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날 풍경이 선하다. 고사장 교문 앞에는 선배들 응원한다며새벽부터 몰려든 학생들 소리가 높다. 그 함성 사이로 굳은 얼굴들이 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을 치며 지나가고 짠한 눈빛으로 따라오던부모는 고개를떨구며 발길을 돌린다. 경찰 오토바이 뒤에 타고 온 학생은 상기된 얼굴로 뛰어간다.
수능 시험은 청춘의 통과의례다. 시험 방법은 자주 바뀌어도 수능의 계절이 다가오면 세상은 수험생중심으로 돌아간다. 사주와 부적에 의지하는 엄마, 수험생을 위한다는 각종 기도회, 교사는 제자들에게 수능 대박! 파이팅! 라며주먹을 쥔다. 시험 당일 고사장 주변 자동차 경적도 제한되고 3교시 영어 듣기 시간에는 비행기마저 뜨지 않는다.
하지만 고3 교실은 초초함 대신 나른한 정적만이 맴돈다. 대다수 학생들이 수시모집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까닭이다. 여전히 핏기 없는 안색으로 책을 들여다보는 학생들도있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파이팅! 대박! 최선! 행운! 이런 뻔한 말에재밌다는 표정이다. 후배들이 보내는 떡도, 학교에서 준비한 떡볶이도 그저 자습의 지루함을 더는 간식일 뿐이다.
정작 수능 날의 긴장과 열기는 어른들의 몫인 듯허무하다. 학생수가 급감하여 대학별 경쟁률이 낮은 탓일까, 시험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아이들은 흐린 눈빛으로 견딜 뿐이다. 눈에 쌍지심을 켜고 의대가목표라며 문제 풀이 여념 없는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심정도 편치 않다.양극화된고3 교실. in서울이냐?지방대냐?그것이 문제로다.
베이부머의 상징인 58년 개띠. 이들은 무려 백만이 넘는 머릿수를 자랑한다. 수능 응시 재학생이 34만 정도라 하니 저출산 쓰나미가 밀려온다. 그나마 몇 해가지나면 30만 마저도 깨질 것이다. 덕분에 수능 시험의 떨림도 저출산만큼이나 낮아진 고3 교실. 대체 소는 누가 키울 것이지.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수능 시험이 끝났다고 모든 시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도 중간, 기말고사가 있고 졸업 후에는 취직 시험에 매진해야 한다. 직장인들은 승진 시험, 퇴직한 이들은 각종 자격시험을 준비한다. 포에버~ 시험의 세월들. 학창 시절을 우울케 했던 시험은 좀비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시험 없는 세상에 살고파! 철없는 소리다. 시험을 대신할 선발 제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부모의 재력. 미모나 키, 행운의 제비 뽑기. 이런 것으로 점수를 부여한다면 내란이 터질 것이다. 비록삭막하고, 단순한 지식의 측정에 불과하다지만 시험만큼공정한 시스템을 알지 못한다.기여 입학이나 옛날의 음서제도를 받아들일 수 있겠나.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긍정할밖에,
시험은 평등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물론 시험이만능일 수는 없다. 단 하루 동안의 노고로 앞날이결정된다는우연과 단순성이라니 아찔하다. 뿐인가 1등급. 2등급, 3등급... 9등급. 인간을 등급화하는 무자비함까지.
이른바 의. 치. 수. 한이라 불리는 신분 상승의 퇴행적 욕망이폭발하는 수능시험. 라떼는 말이지. 물리학, 공대, 국문 등 고르게 대학을 찾아갔지. 지방대도 서울지역 대학들과 어깨를 겨루었지.
"수능은 전쟁입니다. 입시 공략, in 서울 해야죠. 지방대는 벚꽃 피는 순으로 폐교돼요. 재수는 필수예요. 정시는 재수생, 수시는 재학생. 수학이 결정해요"라고입시의 현장은 선동 구호로 어지럽다. 하면 뭐 하나. 수능을 앞둔 교실은 그저 나른한데.
어쩌든 시험은지나간다. 물론논술, 실기, 면접시험이 이어질 것이요. 상위 등급 받았다는 학생들은 SRT 타고서 서울로 IN 하겠지. 수능이 끝난 교실은 겨울방학 때까지는 황무지다. 수능을 마친 아이들은 방향키 잃은 배처럼 의미 없이 떠돈다. 쏟아지는 체험학습 신청으로 담임교사들은 못해 먹겠다고 푸념한다. 혹여 학생답게 하라는 꾸지람이라도 하면 아동학대로 고발당하니 전전긍긍이다.
정시와 수시가 통합되면 좋겠다. 학교는 수능 시험 잘 보기 위한, 학생부를 잘 꾸미기 위한 건물이 아니다. 배움이 자라는 곳이다.교실마다 잠을 자는 학생들이 태반이거늘 인권과 민원 때문에그냥 모른 채 하는 현실이다.학생들은 졸음에 겨워웃는데어른들이 더긴장하는 요즘의 수능풍경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