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산길을 걷는다. 뻐꾹새 울음소리가 가깝다. 여름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산길에 늘어선 연두빛 나무 사이로 울긋불긋한 색들이 넘실거린다. 인근 사찰에서 걸어놓은 연등이다. 초파일이 가까운 모양이다. 색색으로 빛나는 초파일 연등은 성탄 트리 못지 않은 환희심을 불러 일으킨다.
시루 안 콩나물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던 시절. 초파일이 되면 사찰을 찾았다. 실은 염불보다 잿밥이란 속담처럼 절에서 주는 공양 때문이었다. 절에 도착하면 소망을 적은 연등을 줄마다 가득찬 연등 틈에 걸어둔다. 아내와 아이들은 벌써 공양 배식 줄에 서 있다. “아빠, 여기야”라며 아이가 득의양양하게 손을 흔들면 못 들은 척했다.
해마다 초파일이면 송광사, 증심사, 대원사 등 찾아 갈 사찰 탐색은 즐거웠다. “음~ 이번에는 어느 절로 갈까?”하고 물어보면, 아내의 기준은 공양의 질과 양이었다. 일종의 맛집 사찰 탐방인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초파일은 봄날의 소풍이었다.
#2
한 동 안 초파일이면 곡성에 있는 성륜사에 갔다. 청화스님을 멀리서 뵙는 것도 좋았지만, 그곳의 절편은 우리의 입과 혀를 극락으로 인도했다. 우선 주린 배를 비빔밥으로 공양을 한 뒤에 후식으로 떡과 과일까지 먹고 나면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온 몸으로 느꼈다.
공양을 마치고 포대화상이 된 몸으로 경내를 거닐다가 조실당에 모셔진 부처님 고행상을 보았다. 청화스님께서 가까이 모셨다는 눈이 푹 꺼지고 배와 등이 맞닿은 그 고행상의 주인공은 싯다르타였다. 우리는 부처님 생일날 배가 부른데, 정작 이날의 주인공인 싯다르타 부처는 빈사 직전의 모습이었다.
공양하면 먼저 대원사가 떠오른다. 그해 초겨울, 비 내리던 대원사는 신비로웠다. 그때 생애 첫 절밥을 먹었다. 두부와 깨의 콜라보로 빛나던 그 날의 톳 요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내에게 대원사의 톳 요리를 설명하면서 재현을 요청했건만 그녀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아직까지 답이 없었다. 25년째 말이다.
대원사 아침 공양을 스님 두 분과 겸상했다. 젊은 스님이 내 나이를, 다른 스님은 결혼 여부를 물었다. “예, 결혼은 했고 몇 달 전에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라고 답을 했더니. 스님께서 “딱, 좋구먼”이라 한다. 무슨 말인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더니, 젊은 스님이 “딱, 출가하기 좋다고요”, “석가모니도 결혼하고 첫애가 태어나자 출가했잖나”라며 두 분이 웃으셨다. 그 말에 출가를 상상해보았다. 내가 삭발하고 출가하면 아내는 어떨까? 후덜덜이다. 이번 생에 출가란 어림없다.
#3
눈이 펑펑내리던 겨울, 불자 몇 분과 함께 승합차에 몸을 싣고 설원을 달렸다. 이런 날에 운전이라니. 일행은 불심으로 불안을 녹였다. 아찔한 순간이 있었는데, 마침 인근에 위치한 섬진강휴게소가 우리를 살렸다. 그렇게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을 엄호 받으면서, 해 질 무렵 합천 해인사에 도착했다. 4박 5일 동안 동계수련회 참가 신청을 했었던 것이다.
참가 수련생은 사십여 명 정도였다. 검은 뿔테를 쓴 스님이 수련회 안내를 했다. 그 안내말 가운데 상당히 위협적인 내용이 있었다. 스님 왈, “모든 공양은 발우공양입니다.”까지는 좋았다. “열 명씩 조를 나눠서 개인별로 발우에 있는 마지막 물을 합수합니다. 그중 가장 더러운 조의 물은 해당 조원들이 다시 나눠 마셔야 합니다.” 이런, 날벼락 있나!
공포의 첫 공양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고춧가루 하나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비장함이 넘쳤다. 공양을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지는 모를 지경이다. 마지막 남겨 놓은 단무지로 정성껏 그릇을 닦고 청수물을 부었다. 이어서 조별 합수가 끝났다. 스님들은 합수된 통을 모았다. 매의 눈으로 네 개의 통을 살피던 스님은 '아~'라는 탄식을 후 “3조 합수통에 고춧가루가 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조들은 휴~라며 안도를 했다. 남의 불행은 우리의 행복이라던가?
3조는 난리가 났다. 합수된 물을 다시 나눠 마셔야 한다니 봉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하심(下心)하러 온 수련회니 어찌겠는가? 그때 3조의 거사님 한 분이 일어나더니 ‘나는 교장이고, 마실 수 없다’라며 반발했다. ‘나는교장이다’라는 소리에 수련생들은 부끄러웠다 .
해인사가 어떤 곳인가? 빡세기로 유명한 법보사찰이 아닌가? 그 외침의 주인공을 향해서 검은 뿔테 스님이 ‘할’을 날린다. “여기서 교장이라니요! 하심하세요! 하심!”라고. 하지만 당사자는 하심을 거부하고 법당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심불가 거사님 덕분에 3조 수련생들은 참회의 108배까지 덤으로 얻어버렸다. 이날 마무리 시간에 나타난 하심불가 거사님은 평온했다. 놀라운 내공의 소유자였다. 대신 평정심을 잃어가는 3조 수련생들이 딱했다.
4박 5일 동안 발우공양은 긴장이었다. 소화불량이 염려될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차라리 먹지 않겠노라 작정을 했다. 아무튼 수련회를 마치고 귀가했다. 집에서 아내가 차려준 집밥을 먹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내에게 해인사 발우 공양에 대하여 고자질을 했더니 그녀는 “집 나가면 고생이야”라며 혀를 찼다.
#4
하지만 이때의 체험은 발우공양 1급 자격증이라도 취득한 것처럼 뿌듯했다. 목에 힘주어 남들에게 발우공양에 대한 예법을 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들어있다고 했다. 밥은 먹는 것이 아니라 모시는 것이라고도 했다. 발우 공양은 밥모심을 통한 내면을 닦는 수행이었다. 뭐든지 내면이 알차게 차오르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바로 낭중지추(囊中之錐)이다.
그나저나 올해 초파일에는 어디로 가볼까? 이제 가족들은 손사래를 친다. 그럼 좋다. 혼자라도 초파일에 대원사에 가봐야겠다. 그때 놀리듯 출가를 권했던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고 계신다. 초파일날 스님을 뵈면 이제 출가는 틀렸고, 떡이 좀더 필요하다며 부탁해야겠다. 아마도 스님께서는 공양주 보살님께 가보라며 웃으실 것이다.
“오늘도 하늘과 땅과 착한 사람들을 시켜서 우리를 먹여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도 이 밥 먹고 하늘처럼 땅처럼 착한 사람들처럼 심부름 잘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넘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 <사랑어린배움터 공양 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