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여러분, 축하합니다♪

by 박신호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다.” <루카복음 10:42>

#1

오늘은 성녀 마르타 축일이다. 작년에 가입했던 가르멜 수도회 양성반 교우 가운데 마르타 자매가 있다. 그래서인지 마르타 축일을 축하한다는 알람이 단톡방에서 연달아 울리고 있다. 나도 꽃다발 사진을 전송했다.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여러 명 나온다. 먼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부터 과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마르타의 여동생 마리아가 생각난다. 예수란 이름이 당시 유대 사회에서 흔했듯이, 마리아 또한 우리의 ‘영희’만큼이나 흔한 이름이었다고 한다. 반면 성경에 나오는 마르타는 딱 한 명뿐이다. 마르타는 병약한 오빠 라자로와 여동생 마리아와 함께 베따니아 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루카복음> 10장과 <요한복음> 11장에는 마르타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성서에 등장하는 마르타는 부지런한 독신 여성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요즘 같으면 다부진 커리어 우먼이랄까? 씩씩한 르타였지만 그녀의 생활은 팍팍했다. 병약한 오빠 라자로는 늘 마르타의 손길을 찾았, 동생 마리아는 그저 착하디 착한 순둥이였다. 이들 형제의 부모 대한 성서 기록은 보아지 않는다. 쩌면 마르타가 림을 책임지는 가장이 아니었을까? 녀가 감당해야 할 삶은 무거웠을 것이다.


절 인연을 따라, 마르타는 동생 마리아와 함께 릴리 호숫가 부근에서 예수를 났고, 그를 스승이자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아마도 예수의 산상수훈 때에도 이들 자매가 군중 가운데 앉아 있었을 것이다. 마르타는 스승 예수의 가르침으로 의 고난과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수의 말씀은 이들 자매에게 생의 동아줄이었다.


#2

어느날 예수님 일행이 베따니아 지방에 는 마르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며칠 부터 마르타는 일행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했다. 다음 날 예수 일행들이 찾아왔다. 마르타는 감격했고 기뻤을 것이다. 정성껏 이들을 대접하리라 다짐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의무다. 더욱이 방문의 주인공은 스승 예수가 아니던가?


마르타는 방문객들 자리를 살핀 후, 리나케 부엌으로 가서 준비해 둔 차와 과일, 빵 등 챙겼다. 바쁜 와중에 동생 마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마르타가 음식을 들고 방에 들어가 보니, 예수와 일행들은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마리아가 일행과 함께 눈을 감고 있었다. 순간, 동생 마리아에게 서운함이 밀려왔다.

참다못한 마르타가 예수께 쭈었다. 분주한 내가 보이지 않냐고, 이기적인 동생 마리아에게 따끔한 말씀 좀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다.”며 나지막하니 일렀다. 에 대한 마르타의 반응은 성경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르타의 기분을 유추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마르타는 의문의 일패를 당한 꼴이었지만, ‘좋은 몫’이란 말씀에 정신이 확 들었을 것이다. 그녀예수가 말한 ‘좋은 몫’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했을 것이다.‘좋은 몫’이란 하느님의 현존을 뜻하는 것일까?과연 마르타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3

절집는 '이판'과 '사판'란 개념이 있다. 이판은 참선 위주의 수행을 뜻하며, 사판은 행정을 담당하는 수행승을 한다. 물론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는 경우에는 말그대로 '이판사판'이 된다. 이를 마르타와 마리아가 선택한 상황에 적용해보면, 사판은 마르타, 이판은 마리아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 신앙에서 기도 중심이 이판의 신앙이라면, 봉사는 사판적 신앙가까울 것이다. 물론 기도와 봉사, 이 둘을 조화롭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열심히 봉사를 하는 분이라면 <루카복음> 10장 의 ‘좋은 몫’과 ‘선택’이란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래야 봉사에 지치지 않는다.


#4

나는 발바닥 신자이다. 미사 전례만 참여할 뿐, 성당의 활동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알고 지내는 교우도 거의 없다. 이미 오래된 신앙 생활이다. 가끔 나를 눈여겨본 교우께서 활동을 권유하지만 딱히 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성당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그들을 때면 고맙고 미안해진다.


젊은 날, 미숙한 초보 신자임에도 성당 청년회장으로 뽑혀서 봉사했다. 주어진 임무는 원만하게 마쳤지만,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교회 밖의 진리를 찾아 헤매였다. 냉담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삶에 의하여 중력에 끌리듯 교회로 복학(?)했다. 그때 가지 결심을 했는데, 성실한 발바닥 신자가 되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의무가 없는 자유로운 신자로 지냈다.

현듯, 예수께서 이르신 '좋은 몫'의 뜻이 헤아려진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선택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계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먼저 내면의 영적인 성숙 진 후, 봉사의 길로 나서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고요한 태풍의 눈에서 거센 바람의 위력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교황청이 아닌 외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그 숙소의 이름이 ‘산타 마르타 하우스’라고 한다. 재밌지 않은가? 오늘날 마르타 성녀는 집사, 요리사, 영양사, 주부, 하녀들의 수호성인이다. 오늘은 7월 29일. 이날 마르타 축일을 맞이한 세상의 모든 자매들께 축하를 보낸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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