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내내 집에 처박혀있었더니 좀이 쑤셔온다. 아침부터 찌푸리던 하늘이 점심시간이 되자 제법 굵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런 날, 낮잠은 몸에도 좋은 보약이건만, 타고난 역마살이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댄다.
오후 약속된 모임 시간까지는 두 시간 넘게 남아있다. 그러니 빗속에 나간 들 난파선처럼 떠돌 것이다. 하지만 역마살의 응석에 못 이겨 옷을 주섬주섬 입고서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 양림동으로 차를 몰아간다.
오래된 와이퍼는 쓱싹쓱싹 소리를 내면서 쉴 새 없이 빗물을 훔치고 있다. 그런 중에도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만이 오갔다. 적당한 카페를 찾아봐? 아니면 사직도서관으로 가볼까? 빗줄기는 더욱 굵어져 간다.
어느덧 양림동 펭귄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좌회전을 위해 인도(人道) 옆으로 차선을 변경했을 때, 신호등에는 빨간 불이 켜진다. 정지선에서 차를 멈춘 채 비 내리는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인도를 힘겹게 걷고 있는 수녀님 두 분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양손에 짐과 우산을 동시에 든 채 걷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어휴~ 이를 어째..., 시간도 있으니 태워다 드릴까’하는 마음이 들어온다. 그렇다고 이 빗속에 창문을 내리고 ‘제 차 타세요’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자칫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순간, 수녀님 한 분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나를 보더니, 내 차로 다가와서는 조수석 창문을 두드린다.
반쯤 창문을 열자, 수녀님은 “혹시, 어디로 가세요, 좀 태워줄 수 있으세요”라며 하소연하듯 묻는다. “아.. 예... 일단 타세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수녀님들은 빗방울을 털면서 뒷 좌석으로 들어온다. 나는 비상등을 켜놓고 그들이 차분하게 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돌아보니 연세가 지긋한 노수녀님과 창문을 두드렸던 수녀님이었다.
“미안합니다. 짐을 들고 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급한 마음에 차를 두드렸네요.
왠지 태워줄 것만 같았어요”
“예 잘하셨어요. 어디로 가십니까?”
수녀님들은 휴먼시아 아파트로 간다고 답한다. 그리 먼 곳은 아니다. 그렇게 빗속에서 헤매던 수녀님들 태운 채 차에 시동을 건다.
수녀님들은 운전대 위에 있는 성모님을 보더니, 교우라면서 반가워한다. 내게 세례명을 묻더니 자신들은 까리따스회 수녀라고 한다. 백 밀러에 비친 수녀님들은 고단해 보인다. 노 수녀님 한쪽 어깨는 비에 흠뻑 젖었고, 다른 수녀님 얼굴에도 땀이 번져있다. 아무튼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 싶다. 뭐 급할 것도 없다. 마침 시간도 여유도 있으니 말이다.
연거푸 감사하다던 수녀님은 다음에 자신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말한다. 수녀들이 식당을 운영한다고? 다소 생뚱맞다 싶은데, 수녀님은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양림동에서 젊은이 따순 밥집을 운영해요. 이천 원에 점심을 제공해 드려요. 저희 김치찌개 맛있거든요. 꼭 들려주세요. 너무 감사해서요, 맛있는 식사 해 드릴게요. 짐들이 다 식자재거든요. 이를 어째... 차 안에 음식 냄새가 나서요”
어느새 아파트에 도착했다. 수녀님은 내리면서도 젊은이 따순 밥집을 꼭 와달라고 말한다. 다행하게도 빗줄기는 약해지고 있다. 짐을 든 수녀님들이 급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다. 약속 때까지 아직도 여유가 있다. 나는 스마트 폰을 열고서 ‘양림동 젊은이 따순 밥집’을 검색해 본다.
검색창을 열어보니 관련 기사들과 후기를 담은 블로그도 있다. 사진 속에는 젊은이 따순 밥집이라는 상호와 봉사자, 수녀님들이 보인다. 하루 80명 한정이며, 주로 인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취준생 등 지갑이 얇은 젊은이들을 위한 식당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한 끼 이천 원도 놀라운 가격인데, 심지어 밥과 반찬이 리필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밥집’은 정겨운 말이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대표되는 끼니 대신에 엄마의 집밥은 영혼의 만찬이다. 알바생에게 따끈한 김치찌개를 이천 원에 제공하는 그곳이야말로 알바천국이 아니겠는가. 문득, 몇 해 전 가보았던 대인시장에 있는 해 뜨는 식당이 생각났다. 그곳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로 붐볐고, 단돈 천 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낯선 이들을 대접하는 풍습은 환대문화라 부른다. 사극을 보면 “지나가는 과객이 온데, 밤이 깊어서 그럽니다. 하룻밤 묵을 수 있을까요”라는 물음과 “누추한 방이지만 들어오시오.”와 같은 답이 오가는 장면은 정겹다. 지금은 ‘한끼줍쇼’라는 예능 방송이 있을 정도로 사라진 문화가 되어버렸다. 주인장의 환대 속 밥상에는 하늘의 맛이 들어있다.
‘밥이 하늘이라’라고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했던가. 정성스러운 한 끼 식사가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예수님도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언젠가 관옥 선생님은 이름난 학자의 논문보다 주방에서 밥을 차려주는 손이 더 귀하다고 하셨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도보다도 그들께 드리는 밥 한 공기가 진정한 기도가 될 것이다.
수녀님으로부터 밥집 초대를 받았으니, 달걀 한 판이라도 들고 한 번쯤 찾아가 보련다. 세상에는 우연이란 없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그날 나는 하늘 같은 사랑을 태워다 드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쩐지 역마살이 독촉하더라니... 생각해 보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갈라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먹는 것 - 김지하, 밥은 하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