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어 공부를 하다 처음으로 어떤 의문을 느낀 적이 있었다.
미드로 영어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미드로 공부를 하든 드라마 속 배우의 억양을 그림자처럼 똑같이 따라 하는 '쉐도잉'을 해야만 한다. 나도 이 한결같은 공부 방식에 지금까지 의문을 품은 적은 없었다.
배우가 웃으며 말하면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따라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속사포처럼 대사를 쏟아내면 입으로 탭댄스를 추는 심정으로 영어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잠깐 유튜브를 쭉 훑었는데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내 처참한 쉐도잉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누가 누구를 '손민수'해서 망신을 당했다는, 혹은 망신을 주고 있는 영상들을 종류별로 들이밀었다.
조금 이상했다.
우리는 왜 똑같이 따라 하는 행위를 한 쪽에선 쉐도잉이라는 이름으로 권하고, 한쪽에선 손민수라는 단어로 야유할까?
물론 쉐도잉과 손민수는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행위 이외에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둘 다 어떤 대상을 따라 한다는 점은 같지만, 손민수는 대상을 따라 하는 걸 넘어 그 대상 자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보인다고 판단될 때 사용되는 멸칭과도 같다. 비유를 해보자면, 쉐도잉은 성대모사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성대모사로 진지하게 그 대상인양 행동하려 할 때 손민수가 된다. 정리해보자면, 누군가를 따라 한다는 의미의 쉐도잉 안에 그 행위를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손민수’가 있는 셈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는 걸 다소 부끄러워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 생각해보면 손민수라는 단어가 나오기 이전에도 누군가를 따라 하는 행위에 대해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표절'이라든가 '카피했다'처럼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비슷하게는 조금 더 긍정적인 뜻의 '오마쥬'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이 단어 역시 표절이 아님을 애써 변명할 때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손민수’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후부터 검열이 좀 더 심해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단어의 힘은 생각보다 강해서 '손민수'라는 지칭으로 아주 간편하게 누군가를 아류라는 이름으로 야유하면 그 잣대가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향하면서 검열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아류를 단속하는 단어는 '손민수' 외에도 무수히 많지 않은가. 뭐..지디병, 아이유병 같은 거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진지를 빤다거나, 오글거린다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개성도, 취향도, 생각도 모두 비슷하게 가지치기를 당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장 이 글을 보면 뭐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진지를 빠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웃긴 걸 웃기다고 하고, 오글거리는 걸 오글거린다고 말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고 되려 성을 내려나.
쓸데없는 것에 진지를 빠는 것도, 오글거리게 말을 덧붙이는 것도, 허접하게 누군가를 따라 한다고 손가락질받는 행동들은 한 사람의 생각이, 취향이, 개성이 자라고 있는 순간을 의도치 않게 목격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후부터는 적어도 나까지 끼어들어 신나게 손가락질하는 일만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는 걸 멈추는 시점이 하나의 개성이 만들어지는 성장이 멈추는 시점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좀 따라 해 봐야 내 개성이란 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찢어진 청바지도 따라 입어보고, 실용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옷도 직접 입어봐야 저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구나. 이것보단 깔끔한 스타일의 옷이 잘 어울리는 구나라는 걸 알 수 있게 되지 않나 싶다.
몇 달 전에 밈처럼 대중들이 놀리던 영상이 하나 있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무대를 하는 악동 뮤지션의 이찬혁은 평소 자신의 스타일과는 다른 무대 매너와 발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를 본 대중들은 어떤 대상에게 깊은 영감을 받았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고, 절대 원본이 될 수 없을 그를 타이르듯 놀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대중에게 오글거림이라는 민폐를 끼쳤다는 듯 그가 그런 행동을 그만두길 부드럽게 종용하면서도 원래의 그로 돌아가길, 부디 제정신을 차려주길 간절히 바라는 듯했다.
‘손민수’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누군가의 아류가 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지금 이 시대에 차라리 이찬혁은 용감해 보이기도 했다. 남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상황에서 과감히 다른 색을 뒤집어쓴 셈이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 색은 분명 완벽하지 않았다. 색이 영 얼룩덜룩했고, 이 색도 저 색도 되지 못했다. 그 색은 이찬혁도 아니었고, 지드래곤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 꼴을 보고 놀릴 수도 있을 테지만, 개인적으론 그가 다음엔 또 어떤 색을 뒤집어쓰고 나타날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풋풋하고 청량한 색깔도 그가 발견한 수많은 색 중 하나가 아니였을까.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마음에 드는 색을 뒤집어쓰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여러 개의 색을 섞고 섞다 우연히 대중들에게 발견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대중들은 이 완벽한 색에 티끌 한 점도 다른 색이 섞이지 않길 바랄지 모르겠지만 그는 늘 그렇듯 다른 색을 뒤집어쓴 것일 뿐이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그가 찾아낸 새로운 색에 열광하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런 면에서 연예인들이 누군가의 옷을 따라 입고, 창법을 따라 하는 걸 대중들에게 포착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걸 보면 조금 이해가 되는 듯도 하다. 자신만의 개성이 무기인 연예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치열하게 자신의 팔레트에 색을 섞어도 보고, 다른 색을 뒤집어써보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컬러를 찾고 있을 테니.
개성이 만들어지고 실력이 늘어가는 모든 과정들이 단순히 손민수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쉽게 매도당하는 건 싫다. 당연히 그 대상 혹은 그 대상의 창작물을 훔치려 하거나 그걸로 부당한 이득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겠지만 손민수라는 단어로 누군가의 영감을 너무 손쉽게 손가락질하거나 자신을 검열하진 않았으면 한다.
'요즘 A에게 깊은 영감을 받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실 B가 입는 옷이 너무 멋져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솔직히 말해 C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 라며 너도나도 영감의 출처를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게 되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의 물감이 되어 섞이고 섞여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색깔이 많이 탄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