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많아서 앞으로 망자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인 줄 알았다. 이제 학교를 벗어나 사회로 나가야만 하는 20대의 시각에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재해석해 보니 포스트 코로나 방식대로 사회,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없다는 말 같았다.
사실 취업난이 20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회문제인 것처럼 말하던 때가 무색하게도 코로나가 세상에 등장한 후로 이 땅의 20대들 (마치 나 같은) 전후무후한 규모의 재난들에 휘말리고 있다. 우리가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Z세대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에 밝지도 않지만 부모님 세대인 X세대처럼 '노력'한 만큼 이루어 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아래 세대와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도 다르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배운다. 난 이게 신기한 걸 배우는 걸 넘어서 아주 실리적인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나는 학교에서 실용적인 과목을 배운 기억이 없다. 기껏해야 <기술과 가정>?
우리는 운전면허증이 자격증 하나 취급받으면서 노력만 하면 농력 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산 윗 세대들이 주입한 방식대로 '훌륭한 인적 자원'이 되기 위해 열심히 책상 위에 앉아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만 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좋은 대학만 가면 탄탄대로가 눈 앞에 펼쳐지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서 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며 적당히 돈을 벌다 적당히 결혼하면 행복해진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열심히 수능을 준비해서 대학에 오니까 그들의 말은 틀렸다. 대학 입학만을 위한 탁상공론 같은 공부는 세상을 잘 살아가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그래서 아래 세대들은 어떻게 사나 봤더니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아이들도 세상살이에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보다 더 열린 사고를 갖고 변화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게끔 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영어학원에서 조교 아르바이트를 했을 무렵 내가 가르치던 초등학생들에게 요즘 학교에선 어떤 걸 배우냐고 물어봤더니 초등학교에서 코딩은 기본이고 유튜버가 되기 위한 영상편집법도 가르친단다.
이렇듯 세상이 변화하는 것에 더 똑똑하게 키우고, 우리보다 어린 나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실리를 일찍이 파악해서 내 세대보다 더 성공한 똑똑한 z세대들도 많다.
그러니 윗 세대들에겐 우리가 침체되어 있는 것은 노력을 안 해서라고 무시당하고, 아랫 세대에겐 나이만 먹고 한 게 없다고 무시당하기 딱 좋다.
나와 같은 처지라면 아마 20대 중반쯤 되는 나이일 것이다. 정석대로라면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할 준비를 하고 취업 준비를 해야 할 나이. 그런데 우리는 실업률은 oecd 국가 중에 1위인 곳에 살고 있다. 그것도 9년이나!
더 억울한 건 사람들은 취업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눈치도 아니다. 어느새 낮은 취업률은 일상으로 변해서 다른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고, 그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만 아등바등하는 것이다.
심지어 윗 세대 꼰대들은 우리가 노력을 안 하고 쓸데없이 눈만 높아서 좋은 곳에서만 일을 하려 한다고 비아냥대기 일쑤다. 자기네들이 말하는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직장을 가지고 행복해진다고 말해서 열심히 책상 앞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미친 듯이 공부했는데 막상 현실은 서울대 나온 놈들도 취업이 안 되고.. 그러니 우리도 취업이 잘 안 될 수밖에.
당신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좋은 직장 가지려고 놀고 싶은 것, 공부 말고 이루고 싶었던 꿈들, 다 놓고 열심히 공부만 했으니, 당연히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우리한테 경주 나가는 종마처럼 눈가리개랑 입마개를 씌우고 세뇌만 하면서 눈을 높인 게 누군데 이젠 그걸로 우리 욕을 한대. 억울해 죽겠다.
취업이 안 되니 돈도 없다.
직업이 없으니 자연히 백수 아니면 취준생 상태에 머물게 되어 사회적인 힘도 없다.
세상은 어찌 됐든 경제의 흐름으로 굴러간다.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직관적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의 흐름도 마찬가지이다. 20대의 사회적 문제는 점점 심해지는 데에 반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이거나 본질적인 정책은 없다.
애초에 20대를 위한 뚜렷한 사회 정책이 없어 우리들의 힘이 없어지니, 굳이 사회에서 힘이 없는 계층인 20대를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낼 필요가 없어진다. 이렇게 뫼비우스의 굴레처럼 돌고 돌면서 20대의 어려움은 개선될 여지없이 썩은 물처럼 고이기만 할 뿐이다.
슬프지만 정말 썩은 물과 비교해볼까. 썩은 물은 누군가 치워주기라도 하는데 20대의 어려움은 당사자 말고는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적다.
차라리 이미 모아놓은 자본이 있을 30대나 40대, 아직 삶에 책임을 져도 되지 않는 10대였을 때 이런 격변이 일어났으면 좀 나았을까. 어쨌든 20 대란, 독립을 해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석대로 독립할 준비를 하다가 국제적 재난이 일어났다. 모아놓은 자본도, 세상을 살아 본 경험도 없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 날갯짓을 해서 먹고살아야 한다며 둥지 밖으로 맨 몸으로 내몰린 격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내가 나의 부모 나이가 되었을 때 내 부모님만큼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그럴 수 없는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에 그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부모에게서 배운 처세가 하나도 먹히지 않는 시대를 맨 몸으로 맞게 된 것이다. 요즘은 나의 부모님의 나이가 됐을 30년 뒤는커녕, 당장 한 달 뒤의 내 처지에 대해서 예측을 할 수 없는 시대다.
슬프지만 돈을 버는 방법 만큼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이런 시대일수록 가성비 좋은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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