객행위가 떠올랐는데, 이번에는 그런 모습은커녕 관광객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왼쪽 편에 두고 정문을 향해 걸었다. 대성당은 잔 다르크의 시성식과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거행된 유서 깊은 장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늘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성당 앞 광장은 행사를 준비하는지 가건물이 들어서 있었지만 세계적인 관광명소답게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예전 방문 때 ‘포앵 제로’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언젠가 다시 오기를 바랐는데, 그 소망이 이루어진 듯해 감회가 새로웠다. ‘포앵 제로’는 프랑스 전역 도로의 기준점으로, 파리의 중심을 상징하는 곳이다.
그동안 매번 대성당을 외부에서 둘러보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정면의 세 개 문 중 오른쪽 성 안나의 문으로 들어가 성당 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자리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나오기 전 기념주화를 구입하고 성모 마리아의 문으로 나왔다. 이후에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화재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아팠었는데 다행히 지난해 말 재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대성당에서 나와 걷던 중 공원처럼 조성된 정원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니 병원이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공간이었고, 정원이 아름다워 천천히 거닐었다. 병원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7세기에 세워진 파리 최초의 병원으로, 19세기 후반 현재 모습으로 재건되어 지금도 운영 중인 유서 깊은 병원이었다.
이어 찾은 생트 샤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층에서 좁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벽면부터 천장까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공간이 펼쳐진다.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어떻게 구경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문맹이 많았던 중세 시절, 일반인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생트 샤펠 맞은편에는 콩시에르주리가 있다. 이곳은 파리 최초의 형무소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를 포함한 사형수들이 단두대로 가기 전 수감되었던 감옥이라고 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다고 전해진다. 권력의 허무함을 상기시키는 장소였다. 생트 샤펠과 콩시에르주리는 통합 티켓으로 함께 관람할 수 있었다.
콩시에르주리를 나와 걷다 보니 삼각형 모양의 도핀 광장이 나타났고,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고르기 어려워 칠판에 적힌 세프 추천 메뉴를 주문했는데, 예상과 달리 나무토막 같은 식감의 버섯 요리가 나왔다. 혹시 메인 요리가 따로 나오나 기다려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내는 송로버섯일 거라고 추측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떠나는 장면의 배경이 된 레스토랑 Paul이었다.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근처에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으로 유명한 퐁네프 다리도 있다.
식사 같지 않은 점심을 마치고 시테 섬을 떠났다. 센 강변을 지나가다 촬영 중인 현장을 봤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 여성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파리 곳곳이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만큼, 이런 풍경이 어색하지 않았다. 센 강변을 따라 걷다가 생 미셸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대학가가 밀집한 지역으로, 서울의 대학로를 연상시킨다. 미카엘 대천사가 악마를 밟고 서 있는 분수 근처 가게에서 크레페와 커피를 사서 걸으며 먹었다. 그것이 이날의 진정한 점심인 셈이었다. 영어 전문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눈에 담고, 생 미셀역에서 4호선을 탄 후 중간에 2호선으로 환승해 몽마르트르로 향했다.
앙베르 역에서 내려 사크레쾨르 대성당까지 걸었다. 몽마르트르는 단체 여행 때 들렀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대성당 앞 계단엔 젊은이들이 길거리 공연을 즐기고 있었고, 우리도 사람들 틈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여유로운 배낭여행의 매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몇 해 전 단체 여행 왔을 때 한정된 자유시간 때문에 사크레쾨르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느라 테르트르 광장을 가보지 못한 걸 아내가 무척 아쉬워했던 터라 이번에는 대성당을 지나쳐 광장으로 갔다.
무명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파리의 낭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걸어 다니느라 땀도 흘리고 복장도 단정하지 못했지만 모델이 되어 내 모습을 무명 화가의 화폭에 담아 오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곳저곳으로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와 앙베르 역으로 가던 중 푸니쿨라 역 근처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했다. 무료였지만 1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마주한 지저분한 시설은 실망스러웠다. 우리나라의 깨끗한 화장실이 떠오르며, 역시 '공중화장실은 우리나라가 최고야'라면서 '국뽕'에 젖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공중화장실을 공공시설물로 인식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이용한 사람이 돈을 내야 한다는 사용자 부담원칙이 분명하다고 한다. 무료화장실을 이용한 것 자체가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앙베르 역에서 2호선을 타고 중간에 12호선으로 갈아탄 후 숙소 인근 몽파르나스로 돌아와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했다. 이 공원은 앙리 4세의 왕비이자 루이 13세의 모후인 마리 드 메디치가 조성한 정원으로,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사랑한 곳이었다. 5월 초순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쌀쌀했지만 연못가에 앉아 수많은 프랑스 사람들과 어울려 햇빛을 받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 공원은 헤밍웨이도 즐겨 찾았던 곳이며, 궁전은 현재 프랑스 상원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공원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 길에 몽파르나스 묘지를 지났다. 이곳에는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모파상, 보들레르 등 유명 인사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도심 한복판에 대형 묘지가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지만, 여행 첫날부터 묘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파리의 골목을 걸으며 느낀 것은 인도가 차도보다 넓고, 폭이 좁은 길에서는 신호등 색과 상관없이 보행자가 우선이라는 점이었다. 신호등이 빨간색인데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길을 건넜고, 자동차는 조용히 멈췄다. 아내와 나는 이런 풍경을 ‘파리 스타일’이라 부르며, 귀국 후에도 종종 웃으며 이야기했다. 가끔 사는 아파트 주변에서 무단횡단을 하면서 '파리 스타일'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줄지어 선 작은 가게들을 보며 어린 시절의 동네 풍경이 떠올랐다. 빵집 앞에 늘어선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그 줄에 서서 갓 구워낸 따뜻한 바게트를 사고, 마트에 들러 저녁 식사 재료를 구입해 숙소로 돌아왔다. 파리의 낯익고도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