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생물학적으로 성인이건만, 미성숙한 정신 탓에 평생토록 철부지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물론 어른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진짜 어른을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니, 이 또한 인연과 복이 겹칠 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하루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산책 삼아 교내 서점을 찾아갔다. 그곳 매대 위에는 신간 몇 권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중 꽤나 두툼해 보이는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내 인생 책,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와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훗날 진짜 어른에게로 인연을 닿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이 아무개 목사가 풀어낸 도덕경 대담집이었다. 장일순이란 이름도 생소했지만, 이 아무개라는 필명은 신비주의 출판 전략인가 싶었다. 표지를 넘겨보니 무위당 장일순과 이 아무개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세상에 이런 분들이 계시다니’라는 놀람과 설렘으로 카운터에서 책값을 계산했다.
당시 나는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불교변신설화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교 교리는 물론이요, 동양철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도올 선생의 노자 철학부터 읽어보았지만, 노자는 안 보이고 카랑카랑한 도올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에 비해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는 쉬운 듯, 깊은 듯, 다양한 변주 방식으로 노자의 음성을 전하고 있었다.
무려 700쪽이 넘는 책을 일주일 만에 완독 했다. 당장 무위당 선생을 뵙고 싶었으나, 선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인연이 없는 박복함을 탓할 뿐이었다. 한편 이 아무개라는 분은 감리교 목사로서, 일명 관옥이라 불린다고 했다. 관옥 목사는 기독교 목회자임에도 동양철학에 깊은 식견이 있어 보였다. 무위당 선생님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관옥 목사님은 뵐 수 있기를, 내 인연에게 부탁했다.
교사가 되었고 고3 진로지도에 분주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동료 교사의 책상에 <풍경소리>라는 소박한 책이 놓여 있었다. 슬며시 책을 펼쳐보니 종교와 인문학의 내용으로 가득한 월간지였다. 정가는 보이지 않았고 신청할 연락처가 대신 적혀 있었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수신자는 전남대 후문에 위치한 ‘좋은 책방’으로 오라고 했다.
퇴근 후, 전남대 후문 골목을 헤매다가, 마침내 ‘좋은 책방’이라는 작은 간판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대신 선반에는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의 사진이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그때 ‘어서 오세요’라는 굵고 느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분인데, 책방 주인이라고 했다.
그날 책방 주인이 내어준 보이차를 마셨고 <풍경소리>를 신청했다. 며칠 뒤 다시 그곳에 들렸을 때는 주인장과 통성명을 했는데, 그는 자신을 ‘일부(一夫)’라고 소개했다. 아마도 ‘일부’라는 이름은 필명인 듯싶었다. 알고 보니 일부님은 목사였고, 대안학교에서도 근무했으며, <풍경소리> 발행을 책임지고 있었다. 서점 주인이 목사라니? 아무튼 인연의 실타래가 좋은 책방으로 풀려가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나는 좋은 책방의 충실한 단골이 되어있었다. 어느 날 일부님이 내게 ‘풍경소리 독자 모임’을 안내하면서 참가 의사를 물었다. 8월 중 순경, 2박 3일에 걸쳐 하동군 악양면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풍경소리 독자 모임 날이었다. 당일 오전에 나는 피서가 따로 있겠냐며 악양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19번 국도를 따라 푸르른 섬진강이 흐르고. 석곡, 압록, 구례읍, 토지면을 지나는 사이로 지리산이 다가와 있었다. 화개장터에서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모임 장소인 자연 농업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악양은 천지가 푸르렀고 대지의 열기는 높았다. 일부님이 나를 비롯한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부님은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으며, 마음이 모이면 거기에 맞춰 진행될 뿐이라고 했다. 오호라, 이야말로 완전 노자의 무위자연 스타일이 아니던가. 게다가 식사는 하루 한 끼라고 했다. 일부님은 ‘선생님이 오시면 그때 저녁 식사를 하겠다’라며 안내를 마쳤다. ‘선생님이 오신다고? 누구실까?’ 은근히 기다려졌다.
해가 낮아지자 폭염도 너그러워졌고, 건너편 섬진강 마저 한결 고요해 보였다. 말없이 명상하듯 거닐던 참가자들이 초로(初老)의 어른께 달려가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적당한 턱수염과 개량 한복, 흰 고무신. 한 손에는 단소를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일부님이 말했던 그분 선생님이 오신 것이다.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내게 그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손에 든 단소를 본 순간,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의 이 아무개 목사가 떠올랐다. 누가 일러 준 것도 아니건만, 이분이 바로 이 아무개라는 확신이 훅하니 올라왔다. 그 강렬한 느낌이라니, 인연의 실타래가 알려 주는 징표였나 보다.
예감은 맞았다. 그분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에서 무위당 선생과 대담을 했던 이 아무개 관옥 이현주 목사였다. 마침내 어른을 만나게 되었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와 <풍경소리>로 이어지는 인연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2003년 여름. 지리산과 섬진강이 어울리는 악양에서 관옥과 일부라는 두 어른을 모시게 되었다.
오랜만에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을 펼쳐보니 그날이 떠오른다. 노자는 “만물은 끊임없이 바뀌지만. 저마다 제 뿌리로 돌아오는구나.(夫物芸芸 各復歸其根)”라고 했다. 내게도 뿌리를 찾을 시절이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인연이 슬슬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