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젠가 개신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어느 선배의 장로 취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한 시간 반에 걸친 예배는 인내가 필요했다. 설교와 찬양 때 ‘보혈, 군대, 충성, 지옥, 죄, 마귀’ 등 거친 말이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이데거가 말했다. 정제되지 않은 말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기독교 세계의 특징이다. 이슬람교도 이와 유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불교에서도 지옥, 마구니와 같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엑소시스트나 구마 사제와 같이 악령 퇴치를 소재로 다룬 공포물은 여름 극장가의 흥행거리다. 악령 퇴치 영화의 내용처럼 ‘빙의’나 ‘해리’라 불리는 정신이상 현상은 존재한다. 서로 다른 인격이 한 몸에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종교는 자신들에게 악령을 물리치는 힘과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2
내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오월의 토요일이었다. 김밥 몇 개 먹은 것이 탈이 나서 조퇴를 했다. 급히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증세가 심해졌다. 탈수 현상이 일어났고 눈 뜰 힘도 없었다. 의사도 고개만 갸웃거렸다.
며칠째 기진하듯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사나흘이 지날 무렵,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는데, 방 안에는 어느 낯선 아주머니가 식칼을 들고서 뭐라 중얼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종이에 불을 붙었고 그 종이는 재가 되어 허공을 오르고 있었다. 내 몸 상태에 겁이 난 어머니가 옆 마을에 사는 무당을 부른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날 저녁부터 의식이 맑아졌고 배에서는 꼬로록 소리가 났다. 내가 밥을 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놀라워하면서 죽을 가져왔다. 실로 닷새 만에 식사였다. 정말 무당 굿의 효험이었을까? 아무튼 내가 치료되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악마란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했다. 예수가 사람의 몸에서 악령을 쫓아낸다는 복음 내용도 신화적으로 받아들었다. 설령 악마가 있다 하더라고 종교의 가르침이 고작 ‘퇴마’라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악마란 부정적인 힘을 뜻하며, 이런 것은 큰길을 걷다가 만나는 돌부리 정도로 여겼다.
#3
몇 해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악마는 존재한다》라는 책이 나왔다. ‘교황이 이런 책을?’이라는 호기심으로 읽어보았는데, 악마가 뒷담을 좋아한다는 내용은 마음에 새겨볼 만했다. 하지만 뒷담과 악마의 상관관계는 알 수가 없었다.
재작년, 베네딕토 수도원의 어느 수사님과 신앙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언 기도의 능력이 있던 수사님은 내게 악마란 실재한다고 했다. 차분하고 지적인 그가 악마의 실제를 인정하다니 혼란스러웠다. 한 달 뒤쯤, 관상기도를 이끄시던 엘리사벳 선생님께 악마의 존재를 여쭈었더니, ‘악마가 없다는 생각이 위험합니다’라고 답해 주었다. 신앙적으로 깊이 존경하던 분의 말씀인지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21세기에 악마라니?” 내 가치관이 스스로 의심될 지경이었다.
이번 가을. 예수고난회 명상의 집에서 2박 3일 피정을 했었다. 이때 지도신부와 면담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물었다. “신부님은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부님은 놀란 음성으로 “그럼, 악마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라며 되물었다. 내가 “악마란 하느님을 멀어지게 하는 현상이 아닌가요?”라고 하자,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혹시, 천사의 존재는 믿으세요?” 물었다. 내가 천사의 존재는 믿는다고 하자, 신부님은 “그럼, 다행입니다.”라고 했다.
이날 이후, 나의 악마관 일부가 수정되었다. ‘악마란 하느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현상’에서 ‘하느님과의 친교를 방해하는 영적 존재’로 말이다. 여기까지가 내 이성이 허락한 마지노선이었다. 이로써 악마 논쟁은 끝냈다.
#4
얼마 전 성당 미사 때의 일이다. 미사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과거의 잘못 하나가 불쑥 기억났다. 동시에 오늘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면 안 되겠다 싶었다. 미사는 시작되었지만 나는 성체를 모실까말까 갈등했다.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르기로 했고 앞에 나가 성체를 모셨다. 영성체 후 묵상을 드리는데 왠지 잘했다는 느낌에 마음이 포근했다. 마음과 생각의 뿌리는 같은 듯 달랐다.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퍼뜩 깨달음 하나가 들어왔다. 과거의 잘못을 상기시키면서 영성체를 포기하라는 그런 것이 혹시 악마인가 싶었다. 죄의식에 빠뜨려 주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려 했던 그것은 선한 가면을 쓴 악마였다. 그때서야 악은 선한 얼굴로 다가온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원효대사께서 설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마음(心)의 자리가 모든 요지경의 근원임을 알려준다. 악마란 머리에 뿔 달린 유치한 캐릭터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교묘하게 일상의 틈으로 들어와 우리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것. 그런 것이 악마요, 악의 작용일 것이다. 오늘은 주님께 지혜의 식별력과 빛의 갑옷을 달라고 기도를 드려야겠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서》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