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은 실패할수록 내 것이 된다.

by 임하다




하고 싶으면 뭐든 했고, 하기 싫어지면 미련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는 삶은 그 순간에 잠깐의 쾌락이 스쳐갔지만 얼마 못가 무기력과 우울이라는 뻘 구덩이 속으로 점점 깊게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기력의 뻘 구덩이

사람들은 흔히 루틴이라는 단어를 보고는 곧장 ‘미라클 모닝’이나 꾸준한 반복과 성실함에서 오는 자신감 같은 걸 떠올릴 거라 생각한다. 나도 당장 루틴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실리콘 밸리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꽤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을 자신감 넘치는 사업가, CEO의 미소와 유난히 하얀 치아부터 생각이 나니 말이다.


실제로 미라클 모닝을 오랫동안 하거나 자신만의 루틴들을 몇 년씩이나 지속해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넘어 어떤 경이로움 비슷한 것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그 반짝거리는 성실함에 꽤나 열등감 같은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길지 않은 삶을 뒤돌아 봤을 때, 본인을 작심삼일의 인간화라고 평가할 정도로 전형적이진 않았지만, 습관이나 루틴이 짧게는 7일에서 길게는 2달을 못 가고 포기해버리는 결말이 나에게는 불변의 법칙과도 같았다. 야심차게 계획했던 루틴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면 처음엔 ‘내가 너무 무리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점점 며칠 만에 쉽게 포기해버리는 일이 반복될수록 ‘내가 좀 이상한가?’ 라는 자책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루틴이니 뭐니 하는 건 역시 나한테 별로 어울리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그냥 살았다. 하고 싶으면 뭐든 했고, 하기 싫어지면 미련 없이 포기하고 돌아서는 삶은 그 순간에 잠깐의 쾌락이 스쳐갔지만 얼마 못가 무기력과 우울이라는 뻘 구덩이 속으로 점점 깊게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뭔가를 계획하지 않으니 딱히 성취할 것도 없었고, 성취감이 없으니 그 자리에 가만히 고여 있는 기분으로 존재했다.


그 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우울했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처럼 어떠한 성취감도 없이 한 자리에 고여 있는 상태라는 걸 애써 외면할 수도 없었지만, 당장 눈 앞에 쌓여있는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나는 그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딱 1달만 요가와 운동을 ‘대충’ 해보기로 했다. 여차하면 맨몸 운동을 1분만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무조건 1달이라는 시간동안 운동을 해내야한다는 다소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겉으로 봤을 땐 그저 운동 루틴을 하나 만드는 일에 불과했지만, 내가 한 약속은 내가 지킬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만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꽤 컸었다.


1달간의 도전을 하면서 매일 어떤 운동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꼼꼼히 기록했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내 도전을 감시할 수 있도록 그 기록을 토대로 한 편의 도전기로 엮어 브런치에 업로드했다. 도전의 마지막 날엔 ‘드디어 끝났다!’ 라는 감격과 후련함은 없었지만, 무기력의 뻘 구덩이와는 꽤나 거리가 멀어져있었고 이제 내가 약속하는 건 뭐든 지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충만했다.



작심삼일이라는 업데이트 신호

그로부터 약 3년의 시간이 흐른 이 시점에서 그 때의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나는 이따금 운동이 없는 삶을 살기도 하고, 어제까지만 해도 좋았던 요가의 차분함이 그저 단조로운 지루함으로 느껴지거나 운동에서 오는 활력이 지긋지긋한 근육통으로만 다가오는 날에는 무작정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걷거나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달리기도 한다.


죄책감 없이 운동을 쉬는 날을 가지는 것,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지금의 운동 루틴을 찾기까지 여전히 무수한 작심삼일을 겪어야만 했다.


