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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03. 2022

전 여친 차에 위치추적기 달고... 우리 만남은 운명?

2009년 6월 오전 형사 당직 근무 중에 여대생 2명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테이프가 지저분하게 감긴 채 예전에 삐삐라고 불렀던 무선호출기 모양의 물건을 들고 와서는 상담을 하러 왔다는 것이다.

무선 호출기... 일명 삐삐


여대생 중 한 명이 우연히 자기 차의 뒷 범퍼에 삐삐 모양의 물건이 테이프에 매달려 질질 끌리는 것을 보고 떼어 내 보니 위치추적기 같아서 겁이 나서 경찰서에 왔다는 것이었다.


나도 당시 처음 보는 물건인 데다 여대생들이 무슨 대단한 정보원(?)도 아닐 텐데 위치 추적까지 당할까 싶기도 하고, 당장 어떤 죄에 해당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일단 검토해 볼 테니 돌아 가 계시라고 했다.

2007년에 위치 추적기가 아닌 휴대전화를 직접 설치한 사건 다음으로 이번 사건이 이슈화될 정도로 흔치 않은 범죄였다.

그리고는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GPS추적기 판매 회사 홈페이지부터 시작해서 각종 정보를 검색하여 결국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저촉될 사안으로 판단하고 그 여대생을 다시 불렀다.


여대생은 자신의 위치를 추적할 만한 사람은 전혀 없고, 굳이 의심을 한다면...

아버지가 모 유명 그룹 계열사의 사장인데, 차 명의자인 아버지를 추적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기초 조사를 마치고 GPS추적기 판매 회사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통하여 GPS추적기의 원리와 구입 방법 등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서 GPS추적기를 구입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차량의 뒷 범퍼에 테이프를 붙여 몰래 숨겨놓을 것이므로 실명으로 구입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문을 발송하여 구입자를 확인했다.


확인 결과, 피해 여대생과 동일한 나이의 한 남자로 파악이 되었고 여대생에게 확인해 보니 몇 년 전 사귀다 헤어진 친구라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피의자를 체포하여 조사하자 순순히 범죄사실을 시인하였고, 범행 동기는 황당하게도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위한 것이었다.


전 여친의 위치를 계속 추적해서 위치를 확인한 다음 그곳으로 재빠르게 가서 우연을 가장하여 만나서 우리 만남은 운명인 것 같다면서 다시 만남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전 여친의 위치를 확인하고 재빨리 차를 몰아 현장으로 가기도 했으나, 이미 자리를 떠나 버려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다고 한다.


테이프가 더 견고했었다면(?) 정말 운명적인 만남을 몇 번 가졌을까?


<관련 기사>

http://www.kukinews.com/newsView/kuk200906180084


@ 슬기로운 형사생활(200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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