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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Nov 22. 2024

죽음이 전하는 메세지

 이른 아침의 핸드폰 울림은 불길했다. 신호음은 짧게 두세 번이었으나 깨어나기에는 충분했다. 발신 번호는 처갓 집이다. 급히 아내가 연락한다. 이윽고 그녀목소리가 울음으로 바뀐. “아버지가 방금 119로 병원에 실려 갔데...” 순간, . 심장이로구나생각이 들었. 햇살이 어지러웠다.     


 응급실에서 장모님은 무덤덤했다. 의사는 창백한 장인의 육신을 되살리기 위한 애를  쓰건만 축 처진 육신은 전기충격에 조건반사 하듯 흔들릴 뿐이다. 눈에는 하얗게 변한 장인어른의 발바닥이 크게 들어왔다. 잠시 후, 미약하게 진동을 표시하던 그래프마저도 지쳤다는 듯 멈추었다. “이제 주변 분들에게 연락하시죠.” 의사의 말은 낮았. 도착한 큰처남이 눈물을 훔치고, 장모님은 묵묵히 발밑만 내려다보고 계셨다.     


  우리말에서 가장 영적인 단어가 임종을  뜻하는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한다. 생을 마친 영혼이 돌아가는 자리. 본향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이는 무덤이 반원인 이유가 임산부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그럴 듯하다. 그래서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나. 아내는 울면서 필요한 짐을 꾸리고 하늘은 겨울답지 않게 파랗고 맑았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아내의 얼굴은 노랬고, 아이들은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고 있다. 차 안은 조용했다. 그때 둘째 아이가 “엄마, 어제 민국이 가출했데”라며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불쑥 말을 꺼냈다. 대답 없는 아내를 대신해서 내가 물었다. “민국이 그 녀석 참 속 없다. 담배도 피운다며.. 중 2짜리가 벌써.. 쯧쯧” “아빠. 민국이 기말고사 못 봐서 가출한 거래도착한 장례식장에는 냉랭한 바람이 스쳐갔다..     

 장례식장은 향내와 홍어 냄새가 오묘하게 뒤엉켜 죽음의 냄새를 거두고 있었다. 준비가 덜 된 빈소에는 장인의 영정사진이 덩그렇게 모셔졌다. 삶이 끝난 자리는 사진이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는 곡소리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표정 없던 장모님도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주저앉으며 통곡한다.


 소리 없이 흐르는 읍() 곡(哭) 보다 비감하다. 하지만 음이 소거된 눈물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아내의 곡소리는 커져 가는데 사진 속 장인어른은 빙그레 웃고 있다.   

  

 영안실 직원이 우리가 입을 상복의 치수를 재어갔다. 유가족의 검은 양복과 넥타이는 죽음의 제의다. 상복으로 갈아입은 상주들은 초췌했고 눈자위는 붉었. 왼쪽 팔에 삼베로 된 띠와 사위 표시가 새겨진 리본을 찼다. 가족 모두의 검은색 옷을 보노라니, 장인어른의 마지막 길을 잘 보내드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그때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아빠, 민국이 자살했데.. 인터넷에 떴어.. 친구들한테서 막 전화 오고 있어. 원래 내일이 방학날인데 오늘 갑자기 방학을 했다네” 아들 녀석은 검색한 속보 기사를 내 눈앞에 들이대는 것이었다. 아들 친구의 죽음은 충격이었.     

  오후 늦은 무렵, 서울 둘째 처남과 처형 식구들이 . 이들은 몇 시간에 전에 아내가 던 곡()을 한바탕 한 후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영정사진을 향한 곡소리는 그동안의 섭섭했던 서로의 허물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와중에도 외할버지의 죽음과 친구의 자살을 동시에 당한 아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아빠, 민국이 용봉장례식장으로 옮겼데... 민국이 성적보다는 진따한테 시달려서 죽은 것 같아아들의 말인즉, 민국이 자살에 이른 결정적인 원인이 교내폭력 때문이라는 것이었. 그날 저녁 TV 뉴스에는 아들 친구의 자살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자 빈소를 찾조문객들이 늘어났고 가족 모두는 맡은  역할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 또한 사위로서 주어진 몫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돌아가신 장인어른보다는 뉴스에 나온 자살 학생에 대하여 두런두런 말했.     


 요즘 애들, 왜들 저리 잘 죽어.. 너무 나약한 것 같아”, “일진인가 뭔가~하는 것들 전부 감방에 처넣어야 돼”, “~, 그나저나 저 학생 부모는 어쩔까.” 조문객들은 쓸쓸하게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자정 무렵되자 장례식장이 고요하다. 화환과 근조 깃발에 포위된 빈소에는 인자하게 웃고 계신 장인의 영정이 가족들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듯했다.     

 아빠 경찰서에서 전화 왔어. 조금 있다가 조사하려 장례식장에 온데”, “왜 너를 조사한다니?”, “, 우리 반 모두 조사하는 거래다음 날 아침, 아들 녀석이 심각한 얼굴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들 친구 민국이 자살 문제가 학교폭력과 학교 측의 은폐 의혹까지 언론에 거론되자 사건의 규모가 달라진 모양이었다.

     

 오후 늦게 형사 두 명이 찾아왔고 아들을 영안실 한편으로 데려가 조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낯선 상황에 불안해하는 아들을 안심시켜기 위해 곁을 지켰다. 처음에 어색해하던 아들도 형사의 물음에 맞춰 민국이가 처했던 힘겨웠던 상황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조사를 마친 형사들은, 장례식장에서 식사를 한 후 총총히 떠났다.


  날씨가 더없이 맑은 출상날. 장인의 운구를 차에 옮긴 후 노인당으로 향했다. 나와 계시던 노인 분들은 서러운 눈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간 이의 영정을 침묵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저들도 운구행렬을 보면서 남은 생의 몫을 헤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장터에서 장인의 육신은 5번 구역을 배정받았다. 차례가 되자 가족의 애도 속에서 불기둥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장인은 한바탕 노닐었던 이승의 삶을 화염으로 지우고 있었다. “아버님 그동안 감사했고 사랑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남겨진 혈육들은 유골함에 글귀를 새겼다.  

     

  장인어른과 민국이의 죽음을 삼 일간 지켜보았다. 가족과 석별의 정도 나누지 못한 채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장인의 죽음, 성적과 학교폭력에 힘겨워하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목을 맨 중학생 민국이의 죽음.  각각의 사연은 달라도 모든  죽음이  이르는  자리는 슬픔과 체념이리라.

  

  망자를 보내는 슬픔의 몫은 조금씩 다를 것이고, 그리움에도 경중이 있을 것이다. 죽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우린 그저 담담하게 주어진 생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인가 깊다. 어쩌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이 전부이다. 참으로 쓸씁하지만 이것으로 생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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