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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다 Sep 01. 2022

죽음은 빨려 들어가는 것




난 지금까지 죽음은 깊고 까마득한 구멍이라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론 그 구멍이 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는 그 깊은 구멍을 탈출구라고 여길 것이고, 누군가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 깊은 구멍에서 조금씩 어찌할 수도 없이 잡아당기고 있는 죽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죽음은 까마득한 우주를 올려다보는 것만큼이나 신비롭다.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무엇 하나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선 사실 우주보다 훨씬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죽음이라는 깊은 구멍에 대해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고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태어난 이상 반드시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죽음을 어쩐지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태어난 이상 누구도 예외 없이 뛰어내려야 하는 구멍이라니, 가끔은 그 단순한 사실에 서늘한 공포감을 느끼곤 한다.


까마득한 높이의 번지점프대에서도 사색이 되어 손발을 싹싹 빌고 울먹이면 열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아우슈비츠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예외가 있었지 않은가. 비겁하게 새치기를 하거나 수많은 사람 속으로 숨어버린다면 곤란하고 난처한 일들을 요령껏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만큼은 누군가의 뒤에 숨어도, 울먹여도, 도망쳐도 단 한 번의 예외가 없다는 그 사실이 외면하기 힘든 공포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구멍을 나도 모르게 너무 깊게 들여다봤다는 생각에 아차 싶을 때가 있다. 그럼 있는 힘껏 쓸모없는 생각을 하면서 구멍으로부터 천천히 멀어지다 잠에 들곤 한다.



죽는 순간은 주체할  없이 졸음이 쏟아진다고들 한다. 그리고 죽음은 수면과  겉모습이 매우 닮았다.

짧은 인간의 인생에서  하루의 많은 시간에 할애해야 할까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는 죽는 연습을 매일같이 하는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누구도 예외 없이 메멘토 모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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