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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Nov 28. 2024

김장블루스

 애고~ 소리가 절로 난다. 어제 곰실마을에 불려 가서 김장을 했다고 이렇게 허리가 아플까? 배춧잎에 양념을 버무릴 때 허리를 너무 숙였던가?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옳거니 알겠다. 커다란 고무다라이었구나. 그 안에 가득했던 양념들. 무채. 생강. 새우젓. 청각. 액젓. 소금. 설탕. 고춧가루, 찹쌀풀을 섞느라 이리저리 삽질해서 그랬구나. 어쩐지 허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라니.


해마다 겨울의 길목에 들면 주부들은 김장하고 남편들은 긴장한다. 바야흐로 김장의 계절, 여인천하의 시절이다. 일 년 밥상을 책임질 김치를 담그는 여성들은 지휘관이 되어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다른 일손들에게도 작전을 내린다. 모두가 서슬 퍼런 명을 받들고 자신의 몫을 묵묵히 수행한다. 한 해 밥상 승부처가 여기일 테니 순명하는 수도승처럼 입은 다문 채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남편이 담당해야 할 임무도 만만찮다. 절인 배추를 나르고, 양념을 섞고, 배추 속도 버무리고. 뿐인가. 김장이 끝나면 사령관인 아내를 모시고 동네 지인들에게 한 포기씩 나누는 일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느닷없는 영하의 날씨. 이른 아침부터 아내의 명을 받아 고무장갑을 끼고 힘써 배춧잎과 싸워야한다. 이  노고는 점심때  갓 탄생한 김치를 쭉 찢어 수육과 함께 입 안에 넣을 생각으로 감내한다. 게다가 저녁 식탁에 오를 김장 김치와 위에 뿌려진 통깨는  화룡점정이다. 김장을 마무리한 후, 묵직한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고 나면 민족 전통을 이어간다는 뜬금없는 자부심도 생긴다.


 하지만 김장의 노동력은 장난이 아니다. 가족이,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는 인해전술이 요구된다. 금년 들어 어머니는 김장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어머니의 포기가 기쁘면서도 더 이상 김장을 못하는 당신의 노구가 안쓰럽다. 반면에  아내는 오늘도 김치와의 한판을 앞두고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다. 그녀의 각오가 비장할수록 남편은 숨을 죽인다.


 스테이크와 파스타에 환호하는 이들도 하루 종일 김치를 먹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을 것이다. 우리는 반 만년 김치의 민족. 웅녀도 마늘을 먹었다는 민족이다. 가난한 산천 탓에 뭐든 발효시켰고, 데쳐 먹어야 했던 우리의 식탁. 함께 모여 김장하면서 동네 소식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삶의 현장이다. 요즘 불닭면에 환호하는 MZ를 볼 때면 매운맛의 DNA가 유구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겠다.

오전부터 눈발이 내리는데 우리 집 김장은 D-1. 내일은 결전의 날이다. 좋은 생각을 하자.  수육, 김치찜, 묵은지. 파김치 등을 상상해보라. 김치 민족답게 배춧잎과의 물아일체를 이루리니. 맵다고 멈추라. 절인 배추 포기가 제 아무리 많다한들 썰고, 나르고, 바르고, 무치다 보면 끝장나겠지.


다음 날 다시 '아이고~ ' 소리가 날지 모르겠다. 그럴땐 김장 김치를 두부에 싸 먹으면 견딜만하겠지. 그나저나 퇴근길에 새우추젓과 건청각 사는 것 잊지 말자. 내일은 마나님의 날. 아내의 손맛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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