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으로 차있다. 둥근 야구공에 그려진 호랑이가 사나워 보인다.둥글둥글한 공에 새겨진 KIA TIGERS. 힘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결정되는 공은 정직하다. 야구공의 운명은 손가락 끝에서 완성된다. 커브, 체이지업, 슬라이더 등 구질의 섬세함은 엄지, 검지, 약지의 공정 과정에서 탄생한다.
10월 28일 밤. 기아 타이거즈가 한국프로야구의 지존으로 등극했다. 경기장과 가까운 덕에 우승의 폭죽 소리가 집까지 들려왔다. 기아 구단은 왕조라 불렸던 해태의 명성을 잇고 있다. 우승 선물로 종합선물세트를 주었다는 가난한 제과 구단 해태. 82년 고작 3명의 코치진과 15명의 선수로 창단된 그들의 스토리는 눈물겹다.
벚꽃 피던 4월부터 국화가 영그는 10월 가을까지 광주 챔피언스 필드는 해방구다. 마침내 포수 김태군와 투수 정해영이 폴짝 뛰며 포옹하던 V12 우승이 확정되던 저녁. TV 화면에는 감격에 겨워 눈물짓는 팬들의 모습이 비쳤다. 천만 관중이라는 야구 열기는 채상병도,용산 안방 마님도, 오물 풍선도, 의료분쟁도 잠시 잊게 했다. 용산에 있다는 그 양반은 프로야구에 감사해야 한다.기대하지는 않지만...
'종범이도 없고 동렬이도 없다'며. 한숨을 짓던 해태 코끼리 감독처럼, 이제 기아 팬들은 야구 경기가 없는 5개월을 동면 들어간 곰처럼 기다려야 한다. 젊을 때와 달리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은 옅어졌지만 없는 불 꺼진 기아 챔피언스 필드 앞을 지날 때면 함성 소리가 살짝 그리워진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을 찾았던 때가 언제였나? 헤아려보니 벌써 6년 전이다. 야간 조명 아래서 노란 막대풍경을 때리고 흔들다 보면 연회장에 들어선 듯 착각이 인다. 맥주와 치킨의 향연이 넘치는 야구장. 경기 내용은 모르겠고 치어리더의 몸짓과 구호에 따라 외친다. 석기시대 발라드댄스의 재현. 경기장은 환호에 넘쳐난다.
호랑이 해태타이거즈. 82년 창단해서 2001년 기아에게 매각되었던 시대의 명문구단.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트, 미국의 뉴욕 양키스 못지않은 서사를 지닌 야구단. 그들의 빨간 상의와 검은 하의는 호남의 한을 푸는 해원의 빛깔이었다.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 미국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울고 갈 코리아 맹수 해태 타이거즈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울었다.
5.18로 쑥대밭이 된 빛고을, 빨갱이와 조폭의 땅으로 취급되었던 80년대. 무등경기장에 모인 관중 들어 타이거스의 승리에 맞춰 <목포의 눈물>을 노래했고 김대중을 연호했다. 5.18 주간 승률이 무려 80%. 오월의 호랑이는 사자, 곰, 용, 독수리를 물어뜯었다.
타이거즈는야구팀 그 이상이었다. 구단의 존재 이유는 뚜렷했다. 이른바 살풀이, 맺힌 한을 녹여냈던 83. 86. 87. 88. 89. 91. 93. 96. 97. 찬란한 왕조의 전설이었다.IMF 재앙은 무서웠다. 결국 호랑이는 이빨이 빠져버렸다. 최초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무렵해태는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4년 차였던 2001년이었다.
이제는 추억이된 구단들이 생각난다. 된 삼미 슈퍼스타스,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이들에게 공은 고르게 굴려가지 않았는지 꼴찌의 대명사였다. 근래의 한화 이글스처럼 하위권을 전전했고 팬들을짠하게 만들었다. 나는보살이라 일컫는 한화 팬들을 응원한다. 희망의 거듭된 패배에도 독수리를 사랑하는 그마음에 감동한다.
야구공은 둥글다. 자본이실력을 정한다지만 결코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없음을 보여주었던 가난한 해태 타이거즈.그러니 한화보살과 부산갈매기들이여. 희망을 가지시라. 그대들이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잖은가?
아직은2% 부족한 새끼 호랑이 기아. 부디 V13. V14의 깃발을 휘날리는 포효하는 타이거즈가 되시라. 이제 스토브 리그가 지나면 꿈틀대는 아지랑이 위로"비 내리는 호남선~남행열차"가 울려 퍼질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세워본다. 딱! 소리너머하얀 공이 쭉쭉 뻗어간다. 두근두근, 플레이 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