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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나 Sep 07. 2021

고등학생 두 아들 육아는 맑았다 흐렸다 한다


#맑은 날


막내딸을 유치원 셔틀버스에 태운 후 둘째 아들과 단둘이 집을 나섰다. 개교기념일이라 둘째 아들은 학교 수업이 없다. 날씨가 좋아 아차산을 다녀올까 싶었는데 막상 가려니 아들은 귀찮은가 보다. 요즘 열일곱 둘째 아들이 너무 예쁘다. 스스로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이 느껴진다. 수업 없는 특별한 날인만큼 잠시 뭐라도 하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침에 떠오른 곳이 자전거 라이딩 명소 능내역이었다. 볼 것 없으면 드라이브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더라도 한 번 가보자 했다. 차에 타면서 본격적으로 둘의 수다가 시작된다. 친정 가족 이야기, 지난 육아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가 하는 무슨 이야기든 재밌게 들어주는 아들이다. 엄마 인생이 궁금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잘 도착하여 차를 세웠다. 그런데 능내역 폐역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좀 걷기로 했다. 슬리퍼를 끌고 나온 아들은 역시 고딩스럽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아이랑 실랑이를 할 생각은 없다. 슬리퍼면 어떻고 운동화면 어떠한가. 우리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저 멀리 연꽃들이 보인다. 걸어가 보니 능내 1리 연꽃 마을이라 되어 있다. 연꽃 가득한 연못 주위를 둘러싼 산책길이 보인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힘든 좁은 흙길인데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안 보인다. 아이는 7년 전 걸었던 미국 콩코드의 월든 폰드 오솔길과 비슷하다며 만족했다. 아들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인적 드문 오솔길을 아들과 둘이 걸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남편에게 몇 장 보내 아들과의 산책을 알렸다. 혼자 걷기엔 사람이 너무 적어 무서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요구하는 대로 모든 사진을 찍어주는 아들이 고맙다. 성장한 아들과 데이트하는 맛이 이런 거구나!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와 여기까지 왔는데 능내역은 찾아봐야지 싶어 인터넷 사진을 확인했다. 우리가 걸었던 반대 방향에 있는 건물이다. 아들이 능내역을 배경으로 엄마의 인증샷을 남겨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브런치라도 먹을까 싶어 카페에 들렀다가 빵조각으로 모자의 데이트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 다시 나왔다. 아들은 복튀김을 먹어 보고 싶다고 했다. 미사리 동래 복국으로 향했다. 아들은 메뉴판 가격을 보더니 너무 비싸다며 쉽게 고르지 못한다. 복세트 2인분을 시켰다. 1인분에 3만 원. 후덜덜한 가격 맞다. 하지만 학원도 안 다니며 열심히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둘째 아들이 예뻐 맛있는 지출을 과감하게 결정했다. 복불고기, 복튀김, 복탕수, 복껍질 초무침, 복지리, 복죽까지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매우 만족하는 아들이다.


오전 시간을 아들과 보냈으니 막내가 하원 하기 전 오후 시간은 각자 보낼 것이다. 오후 요가 수련 후 간단한 장까지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책상에 앉아서 또 열심히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엄마와의 수다, 산책, 식사 모두 아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못 산책하는 동안 슬쩍 흘려들었던 아들 말이 있다.

“나 학교 자퇴하려는 마음 반은 접었어.”

듣고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원래 하던 대화에 집중하며 넘어갔다. 하지만 난 분명 아이의 심리 변화를 느꼈다. 아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두고 지켜보는 게 고등학생 아들 육아의 최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러니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자식을 지켜보는 게 부모로서 가장 어려운 육아이기도 하다.





#흐린 날


어제 오후부터 내린 비가 밤새 오더니 아침까지 이어진다. 세상은 축축하고 흐리다. 등교하는 두 아들 아침 기상이 쉽지 않다. 알지. 이런 날은 몸도 찌뿌둥하고 일어나기도 싫다는 것. 하지만 일상은 이런 것을 박차고 견디어 꾸준히 반복될 때 만들어진다. 따끈한 국을 끓여 놓고 두 아들을 깨운다. 둘째는 앉아서 밥을 먹는데 첫째는 잠 깨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평소엔 잘 일어나는 첫째다. 국물 몇 숟가락 먹고는 그만 먹는다고 한다. 밥 한 공기가 그대로 남았다. 평소엔 아침 식사로 뭘 차려줘도 군말 없이 먹는 아이인데 말이다.

“오늘 체험학습 신청하고 학교 안 가면 안 돼? 몸이 너무 힘들다.”

못 들은 척했다. 그냥 부엌일을 했다. 힘들어서 한 번 해본 말이라면 엄마 반응이 없으면 알아서 학교 갈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아들은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한다.

“엄마, 오늘 체험학습 신청하면 안 돼?”

마음에 거부감이 든다. 고등학생이 무슨 체험학습 신청하고 학교를 안 가나 싶다. 많이 피곤하냐며 아들 어깨와 두피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래도 아이는 쉽게 기운을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싶어 한다. 내 마음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그 사이 둘째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열여덟 살 큰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 어디 아파?”

“아니, 그냥 피곤해서.”

“학교는 피곤하다고 안 가는 학원이 아니야. 엄마가 피곤하다고 집안일을 안 하고, 아빠가 피곤하다고 출근을 하지 않으면 엉망이 되지 않을까?”

아이는 마지못해 씻으러 들어갔다. 난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혼자 소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지금 난 첫째의 말에 수긍하며 책임까지 맡겨야 하나? 앞으로 이런 생각 못 하게 따끔하게 꾸중을 해야 하나? 직장 가서도 힘들다고 지각하거나 수시로 결근하면 어떡하나? 이렇게 부정 회로가 가동되었다는 것은 이미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꾸역꾸역 교복까지 차려입은 아들에게 소리 높여 한바탕 퍼부었다.

“엄마는 걱정된다고. 피곤하다고 학교를 안 간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고? 엄마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네가 직장 출근도 이렇게 쉽게 생각할까 봐 겁난다고.”

“내가 매일 그러는 것도 아니고 몇 년 동안 처음 이야기하는 건데. 그리고 무슨 직장 드립이야?”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 이해받지 못했다는 듯 눈물을 흘린다. 안다. 내가 너무 멀리 갔다는 것. 더 이상 각을 세우는 것은 상황적으로 좋지 않아 일단 거실 소파로 후퇴했다. 코로나 이후 2년 가까이 아이는 2주 연속 학교를 간 적이 없다. 지난주 대면 등교였으니 이번 주까지 아침마다 등교하는 게 아무래도 피곤한가 보다. 요즘 아이들에게 매일 학교 가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게 되었나? 피곤을 무릅쓰고 매일 새벽밥 먹고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엄마는 아들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이런 경험을 가진 엄마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우산을 챙겨 들고 학교로 향했다. 아들 엄마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할 예정이다. 둘째의 자퇴 계획은 이해가 되는데 첫째의 하루 체험학습은 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일까? 그 안에는 많은 마음이 담겨있다.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첫째에 대한 기대와 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이 숨어 있다. 어제 날씨는 맑았고 오늘은 흐리다. 나의 고등학생 육아도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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