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출렁이는 영화를 만나면 행복해진다. 장마에 지친 습한 기분을 고슬고슬하게 만들어주는 영화. 그 옛날 ‘벤허, 피아니스트, 미션, 뷰티풀 마인드' 등을 보면서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 전에도 그런 출렁임이 그리워 유대인 포로수용소를 다룬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관람했지만 기대이하였다. 다행하게도 엊그제 보았던 ‘퍼펙트 데이즈’ 덕분에 행복으로 출렁일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부터 평화로웠다. 주인공 히라야마의 미소를 배경으로 “당신의 하루는 어떤 기쁨으로 채워져 있나요?”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포스터 사진을 보다가 ‘나의 하루는 어떤 기쁨이 있었나’ 생각한다. 쉽사리 떠오르지 않다. 감정이 메마른 탓인가 보다.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이란 말이 생각난다. 작은 것에서 얻는 행복을 의미한 소확행. 내가 교만해진 모양이다.
지난 주말 광주극장을 찾았다. 화려함과 다양함, 그런 것과 거리가 먼 나만의 시네마천국이다. 나의 영화관람 루틴은 30분 전 극장 도착이다. 예매 후 근처 산책은 제법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번에도 영화 관람 전 느린 걸음으로 충장로를 걸었다. 한때 화려했던 충장로가 빈티지의 거리로 전락되었다.도심의 쇠락이 씁쓸하다. 걷다가 유명 제과점에서 빵을 샀다. 손에 든 소보루... 빵도 빈티지스럽다.
영화 시작 십 분 전. 암막을 걷고 객석에 앉는다. 둘러보니 고작 열댓 명 관객이 앉아 있다. 종소리에 맞춰 실내가 어두워진다. 스크린을 비추는 영사기 불빛이 머리 위로 출렁인다. 자, 시작이다. 여명에 밝아지는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배경은 도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주인공의 움직임에 따른 음향만 나올 뿐 대사가 없다. 햇살과 어둠. 도시의 이른 소음들이 영상에 밀려 들어온다. 절제된 영상미가 편안하다.
감독은 일본 사랑이 진심인 빔 벤더스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몇 해 전 도쿄올림픽 당시 시에서 야심 차게 만들었던 화장실을 소개하기 위하여 구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 공공화장실 프로젝트에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도 참여했다. 영상에 나오는 화장실은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뛰어나 보였다. 화장실이 모티프가 된 이 영화는 단 3주 만에 대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미니멀리즘이 진수를 보여준다.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도쿄 시야부 공공 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출근길에 CD가 아닌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올드한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단조로운 하루. 깔끔한 미니멀리즘의 24시간이다.
영화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넘어서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어진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터부시 하는 화장실 청소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인공 히라야마. 그의 청소 작업은 성스럽다. 꼼꼼한 청결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한 정성스러움. 히라야마에게 화장실 청소란 신께 제사를 바치는 사제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것을 가리켜 수행이라 한다.
‘성자가 된 청소부’라는 오랜 책이 생각난다. 히라야마는 다가오는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일 뿐. 화장실 청소 도중 급한 이들이 뛰어 들어오면 조용히 밖에 나가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불손한 어느 여인의 행동에도 그저 묵묵부답. 대신 손을 흔드는 아이에는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뿐이랴. 조카 미코가 들여 닥치고, 불성실한 직원이 갑작스레 그만두어도 그저 묵묵히 해결책을 찾을 뿐이다. 도대체 요란스럽지 않다. 그의 하루는 성스럽고. 에고를 녹여내는 삶이다.
영화 속 그림자밟기 장면이 눈에 선하다. 주인공의 단골 술집 여주인에게 나타난 토모야마. 그는 전남편이다. 암에 걸린 토고야마는 전처였던 술집 여인에게 사과한다. 히라야마는 우연히 그곳에 들렸다가 화급히 자리를 피한다. 잠시 후 강변에 앉아 있는 히라야마 앞에 나타난 토고야마. 그는 히라야마에게 자신의 지난 일들을 고백한다. 이때 히라야마가 그림자밟기 놀이를 제안한다. 아무리 그림자를 밟아도 결코 그림자는 밟히지 않는다.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퍼펙트 데이즈’에는 에니멀스의 ‘하우스 오브 라징 선’,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더 밸벳 언더 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 등. 지난 6,70년대 음악들이 주인공의 출근 때마다 흐른다. 캔 커피를 마시면서 히라야마가 운전하는 청소차가 도쿄의 거리를 달릴 때면 도시를 밝히는 여명이 높다란 빌딩에 빛난다. 그 빛은 주인공 얼굴에 가득하고 아날로그 감성을 뿜고 있는 팝 음악에 귀가 환호한다. OST만으로도 행복해진 영화다.
영화의초반은 지루했고 후반 엔딩은 묵직한 감동이었다. 히라야마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던 엔딩 장면은 특히 잊을 수 없다. 즐거운 듯, 슬픈 듯, 오묘한 표정이 오랫동안 교차 된다. 이 명장면을 연기한 이는 일본의 대표 배우 야쿠쇼 코지다. 칸은 그에게 남우주연상으로 화답했다. 희로애락이 뒤섞인 인생을 이토록 표정만으로 드러낼 수 있다니. 우리로 치면 안성기나 송강호급이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끝났다. 스크린은 다시금 어두워지고“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이라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있다. 그 뜻을 헤아려본다. 히라야마는 구형 올림포스 사진기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찍곤 했다. 빛이 하강하는 그 찰나를 담아낸 것이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은 찰라를 말한다. 이를 일본에서는 ‘코모레비’라 하던가. 다가오는 순간에 정성을 다할 뿐.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하루를 지극한 정성으로 지내는 히라야마 덕분에 오랫동안 행복이 출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