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만두에 진심인 사람

첫 아이 임신 때 찐 호박잎이 너무 먹고 싶었다. 결혼 후 한 번도 먹지 않았던 음식. 결혼 후 시집에서 맞는 첫 설날 떡국은 뭔가 허전했다. 친정 엄마의 설 떡국에는 김치만두가 늘 함께 있었다. 김장김치, 돼지고기, 당면, 두부, 냉이, 숙주, 마늘, 쪽파, 참기름, 후추로 속을 만들어 직접 빚은 엄마의 김치 만두.

세월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다. 음식은 과거를 소환하는 힘이 아주 강하다. 음식이 아닌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름이면 친정 엄마가 무심히 해주던 호박잎 쌈,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빚던 만두는 나의 원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명절마다 부산 친가에 들렀다 외가 대구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것에 익숙한 두 아들은 양가의 음식에도 익숙하다. 명절 음식 중 부산 어머니는 탕국에 힘을 주었고, 대구 친정 엄마는 김치만두에 공을 들였다. 남편은 명절이 되면 시어머니 탕국을, 난 친정엄마의 김치 만두를 기다렸다. 정 많은  둘째 아들은 할머니의 탕국, 외할머니의 김치만두 둘 다 좋아한다. 

지난해 추석 명절에 이어 올 설에도 우리는 서울이다. 친정 부모님은 일찍부터 오지 마라 했고, 시어머니는 무리하여 움직이지 말라 했다. 지난 추석은 형님네가 가고, 올 설에는 우리 부부가 막내딸만 데리고 가서 홀로 계신 시어머니와 명절을 보내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아주버님과 손윗동서의 배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설날도 아이 셋과 함께 서울에서 보낸다. 

뭔가 허전하지만 아이들이 설 분위기를 느끼게 할 막중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 명절 분위기 업에는 음식이 최고다. 

“먹고 싶은 음식 하나씩만 픽 해. 설 명절 때 만들어 줄게.”

설 연휴 이틀 전, 가족들에게 연휴 동안 먹고 싶은 음식 신청을 받았다. 남편은 망설임 없이 설 연휴 내내 먹을 수 있는 만큼의 탕국, 큰 아들은 육전, 둘째 아들은 LA 갈비, 막내딸은 마카롱을 주문했다. 지난 추석에도 먹고 싶은 음식을 신청받았는데 내 것은 귀찮아서 생략했다. 하지만 올 설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도 하나 추가했다. 꼬치전이 나의 원픽!

연휴 하루 전, 두 아들과 마트에 가서 장을 한가득 보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냉동 갈비 핏물부터 빼서 양념에 재워 두었다. 

연휴 첫날,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를 꺼냈다. 연휴 내내 먹으려면 탕을 한 가득 끓여야 한다. 소고기, 무, 오징어, 홍합 살, 모시조개, 관자, 문어, 어묵, 곤약을 넣고 집 간장, 소금으로만 간을 한다. 시원하고 담백한 부산식 탕국이 완성되었다. 

육전을 부치고 딸과 함께 꼬치를 만들었다. 막내가 좋아하지 않는 맛살은 빼고, 당근, 아스파라거스, 꽈리고추, 소고기, 쪽파, 새송이 버섯을 나란히 끼워 밀가루를 묻혀 계란 옷을 입혀 꼬치전을 완성했다. 쉬운 육전은 좀 넉넉하게 만들었고, 손 많이 가는 꼬치전은 딱 15개만 완성했다. 

음식을 만드는 내내 고민이 되는 메뉴가 하나 더 있다. 식구들에게는 분명 하나씩만 선택하라 했는데 내 맘속에는 김치만두도 품고 있다.  혼자서 엄마의 레시피로 김치만두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김치를 총총 썰어서 국물이 나오지 않게 꽉 쫘야 하는데 그것부터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면도 삶아야 하고, 두부도 으깨고, 고기도 별도로 양념해서 볶아 속에 넣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손이 많이 간다. 두 아들에게 같이 해주면 만들고 아니면 안 할 거라고 협박했다. 정말 먹고 싶은 사람은 나인데. 외할머니식 김치만두가 먹고 싶은 마음과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만두 사이에서 아이들은 쉽게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엄마는 대구 엄마의 김치만두가 너무 먹고 싶네. ” 

아들 앞에서 넋두리를 하니 선심 쓰듯 반응한다.  

“해 먹어, 해 먹어. 같이 해줄 게”

아들의 대답을 듣고도 섣부르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차렸다. 남편에게 김치만두를 향한 내 마음을 고백했다. 남편은 손 많이 가는 음식은 하지 마라며 말린다. 

“사 먹을 수도 있는데....... 난 엄마의 김치만두가 너무 먹고 싶어.”

남편은 더 이상 나를 말리지 않는다. 어차피 내 맘대로 할 것이라는 것을 남편은 알고 있다.  

“기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할게. 딱 스무 개만 빚던가. 힘들면 안 할 수도 있고.......” 

남편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일하러 나갔다. 일단 글을 써보자. 내가 저녁에 만두를 빚을 것인지는 글을 써보면 알 수 있다. 이제 알았다. 난 김치 만두를 먹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움이 나를 삼킬 줄도 모른다. 외할머니만큼은 아니겠지만 엄마가 맛있게 만든 김치 만두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다. 외할머니의 유전자가 엄마를 거쳐 아들에게 전해졌다. 이제 음식으로 전하는 그리움도 함께 아들에게 새기고 싶다. 먼 훗날 엄마와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김치만두로 그리움을 삼킬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