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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Sep 07. 2022

해외 항공기 결항되면 대사관이 도와드리지 않습니다.-2

2015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벌어진 베트남 항공 결항 사태 (2)

<< 1편 >>


<< 1편 >>에 이어서...

- 감사합니다. 총영사관 경찰영사입니다.
- 야! 씨X 너 어디야?

- 지금 가고 있잖아요~
- 가고 있잖아요?? 말이 짧아. 이 새X가!

- 욕은 하지 마시구요~ 좀 기다리세요. 곧 갑니다.
- 야! 나 공항 ×번 기둥 옆에 있으니까 그리로 오라고!!


이럴 땐 정말 사기가 저하된다.

하지만, 20여 년간 강력팀 형사에 경제팀 수사관 경험으로 다져진 욕설 견디기 내공(?) 만렙에 가까운 나다.

저런 시비에 말려들어서 같이 말싸움해 봤자 의미가 없다.

꾸~욱 참고 공항에 도착했다.


출발 게이트 근처 여기저기에 기다림에 지쳐 앉아 있고 누워 있던 한국인 승객들을 가로질러 카운터로 향했다.

다행히도(?) 붙들렸으면 시간이 더 지체되었을 분기탱천한(?) 그녀는 그 기둥 옆에 없었다.


그 순간...

몇몇 승객들이 양복을 입고 지나쳐 가는 내가 영사임을 직감하고


"야~ 왔다, 왔다!"

"야, 영사관에서 왔어, 왔어!"


함과 동시에 대여섯 명은 스마트폰을 들고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pixabay image


하...

기자들 앞에서 수많은 사건 브리핑과 다수의 매스컴 출연으로 단련된 나이지만, 이건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제 와서 실토하자면 진짜 많이 당황스러웠다.

파견 1개월 된 새내기 경찰영사라 겁도 났었고...


말 한마디나 행동 실수 하나가 바로 유튜브 업로드되어 비난 각이다.


베트남 항공 직원에게 총영사관 경찰영사임을 밝히고, 상황 설명을 요청했다.

기체 결함으로 24시간 후에 항공편을 마련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당장 항공편을 만들어 내라고 해서 대치 중이라 한다.


총영사관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 동영상에 더 이상 노출되어서는 곤란했다.

조용한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여 동영상의 표적에서 벗어났다.

pixabay image


베트남인 여객팀장, 한국인 매니저와 명함을 교환하고, 대화 시작도 전에 한국인의 행태에 대한 하소연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사님~ 꼭 한국 사람들만 이럽니다.

도쿄행 비행기와 인천행 비행기가 비슷한 시간대에 있는데요.

예전에 도쿄행 비즈니스 석 탑승 시작했는데, 인천행이 결항되자 한국인들이 난리를 피워서 도쿄행 탑승객들에게 기체 이상(?)이 발생했다고 내리게 하고 그 비행기에 한국인들을 태워 인천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한다.

일본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당시에는 조용히 항공사의 요청에 따르지만, 나중에 홈페이지나 메일을 통해서 항의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현장에 나온 이상 협상을 해야 했다!


항공사 측의 입장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번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 내일 아침 인천공항 도착 후 출근도 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하여 더 빠른 항공편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대치 상황의 끝이 어떻게 될지 영사인 나도 모른다며 은근한 압박(?)도 가미했다.

pixabay image


여객팀장은 여기저기 수소문을 시작했다.


몇십 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하노이에 있는 항공기를 호찌민으로 보내는 등 조정을 통해 오전 11시 항공편을 겨우 마련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급조된 작은 항공기라 좌석수가 120여 석 밖에 되지 않아 미리 호텔로 돌아간 승객을 제외하고도 20명 정도가 더 남아야 했다.

그 부분은 200불 보상을 해 주는 차원에서 자원자를 받기로 하고, 매니저 더러 대체 항공편이 마련되었다고 발표하도록 했다.


발표 전에 한국인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고소한다고 했던 베트남 직원이 사과를 먼저 하도록 제의했던 점도 원만한 해결에 일조했다.  


베트남 직원의 사과가 끝나고, 매니저가 발표를 했다.


- 여러분! 여러 사정을 감안해서 오전 11시 대체 항공편을 마련했습니다.

- 다만, 스무 명 정도는 탈 수가 없어서요. 이미 준비된 오늘 밤 비행기를 타셔야 합니다.

- 대신 자원하시면 200불 보상금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얼굴 화끈 거리는 일이 또 발생했다.

이미 회사에 결항으로 출근이 어렵다고 통보한 몇몇 승객들은 우리가 남을까? 200불 받고 하루 더 관광하다가 밤에 출발하면 되잖아? 하면서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서로 자원을 위한 눈치 작전이 시작되었다.

머뭇머뭇거리다가... 제가 남을게요. 저희가 남을래요 등등 몇 분 만에 20 자리가 완판(?)되었고, 뒤늦게 자원한 몇몇 승객은 마감되어 아쉬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항공기 결항 사태를 마무리 짓고 항공사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발길을 돌렸다.

pixabay image


조력 범위 여부를 떠나서 현장 출동한 영사로서 자국민을 위한 민원 하나를 멋지게 해결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돌아가는 길...


아기 분유가 떨어져 걱정했는데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는 신혼부부,

연신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외쳐 주시는 분들,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전해 주시는 분들의 미소는...

 

힘들었던 몇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뒤늦게 이번 결항 사태를 복기해 보았다.


첫 번째, 재외공관이라고 하는 대사관, 총영사관의 업무 범위(특히 영사 조력 범위)에 대한 여행객들의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


나 또한 파견 근무 전에는 해외에 나가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는 모두 대사관이나 총영사관에서 처리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에서는 학교 커리큘럼에 외교부의 업무에 대해서 소개하는 챕터를 넣기로 교육부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전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외국인의 사건사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외국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사고처리를 그 나라 영사가 하는가? 우리나라 경찰이 하는가?


두 번째, 부득이 결항 현장에 나갔으나, 내가 협상을 주도해서는 안되었다.


즉, 여러분 이 상황은 영사가 개입해서 해결하는 상황이 아니고요. 승객 중에 대표 한두 분 정도 선정해 주세요라고 해서 그 대표자와 항공사 간에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했어야 했다.

그들 간원만한 합의안이 도출되도록 했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새내기 영사로서 운이 좋게도 결과적으로 베트남이라는 특수성과 나의 협상력(나는 20여 년간 복잡다단한 경찰 현장 실무 경험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협상론'이라는 과목도 이수했다.)으로 대치 상황을 정리하고, 최대한 신속히 국민들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귀국시킬 수 있었다.
베트남 항공 여객기 - 연합뉴스 자료 화면


호찌민 떤선녓 공항에서의 드라마틱한 항공기 결항에 따른 소동...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 베트남항공은 이날 오전 11시에 대체기를 투입할 계획이며, 승객들은 오후 6시 5분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아래 기사 인용)
--- 대체기 투입에 내가 일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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