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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Jun 07. 2022

초짜 형사, 수사관 교체 당하다.

담당 수사관이 부당하다고 느끼시나요? 수사관 기피 신청하세요.

브런치 작가 등단 이후, 이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했었다. 나 자신에게는 굴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신참 형사 시절에 이러한 일 또한 있었기에 지금의 강력 형사인 내가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용기를 냈다.

글쓰기는 솔직함이 매력 아니겠는가.



2002년 여름. 

20대 중반의 친구가 씩씩하게 사무실을 찾아와 고소장을 제출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한 알코올 치료 클리닉에 반강제로 입원당했는데, 그 병원 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침대에 묶이던 과정부터 맞아 입안에서 피가 나 침을 뱉었는데 그게 그 직원 신발에 튀어 더 많이 맞았다며 피해 상황을 상세히 진술했다.

중독 상태가 심각하여 젊은 나이임에도 두 번째 입원이었다.


가해자로 지목한 병원 직원을 소환해서 추궁하자 치료를 위해 강제력을 행사한 적은 있으나, 폭행한 사실은 없다며 전면 부인다.

자백이 없이 범행 입증을 위해서는 다른 증거가 필요했으나, 내부 cc-tv도 없어서 직원이 끝까지 부인한다면 입증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고소 직후, 피해자와 가족들은 병원 입구에서 폭력을 행사한 병원 관계자를 처벌해 달라는 취지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현장 조사도 했다.

폭행당했다는 병실도 확인하고, 원무과 직원도 참고인으로 조사를 마쳤다.  

얼마 후 피해자의 형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저... '사관 교체 요청'을 했습니다. 반장님은 친절하게 제 동생 조사를 잘해 주셨는데요. 그렇게 친절하게 병원 직원을 조사해서는 절대 시인 안 할 겁니다. 그러니 좀 무섭게 하시는 분이 조사해야 할 것 같아서요."

현재는 '수사관 기피 신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아, 굴욕이었다. 나는 수사하면서 교체 안 당할 줄 알았는데... 사관 교체를 당하다니.

선발투수가 5회도 못 채우고 조기 강판당하는 느낌도 이것보다는 못하리라...

결국 베테랑 정 반장님이 사건을 인계받았고, 며칠 후 조사에서 그 직원은 범행을 시인했다. 병원에 사표도 냈고.


느낀 점이 많았다.

- 사건을 좀 안일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 피해자의 고통보다는 알코올 중독 환자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
- 병원 직원이 그럴 리 없다는(?) 선입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사건이 마무리되고, 병원 측과 원만히 합의까지 되었다고 전해 들은 며칠 후에 피해자 가족이 찾아와 인사를 전했다. 죄송하고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사건이 잘 끝났다고 하면서 말이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해서 오히려 죄송하고 잘 마무리되어서 다행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사무실을 나서는 가족분들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저 또한 덕분에 많은 걸 배웠습니다.'


범죄수사규칙 제9조(기피 원인과 신청권자)   ① 피의자, 피해자와 그 변호인은 ...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2. 경찰관이 불공정한 수사를 하였거나 ... 사정이 있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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