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벽 5시 15분의 깨달음

#14 - 김민기, "아침이슬"금지곡이 된 자연의 노래

by 꼬르륵

[김민기 - 아침이슬]

https://www.youtube.com/watch?v=qHIU9fpXVTk



1971년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발표되자마자 금지곡이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긴 밤을 견뎌낸 후 새벽에 맞이하는 희망을 노래했는데, 그 '긴 밤'이 당시 정치적 상황을 은유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웃긴 건 이 곡이 처음부터 저항 의식을 드러내려 했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새벽에 이슬을 보며 느낀 감정을 노래했을 뿐인데, 그 시절엔 자연을 노래하는 것조차 위험한 일이었다. 자연 속에서 위로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현실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읽혔던 거다.


검열 시대의 자연 피난처

1970년대 초반 한국은 유신 체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직접적인 저항을 표현할 수 없던 시절, 젊은 세대들은 자연 속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그런 시대적 갈망을 담은 노래였다. 흥미롭게도 지금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유리의 "숲"이나 다른 자연을 소재로 한 음악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하다.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위로를 찾으려는 마음. 50년이 흘렀지만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은 여전하다.


[최유리 - 숲]

https://www.youtube.com/watch?v=7ihLv8_Vd-4


풀잎에서 찾은 희망의 언어

김민기는 자연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막연한 '밝은 미래'가 아니라 '풀잎마다 맺힌 이슬'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진주보다 더 고운 이슬방울을 보며 설움도 아름다운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정말 혁명적인 관점이었다. 거창한 구호나 이념 없이도, 그냥 새벽에 동산에 올라가면 작은 미소를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연이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걸 보여줬다.


아침 5시 15분의 기적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새벽 5시 15분이 떠오른다. 아주 구체적인 시간이다. 완전히 밤도 아니고 완전히 아침도 아닌, 그 애매한 시간. 그때 느끼는 감정은 참 특별하다.

김민기도 그런 순간을 포착했던 것 같다. 절망과 희망 사이, 어둠과 빛 사이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 그걸 이슬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번역해낸 감각이 놀랍다.


자연이 주는 위로의 언어

요즘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김민기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단순한 것에서 위로를 찾고 싶은 마음.

최유리의 "숲"을 듣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도 비슷할 거다. 나무들 사이에서, 바람 소리 속에서 찾는 평온함. 자연이 주는 무조건적인 위로. 이건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감정이다.


은유가 된 자연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된 건 자연 묘사가 너무 구체적이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냥 '희망을 가져라'라고 했다면 뻔한 구호가 되었을 텐데,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고 하니까 더 깊이 와닿는 거다. 은유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더 강하게 전달되는 메시지. 자연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


50년 후의 동산

지금도 새벽에 동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등산복을 입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방식이긴 하지만, 그 마음은 김민기 시대와 비슷할 것이다. 뭔가 답을 찾으러 가는 마음. 자연 속에서 위로를 찾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캠핑을 하거나, 식물을 키우거나, 자연을 소재로 한 음악을 듣거나.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믿는 마음.


이슬방울 하나의 철학

결국 "아침이슬"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이슬방울 하나, 새벽 공기 같은 소소한 것들에서 뭔가를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달까. 김민기는 자연을 그냥 배경으로 쓰지 않았다. 뭔가 말을 걸어오는 존재로 봤다는 느낌? 50년 전 노래인데도 지금 들으면 여전히 와닿는 건, 복잡해진 세상에서도 단순한 것들이 주는 위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부 자연을 노래하다 — 자연에 대한 감수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