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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Feb 05. 2021

딸의 눈물

아이 질문이 많은 밤이다. 잠자리에 누워 끊임없이 궁금한 것을 쏟아낸다. 

“엄마, 몇 살부터 어른이 되는 거예요?”

“스무 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식구들은 너무 큰 사람들이었다. 아이와 가장 나이 차이가 적게 나는 작은 오빠랑은 열 살 차이. 큰 오빠와는 열한 살 차이가 난다. 엄마는 40년, 아빠랑은 46년의 거리가 있다. 아이 키는 또래보다 늘 컸다. 아이는 아무리 용을 쓰며 빨리 커도 두 오빠는 이미 170, 180센티미터가 넘었고 나이 차이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이가 올해 일곱 살이 되었으니 두 오빠는 곧 어른이 되는 스무 살에 가까워졌다. 막내딸은 오빠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 집에서 떠날까 봐 걱정했다. 오빠들이 어른이 돼도 같이 살고 싶단다.  그것은 오빠가 결정할 일이라고 답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OO아파트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인가 싶어 좀 더 물어봤다. 

“내가 어른이 돼서 남자 친구가 생기면 여기서 살 수가 없잖아?”

아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해야 하니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자신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가 더 이상 외할머니,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 말이었다. 

“OO야, 좋아하는 남자 친구 생기면 남자 친구랑 같이 살면 돼지. 좋겠네?” 

아이의 진지한 대화에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난 작은 오빠, 큰 오빠랑 가까운 곳에 살고 싶어. 내가 남자 친구랑 같이 살 때 엄마도 이사 가서 같이 살면 안 돼요?”

빵 터졌다.  빈 말이라도 기분은 좋다. 

“너 결혼할 때 나랑 같이 가서 살자고? 네 남자 친구가 엄마 싫다고 하면 어떡해? 그리고 엄마는 아빠랑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지”

난 슬슬 장난이 치고 싶었다. 아이는 고민이 깊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목이 매여 대답을 한다. 

“음.... 그럼 가까이 살면서 엄마 보고 싶을 때 엄마 집에 와서 한 밤 자고 가도 돼?”

“당연히 되지, 남자 친구랑 살다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으면 가끔씩 와서 한 밤 자고 가도 돼.”

조용해지더니 아이는 이불속에서 흐느껴 운다. 엄마랑 헤어지는 생각만 해도 슬픈가 보다. 좋아하는 남자 친구 대신 엄마랑 영원히 살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가 너무 귀엽다. 어른이 돼서 살다 보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도 보러 갈 수 없는 날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의 슬픔이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자려고 누워 막내딸과 나눈 대화는 고스란히 녹음되었다.  먼 훗날 아이에게 들려주고 증거자료로 사용해야겠다. 남편에게 녹음파일을 보냈다. 우는 모습까지 엄마, 아빠 눈엔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딸아이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하다 보니 아이는 꿈나라로 가버렸다. 아무리 엄마가 좋아도, 이별이 슬퍼도 남자 친구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의 꿈나라로.  

나를 이토록 미치게 좋아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니 감동이다. 두 아들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어른이 돼도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하던 두 아들은 이제 독립을 이야기한다. 내가 죽으면 진심으로 슬퍼하며 날 그리워할 세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 가끔씩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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