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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Mar 30. 2024

교토, 나의 화양연화

  완벽한 시간과 공간이었. 쉽게 갈 수 없기 때문일까? 그곳은 밤하늘의 별처럼 추억 속에 반짝인다. 일본에 대한 날 선 감정마저 잊게 만드는 천년의 고도. 교토는 화양연화의 도시.  

   

 교토는 한 폭의 풍경화. 유화의 무거운 질감이나 수묵화의 흑과 백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곳을 품을 수 있는 색조는 수채화 뿐이다. 붉고 푸른빛이 물기운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곳은 벚꽃 피는 봄날이 제격이라지만 눈 내리는 겨울도 아름답다.  


 교토가 고향인 재일교포 가제. 가제는 바람을 뜻하는 일본어. 그는 이름처럼 바람이 되어 수시로 현해탄을 넘나들었다고 했다. 가제 씨의 이마에 새겨진 세 줄기의 깊은 주름 사이로 바다 내음이 풍겼다. 그는 푸른 물결을 떠도는 유목민이.      

 그해 여름, 가제 씨는 어느 대안학교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남해의 다도해를 떠돌았다. 바다에 푸른 알처럼 박혀있는 섬들을 오가던 가제 씨는 차츰 그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섬 여행은 끝이 났지만, 가제 씨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바다에서 여름을 함께했던 대안학교의 품에 의탁했다. 어린 학생들은 방랑자 가제 씨를 좋아했다. 그는 특유의 일본어 말투와 감탄사로 학생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아이들은 “~했음무니다.”, “아하! 그럽씁니까?” 따위의 그 말투를 곧잘 흉내 내곤 했다.   

   

 그해 겨울, 나는 가제 씨와 그곳 학교 도서관에서 한 달가량 지내게 되었다. 그는 어둠이 깔리면 주황빛 조명 밑에서 책을 읽었다. 돋보기 안경을 쓰고 영어 원서를 읽고 있는 가제 씨 모습은 근엄했다.      


  학교식당에서의 식사는 점심과 저녁 두 차례다. 아침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가제 씨와의 동거 이틀째, 아침 식사로 준비해 둔 빵을 떼어 드렸다. 그는 일어서더니 아하~ 감싸합니다라는 일본어식 어조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의 과한 답례에 나는 당황했다.     

 하루는 가제 씨와 기숙사 욕실에서 마주쳤다. 목욕을 마친 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제 씨는 교토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내가 두 차례 가보았노라 했더니 격하게 반가워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을 바람처럼 떠돈 지 이십 년이 다되어간다고 했다. 그리곤 더 이상 말이 없었.


 그날 저녁, 추억의 교토가 떠올랐다. 교육청이 주관한 일본 여행이었. 첫 여권도 그때 만들었다. 여행 첫날, 들뜬 마음을 다독이며 인천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푸른빛이었다. 파란 바다 위로 흰 구름이 띠엄띠엄 떠다녔다. 우리 행성은 지구(地球)가 아닌 수구(水球)였.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여행 첫날, 료칸에서 일본 전통 요리인 가이세키라를 맛보았다. 개인 화로에서 너울대는 불꽃은 이국적이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다다미방의 등불을 끄자 창밖으로 짙푸른 어둠이 밀려왔다. 그렇게 56일 동안 일본 본토를 횡으로 종으로 달렸다.

     

 여행 마지막 날, 여명이 돋을 무렵 절로 눈을 떴다. 침구를 정리하고는 개인별 목간 들어가 출렁이는 뜨끈한 물에 몸을 담갔다. 물기운이 세포 속을 비집고 스며들었다. 유리창 너머로 막 솟아온 태양의 진홍빛 물결이 넘실거렸다. 황금빛 햇살이 점점 목간에 꽉 차올랐다. 빛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보였다. 홀로 즐기는 화양연화. 문득 가족에게 미안해졌다.     


결국 몇 년 뒤, 일본을 다시 찾았다. 명분은 입대를 눈앞에 둔 아들과의 추억 쌓기. 이번에는 간사이 공항으로 도착했다. 예약해 둔 숙소가 생각보다 초라해서 아내와 아들에게 다시 미안했다. 저녁에 오사카 도톤보리를 걷는데, 주위 가득 한국말이었다. 초밥을 먹고난 우리는 슈퍼문마냥 밝았다.    

 다음 날, 정월 찬바람을 받으며 교토로 향했다. 열차 노선은 난해했지만, 현지인들은 친절했다. 도무지 교토에서는 우울할 수가 없었다. 아들 입대 걱정에 이마를 찌푸리던 아내의 안색도 원색 빛이다. 다음 달이면 강원도 인제에 입대할 아들 역시나 전역병처럼 해죽거린다. 동행하지 못한 딸은 카톡방에 사진 좀 올리라며 성화다.      


 교토 관광 일번지 청수사 기요미즈데라에 들어섰다. 언덕 양옆에 즐비한 상점들이 시각과 후각을 건드린다. 혼잡한 인파 사이로 아내와 이들이 센과 치히로처럼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요란한 길옆 상점으로 오감을 던지기 바쁜 식솔을 달래며 사찰 경내로 향했다. 어느새 아내는 소원을 이뤄준다는 물줄기를 영접한다며 아들과 달려갔다. 내 걸음도 빨라졌.      


 교토는 걸어야 제맛이다. 교토의 품격은 고풍스런 문화유산보다는 정갈하고 소박한 골목길에 있다. 이곳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보행자마저 수채화 속의 경물이 . 눈 내리는 오후에 찾은 은각사. 하얀 눈이 경내를 포근하게 덥고 있. 천연의 고요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찰 마루에 앉아 아래로 연착륙하는 눈을 바라보았다. 야스꾸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의 위정자에 대한 감정마저 잊을 것 같은 아름다움이다. 오랫동안 일본은 거리두기가 필요한 이웃이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일본인들의 욕망에 좌우되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지냈던 역사의 생채기는 지금도 붉다.      


 교토를 떠나는 날. 겨울비가 내렸다. 아내와 아들은 전날 먹은 라멘의 맛을 평가하기 바쁘다. 또다시 교토를 찾는다면 혼자여야 함을 깨달았다. 걷고, 사색하고, 차를 마시는 모든 행위가 고독과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그때는 4월의 교토. 아마도 만개한 벚꽃이 우비 되어 날리고 있으리라.     


 가제 씨가 누님의 병환으로 급히 교토로 가게 되었다며 작별 인사를 전한. 한 달 동안 서향이 맴도는 도서관에서 지낸 시간 동안 서로 정이 들었나 보다. 그는 수양버들과 벚꽃이 흐트러질 때면 꼭 교토에 들리라한다. 돌아서는 가제 씨의 주름이 더욱 깊. 모조록 그의 여생이 벚꽃처럼 화사하길 바란.     

 사요나라, 가제 씨...”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상상을 해본. 가제 씨와 내가 교토의 골목길 간이 의자에 앉아 꽃비를 맞으며 차를 마시는 장면을. 제법 괜찮은 수채화 풍경이 될 것이다.  내 마음의 그곳, 화양연화여. 다시 만나요. 사요나라,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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