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으로 얼룩진 마음을 청소하려면

내면의 나를 씻어내는 일기

by 임하다




KakaoTalk_20211208_140728610_02.jpg


먼지를 쓸어 모으고, 걸레질을 하는 기분으로

‘일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매일 일기를 쓸 때마다 머리를 싸매고 이런 의문을 품었다. 오늘은 평일이라 어제와 그다지 다를 게 없는 하루였는데 학교에서는 왜 계속 일기를 제출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돈도 벌지 않고 놀 수 있는 우리가 부럽고 아니꼬와서 이런 식으로 괴롭히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당시엔 일기 쓰는 어른을 실제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 가설에 무게를 힘껏 실어주었다.


어른이 되기만 하면 이렇게 귀찮은 일기 따위는 절대 적지 않겠노라 다짐의 다짐을 반복했다. 어쩌면 일기를 쓰지 않아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릴 때의 굳은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자주 일기장 앞에 앉는 어른이 되었다. 머릿속에 흐릿한 고민들이 둥둥 떠다닐 때나 손톱 거스러미처럼 신경 쓰이는 감정들이 생길 때뿐만 아니라 완벽히 평온한 날에도 불시에 노트를 펼치곤 한다.

일기장을 펼칠 때면 마음의 뚜껑을 딸깍 여는 기분이 들기도, 평소엔 굳게 잠긴 문을 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른이 되고 일기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마음의 불순물은 생각보다 쉽게 쌓인다는 것과 그 불순물들은 일기를 통해 청소가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참다 못 해 일기를 쓴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마음의 뚜껑을 열자마자 거대한 감정들이 힘껏 흔든 콜라처럼 터져 나왔고, 손이 저릿할 정도로 빽빽하게 까만 글씨들을 쏟아냈다. 장장 3시간 동안 그냥 ‘일기를 썼다.’ 라고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더러운 방을 대청소한 것 마냥 힘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일기를 자주 쓰게 되었다. 갑자기 부지런해졌다기보다는 너무나 더러운 방을 치운 후에 질겁해서 평소에 잘 치우자 마음을 굳게 먹은 것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요즘도 먼지를 쓸어 모으고, 걸레질을 하는 기분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치열한 대화와 단단한 선택

내면의 작은 방을 자주 청소하다 보면 가끔 유사한 패턴으로 얼룩진 감정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종종 비슷한 모양의 좌절이나 우울, 불안감을 느낀 적은 없었는지 과거의 일기를 뒤져보곤 한다. 비슷한 흔적을 남긴 과거의 일기는 감정의 얼룩을 빠르고 말끔하게 씻어내는 세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꽤나 기특한 존재다. 과거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현재의 감정을 처리하는 일에 노련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일기를 쓸 때면 보통은 감정으로 얼룩진 너저분한 방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오도카니 앉아있을 때도 있다. 나를 닮은 그 사람은 주로 내가 두렵거나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 나타나 늘 그럴듯한 해답을 알려준다. 그건 분명히 자문자답을 하는 것일 뿐임에도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 일기장 위에서 고민할 때 더 나은 방향이 제시될 때가 많았다. 마치 혼자 고민하는 것과 둘이서 머리를 맞댄 것의 차이처럼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감정의 얼룩을 지운 내면의 방에서 꽤나 많은 선택들을 해왔다. 퇴사를 하고, 글을 쓰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나의 모든 경험들은 대부분 일기장에서 처음 제시된 방향이었다. 자신과의 치열한 대화와 원만한 합의 끝에 내린 이 결정들은 확실히 이전에 했던 선택들과는 단단함 자체가 달랐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해 후회나 불안감을 잘 느끼지 않게 되었고, 잠시 흔들려도 금방 중심을 찾아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이 단단한 선택들이 쌓이고 쌓이면 과연 어떤 삶에 도착할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좀 더 일찍 단단하게 선택하는 법을 배웠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ilya-pavlov-wbXdGS_D17U-unsplash.jpg


일기가 잘 안 써진다면 일기장을 탓하자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고민이 많았지만 고집스러울 정도로 속마음을 꺼내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허무하게도 일기를 손으로 써야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감정이 격해질라치면 슬며시 저려오는 손이 매번 브레이크를 걸었고, 점차 쓰고 싶은 말과 쓰는 속도와의 간격이 커질 때쯤 항상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을 놓치지 않도록 대부분의 일기를 키보드로 쓰고 있다.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기를 쓸 때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쓴다면 몇 년이고 더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분명히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일기에 흥미를 잃은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우선 본인에게 맞는 형태로 일기를 써보길 권하고 싶다. 일기를 쓰는 게 청소라면 자신만의 일기장을 찾는 건 내 손에 꼭 맞는 청소도구를 고르는 일과 같다. 눌러 붙은 감정을 긁어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일기를 쓰는 방식마저 나와 맞지 않으면 모처럼 일기를 써보려고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만약 키보드를 치는 것조차 귀찮다면 휴대폰에 메모를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진솔하게 담을 수 있다면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나는 종종 다른 사람들은 내면의 공간을 얼마나 어떻게 자주 청소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일기를 자주 쓰든, 오랜만에 쓰든 내 마음의 공간은 대체로 너저분하기 때문에 이렇게나 성가신 마음의 청소를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해내고 있을지 나로서는 알아낼 재간이 없다.


대신, 당장 소매를 걷어붙이고 마음의 청소를 해야 하는 사람들만큼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부정적인 감정이 있거나, 막연하고 커다란 고민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은 얽히고 설킨 감정의 찌꺼기들이 마음 한 켠에 달라 붙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jk-sloan-5_Ez6yEh8EE-unsplash.jpg


그럴 때 우리는 이 감정들을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쳐다봐야만 한다. 엉겨 붙은 감정은 어렴풋할수록 거대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내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줄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지금도 애써 외면하는 문제나 고민이 있다면 한 번쯤 고요히 앉아 일기를 써보길 바란다. 직접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들어갈수록 거대하고 불확실한 감정은 점차 정제되고, 막연하게만 느꼈던 고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청소하는 일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자신만의 요가라이프를 찾는 파운디(@foundy.me)와 함께하는 파운디 매거진의 2번째 라이프스타일 칼럼을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내면의 작은 방을 청소하는 ‘일기’에 대해 쓰게 되었는데요. 새해가 오기 전, 아직 몇 장쯤 남아있을 일기장을 펼쳐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꺼내 청소해보는 건 어떨까요? 라이프스타일 외에 클린 이팅, 요가, 명상에 대한 칼럼 또한 업로드될 예정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파운디 매거진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oundy.me/home/blog/

매거진의 이전글루틴은 실패할수록 내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