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가을이었던가? 심란한 마음에 며칠을 끙끙 앓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신안동 살레시오 수도원을 찾아갔다. 성당의 고요는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늦은 오후, 성당은 텅 빈 침묵 속에 잠겨있다. 제대 옆에 있는 성체 함에서는 붉은빛이 흐르고 있다. 그 빛을 응시하다가 눈을 감는다.
날숨과 들숨을 의식하면서 성체의 신비를 묵상한다. ‘자비하신 예수여.. 자비하신 예수여.. 새의 날개 깃털보다 가벼운 불쌍한 이 영혼을 긍휼히 여기소서.’ 바닥마저 꺼진 초라한 내 모습을 아파하면서 기도드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떠보니, 어느 외국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 외국인은 내게 “기도해줘서 고마워요”라고 말을 건넸다. 스테인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그의 흰 머리와 눈썹과 파란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분은 다시 한번 웃으며 고개를 끄떡이더니 조용히 성당 밖으로 나가셨다. 아마도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님일 것이다. 귀가 후에도 신부님의 파아란 눈동자와 ‘고마워요’라는 고운 음성이 계속 들렸다. 덧났던 마음의 상처가 서서히 내려앉는다.
지난 4월, 수도원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성당 입구에 어떤 사진이 여러 장 놓여 있었다. 누구의 사진일까? 하고 집어보니, 그때 인자한 눈빛으로 내게 미소 짓던 그 외국인 신부님 얼굴이었다. 순간 마음이 덜컥했다. 사진은 신부님의 선종을 알리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도 그분의 미소와 파아란 눈빛은 여전했다. 사진 앞면에는 ‘노숭피 로베르토 신부 (살레시오회)1932.1.2.-2022. 4. 13.’ 뒷면에는 ‘주님, 노숭피 신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신부님의 이름은 '노숭피 로베르토'였다. 단 한 번,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만났지만, “기도해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씀은 내 안에 향훈으로 남아있다. 신부님의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다. 선하고 기품 있는 노년의 얼굴이다. 그 사진을 기도서에 소중하게 꽂았다. 내 눈도 덩달아 순해질 것 같다.
사진에는 노숭피 신부님의 살아왔던 여정이 적혀 있었다. ‘1932년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 1956년 실습자 신분으로 한국에 파견, 1959년 이탈리아에서 종신서원, 1999년 신안동 수도원장, 2019 서울 관구관 거주, 2022년 4월 13일 선종.’ 노숭피 신부님에 관한 이런저런 후일담을 뒤늦게 듣게 되었다. 신부님은 우리의 숭늉과 커피를 좋아해서 한국식 이름을 ‘노숭피’라고 정했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고(故) 이태석 신부를 살레시오회로 받아 주신 분이었다. 신부님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추모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눈이 파란 고급 영혼들이 잿더미가 된 이 땅을 찾았다. 젊은 그들은 부모와 이별을 한 채, 가방 하나만 들고서 부산, 인천, 김포 등으로 입국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의 가난이었다. 파란 눈의 그들은 전쟁고아를 보듬었고, 빈민과 농민의 친구가 되었으며, 병자들의 벗이 되어 낯선 나라 코리아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들은 김치와 된장국을 즐겼고, 청계천 빈민촌에서 가난한 이들과 뒹굴었다. 그들은 이 땅에 온 천사들이었다.
파란 눈의 천사 몇 분이 떠오른다. 2014년에 선종하신 정일우 신부(존 데일리)는 빈자의 아버지였다. 제정구 선생과 함께 도시빈민의 대부가 되어 숱한 고초를 당했고, 가난한 농민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언젠가 <내 친구 정일우>라는 신부님의 일생을 다룬 다큐 영화를 깊은 호흡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 여학생들은 간호학과를 선호한다. 가끔 수업 시간에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란 책을 추천하곤 한다. 40년 동안 비참한 땅 소록도를 찾아와서, 나환자의 벗으로 살았던 두 분의 삶에 대한 기록물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2006년에 소리 없이 소록도를 떠났다. 늙은 자신들이 짐이 되면 안 된다는 메모만 남겨 놓은 체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수도원 기행2>에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내용이 있다. 바티칸 교황청 밀폐된 어느 작은 방에서, 무려 44년 동안 기도만으로 사셨던 수녀님이 계셨다. 이름은 ‘산 나자레’ 수녀님이다. 수녀님은 작은 방에 자신을 유폐한 채, 불쌍한 코리아와 교황청을 위한 기도를 서원했다.
수녀님에게 코리아란 나라가 무엇이기에 일생을 동안 기도를 했을까?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가 진전된 것들이 그저 우리의 힘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산 나자렛 수녀님에게 감사 기도드린다. “수녀님 감사합니다. 저 또한 고통을 받는 다른 민족과 나라를 기억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란 말이 있다. 파란 눈의 그들은 이 땅에 꽃을 피웠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시들어가는 세상의 꽃을 소중하게 피워내야 한다. 선종하신 노숭피 로베르토 신부님의 푸르른 눈빛을 떠올려본다. 끝으로 신부님이 평생토록 마음에 새겼다던 성서 구절을 적어본다. “늘 기뻐하십시오.” 필리피 서, 4장 4절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