그 무수한 작심삼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어렴풋하게 알게 된 건 작심삼일을 겪지 않는 방법은 루틴을 만들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넘어지지 않는 방법은 그냥 안 걷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루틴을 실행하기로 결심한 이상 돌아오는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이나 감기처럼 작심삼일을 겪어야만 한다. 나는 그 사실이 꽤나 충격이었다. 작심삼일이라는 건 의지가 약한 나 같은 사람들이나 겪는 일이고, 여기서 내가 조금만 더 발전하기만 하면, 조금 더 완벽해지기만 하면 작심삼일이라는 녀석과는 깔끔하게 작별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다른 기종의 핸드폰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내가 사용하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뒤돌아서면 업데이트를 한다고 느껴질 만큼, 귀찮아서 업데이트를 미뤄두면 그 사이에 새로운 것이 또 등장할 만큼 업데이트를 자주 하는 편이다. 세계적인 기업인 애플에서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여서 만든 그 기계들조차 돌아서면 보완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추가해야할 사항이 있다고 업데이트의 업데이트를 거듭하는데, 어떻게 내가 나한테 딱 맞는 루틴을 하루아침에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회사도 소프트웨어의 작은 결함을 발견했다고 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엉엉 울면서 사업을 단숨에 접어버리진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결함을 발견하면 그 결함을 보완할 업데이트를 계속 하면 된다. 그들이 그러듯이 말이다.


작심삼일은 루틴 만들기의 실패나 절망스러운 결과물이 아닌 나에게 더 맞는 루틴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니 곧 2달 뒤에 다가올 새해에 야심차게 목표할 수많은 습관이, 계획이, 루틴이 어김없이 작심삼일로 와르르 무너진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나아간 것이다. 작심삼일이 왔다는 건 적어도 그 루틴이 나에겐 너무 강압적이었거나, 지루했거나, 무리가 된다는 이유들로 허들이 너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셈이니까.


나도 이제는 내 패턴을 잘 알고 있다.

시작 – 루틴 – 작심삼일 ------(실패로 인한 긴 휴식)-----> 시작 – 루틴 – 작심삼일

어떤 도전을 하든 꼭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데, 나는 이걸 더 이상 첫 번째 시도를 처참히 실패하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ver1에서 ver2로 나라는 사람에 맞게 루틴을 업데이트 했다고 생각한다. 작심삼일은 어떤 부분에 결함이 있었는지 체크하는 시간이자, 새로운 루틴으로 넘어가게 하는 리부팅 시간과도 같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최소한 1가지 이상의 자신의 특성도 뼈저리게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루틴을 만든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수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져야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고, 완벽한 루틴이라는 이상적인 목표에 실패를 거듭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맞는 루틴이 오롯이 남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 어떤 회사도 소프트웨어의 작은 결함을 발견했다고 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엉엉 울면서 사업을 단숨에 접어버리진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결함을 발견하면 그 결함을 보완할 업데이트를 계속 하면 된다.





더 편안한 보폭으로 더 멀리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작심삼일의 벽 앞에 무너진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리라 짐작한다. 혹은 지금도 과거의 나처럼 작심삼일이 찾아올 때마다 금방 밑천이 드러난 자신의 의지력을 원망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당신만의 보폭을 잘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장은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멈춘 게 아니라고 힘껏 응원 해주고 싶다.


업데이트를 하는 시간 동안은 아무리 성능 좋은 핸드폰일지라도 모든 기능을 멈추고 업데이트에만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니 당신도 숨이 너무 차지 않도록 보폭을 조정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다시 묶는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실패라는 이름의 업데이트가 끝나고 나면 당신은 분명 조금 더 편안한 보폭으로 처음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부디 당신의 루틴이 실패로 끝나지 않고, 실패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자신만의 요가라이프를 찾는 파운디(@foundy.me)와 협업하게 되어 총 3편의 라이프스타일 칼럼을 업로드하게 될 예정입니다. 그 중 첫번째 칼럼은 올해 저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루틴’을 주제로 쓰게 되었는데요. 새해 계획을 세울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작심삼일이라는 존재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이프스타일 외에 클린 이팅, 요가, 명상에 대한 칼럼 또한 업로드될 예정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파운디(@foundy.me)의 파운디 매거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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