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를 받다

by 박신호

서울에 다녀왔다. 해마다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서울을 찾곤 했다. 한 번씩 여행 삼아 수도권 바람을 맞는 것은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럴 때면 아내는 누가 기다리고 있냐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곤 했다.

서울 여행이 한 동안 중단된 것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곳에 사는 여동생 식구와 고향 친구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숙주가 될 수는 없었다. 물론 겨울만 되면 ‘도전! 서울’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코로나 창궐도 극심했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가 시들해지자 드디어 이번 겨울에 숙주 될 염려 없이 서울을 갈 수 있었다.


가성비는 여행의 중요한 원칙이다. 자가용보다는 주로 발품과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하고, 혼밥 상관없이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맛보다는 칼로리 위주로 끼니를 해결한다. 잠자리도 주로 찜질방을 선호했다. 덕분에 제주도 2박 3일 여행도 십만 원으로 해결한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딸과 아내는 나이를 생각하라며 타박하지만 나만의 청춘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 정월, 전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때도 찜질방부터 찾았지만 코로나 탓에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딸의 도움으로 별 세 개가 표시된 호텔을 예약했는데 예상보다 저렴했다. 게다가 객실 분위기도 아늑했고 고급스러웠다. 그동안 이런 곳을 모른 채, 찜질방만 찾았다니 참 세상 물정 몰랐구나 싶었다.


설 연휴 다음날 서울 향했는데 이날부터 강추위가 남하했다. 일기 예보에서는 서울의 체감기온이 영하 20도라며 매서운 동장군 기세를 전했다. 예상치 못한 혹한 때문에 예약해 놓은 숙소를 변경해야만 했다.


처음 예약한 별 세 개짜리 호텔은 입실이 저녁 여덟 시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동장군이 활보하는 추운 날, 낯선 곳에서 그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오후 세 시부터 입실 가능하다는 별 두 개 호텔에다 연박으로 변경 예약했다. 그때는 몰랐다. 별 하나의 차이를 말이다.


눈 쌓인 아침. 가방을 메고 터미널로 걸어갔다. 서울행 버스를 탔고 강남터미널에서 내렸으며 점심은 뚝딱! 간편식으로 해결했다. 먼저 들린 곳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는데, 부족한 수면 때문인지 문화재 감상보다는 숙소에서 푹 쉬고 싶어졌다. 결국 미소를 짓고 있는 반가사유상을 뒤로한 채 호텔로 향했다. 종로역에 도착할 때는 매서운 찬 바람이 내 등을 밀고 있었다.

세운상가 근처는 미로였다. 얼굴은 얼얼한데 좁은 골목길을 한동안 헤매었다. 모바일 지도를 보면서 겨우 도착한 호텔은 프런트부터 예상을 깨고 말았다. 직원의 차림새와 풍기는 실내 냄새, 그리고 좁은 계단과 엘리베이터까지 그냥 모텔이었다. 불길한 심정으로 객실에 들어서자 의심은 돌이킬 수 없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필요한 등받이 의자도 없었고, 티슈상자에 적혀있는 심한 문구 마음은 더욱 심란해졌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다시 객실에 들어서니 한숨이 나왔다. 직원이 서비스라며 준 핫팩을 받을 때는 기가 막혔다. 그 초라함이 마치 종로 거리를 헤매던 어르신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딱! 한 가지 장점은 있었는데 인사동, 명동, 광화문, 북촌이 모두 15분 내외라는 사실이었다. 밤새 전주에서 묵었던 별 세 개 호텔을 그리워했다. 별 한 개 차이를 실감하면서 역시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자도 없는 객실에서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데 생명평화순례 때가 떠올랐다. 오래전 도법스님이 순례단과 함께 전국을 다니면서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할 때였다. 그 무렵 나도 서너 차례 순례단과 일정을 함께 했다. 아마 해남 순례 때였다. 당일 순례를 마친 일행은 원불교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100배 절과 그날의 소감을 나눈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이 밝았다. 그날 순례 일정을 들으면서도 내 눈은 자꾸 도법스님을 향하고 있었다. 낯선 잠자리의 불편함도 하루면 족하는 뜨내기들과 달리, 매일 바뀌는 잠자리 불편함을 스님은 어떻게 견디실까 싶었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는 새벽 화장실 가는 것도, 마실 물을 찾는 것도 곤혹스러울 텐데 말이다. 근기 약한 나 같은 중생은 일주일 만에 도망칠 일이다. 아침 볕을 등지고 계신 스님의 엷은 미소가 유난히 환해 보였다.

어느 강호 동양학자가 말하길 의식주에 걸림이 없어야 도사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수님도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했다. 에고란 녀석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보다는 미래를 염려하면서 의식주의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멋진 성전이 아닌 거친 광야에서 시작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특정 숙소에서 고정적으로 머물렀다는 기록을 볼 수 없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떠돌던 일종의 노숙자 신분이었던 셈이다. 짐작하건대 예수 일행은 초대하는 집이 있으면 그곳에서 머물렀고, 없을 때는 비박하거나 노숙을 했을 것 같다.


별 두 개라는 그 호텔에서 이틀 밤을 겨우 보낸 뒤 삼일 째 나왔는데 속이 후련했다. 숙소에서 나온 후 우아한 건축미로 소문난 북촌 가회동 성당 향해 걸었다. 도착해 보니 마침 한 시간 뒤에 미사가 있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당에 들어가 기도를 하기 위해 눈을 감았는데 예수님 대신 별 두 개짜리 허름한 숙소가 떠올랐다. 그곳은 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고급 호텔과는 비할 수 없지만 내게 뜻있는 기도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난한 숙소에서 도법스님과 순례단을 떠올렸고 떠돌이 예수까지 묵상케 했으니 말이다.

숫타니파타에는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이란 말이 있다. 마치 초라한 숙소에게서 ‘걸림 없는 바람’이라는 화두를 받은 것만 같다. 이래저래 공부거리만 늘고 있으니 이를 어쩌랴.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 이 또한 이상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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