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로는 거의 먹지 않았던 음식인 호박잎 쌈이 첫 임신 때 너무 먹고 싶었다. 결혼 후 부산 시집에서 맞는 첫 명절날 떡국은 지금껏 내가 먹던 것과 달랐다. 만두 없는 떡국이라니....... 엄마 떡국에는 늘 김치만두가 있었다. 김장김치와 돼지고기를 갈아 만두소를 만들어 빚은 엄마표 김치 만두. 나이를 먹을수록 음식은 과거를 소환하는 힘이 아주 강했다.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인지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인지 때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여름이면 친정 엄마가 무심히 해주던 호박잎 쌈, 명절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빚어 먹었던 김치만두는 나의 원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품은 소울 푸드다.
설 명절이면 부산 시어머니는 탕국에 힘을 주었고 대구 친정 엄마는 김치만두에 공을 들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남편은 시어머니의 탕국을, 난 친정엄마의 김치 만두를 기다렸다. 명절마다 양가를 오가는 둘째 아들은 할머니의 탕국, 외할머니의 김치만두 모두 좋아한다. 코로나 발생 이후 몇 번의 명절을 양가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보냈다. 우리끼리 지내는 명절은 뭔가 허전하다. 삼 남매 아이들에게 명절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에 음식으로 명절 기분을 내본다.
“먹고 싶은 음식 하나씩만 골라. 설 명절 때 엄마가 만들어 줄게.”
설 연휴 이틀 전, 가족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신청받았다. 남편은 망설임 없이 연휴 내내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의 탕국, 큰 아들은 육전, 둘째 아들은 LA 갈비, 막내딸은 마카롱을 주문했다. 지난 추석에도 가족들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신청받았었는데 내 것은 귀찮아 건너 띄었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내가 먹고 싶은 꼬치 전도 포함시켰다. 연휴 시작 전, 두 아들과 마트에 가서 한가득 장을 보고 왔다.
연휴 첫날, 집에 있는 가장 큰 냄비를 꺼내 연휴 내내 먹을 만큼의 탕국을 끓였다. 소고기, 무, 오징어, 홍합살, 모시조개, 관자, 문어, 어묵, 곤약, 두부를 넣고 집 간장,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다. 시원하고 담백한 부산식 탕국이다. 육전을 부치고 딸과 함께 꼬치를 만들었다. 막내가 좋아하지 않는 맛살은 빼고, 당근, 아스파라거스, 꽈리고추, 소고기, 쪽파, 새송이 버섯을 나란히 끼워 밀가루를 묻히고 노란 계란물을 입혀 노릇하게 지졌다. 손 많이 가는 꼬치전은 딱 열다섯 개만 만들고, 쉬운 육전은 좀 넉넉하게 준비했다.
사실, 음식 만드는 내내 고민되는 메뉴가 하나 더 있었다. 식구들에게는 하나씩만 선택하라 했지만 정작 나는 꼬치전과 함께 김치만두도 너무 먹고 싶었다. 엄마 레시피로 나 홀로 김치만두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김장 김치를 총총 썰어 국물이 나오지 않도록 꽉 쫘야 하는데 그것부터 쉽지 않다. 당면도 삶아야 하고, 두부, 돼지고기 등등....... 생각만으로도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머릿속으로 몇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포기했다.
종일 준비한 탕국, LA갈비, 육전, 꼬치전으로 잔치상 같은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엄마의 김치 만두도 먹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손 많이 가는 음식이라며 아예 하지 마라며 말린다.
“사 먹을 수도 있는데....... 난 엄마의 김치만두가 너무 먹고 싶네.”
어차피 내 맘대로 할 것이라는 것을 남편은 알고 있기 때문인지 말리는 것을 포기하고 침묵을 지킨다.
“기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할게. 딱 스무 개만 빚던가. 힘들면 안 할 수도 있고.......”
설거지 내내 망설이다 결국 김치만두를 혼자 해보기로 결정했다. 푹 익은 김장김치를 꺼내 총총 썰었다. 손목 스냅을 이용하여 열심히 다진다. 갑자기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며 헛웃음이 터졌다.
‘나 지금 누구? 여긴 어디? 왜?’
한 방울의 김칫국물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꼭 짠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양푼이 한쪽에 담아 두고 돼지고기 간 것에 소금, 후추를 넣고 잡내 제거를 위해 맛술도 조금 추가하여 재워둔다. 당면은 뜨거운 물에 불려 살짝 삶아내는데 수분을 흡수하는 식재료라 만두소를 만드는데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듯하다. 각각의 재료를 조금씩만 준비했다. 처음 시도하는 만두라 맛도 모양도 자신 없기 때문이다. 재워 둔 돼지고기를 살짝 볶아 만두소를 만들면 고기 익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만두소 간도 먹어가며 맞출 수 있어 좋다. 두부를 으깨고 데친 숙주나물과 쪽파를 잘게 썬다. 마늘도 넉넉히 다져 넣는다. 엄마라면 냉이도 데쳐 넣겠지만 난 이 정도로 충분하다. 모든 재료들을 섞어 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마무리하여 숟가락으로 한입 크게 떠 맛을 본다. 이때 맛있다면 만두는 이미 성공이다.
만두소를 만들고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다. 만두 스무 개가 아니라 육십 개는 만들어야 끝날 것 같다. 내가 과연 손 만두를 제대로 빚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혼 전 엄마랑 빚던 나의 손 만두는 엄마 것에 비하면 모양이나 속의 알찬 정도가 늘 부족했다. 욕심내서 속을 넣으면 만두피가 터졌고, 적게 넣으면 맛없는 밀가루 맛 만두가 되었다.
한 손에 만두피를 펴 한 숟가락 가득 만두소를 넣는다. 검지에 물을 찍어 만두피 가장자리에 발라주고 반으로 접어 가장자리를 따라 꼭꼭 눌러주니 그 옛날 엄마가 만든 손 만두 모양과 비슷했다. 신기했다.
‘십 년 넘게 만두를 만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나이가 되면 다 엄마처럼 만두 모양이 나오는 거란 말인가?’
만두를 빚는 동안 둘째 아들과 막내딸이 내 옆에 잠깐 앉아 만두 몇 개를 빚었다. 둘째 아들의 만두는 속이 넘쳐 터지려 했고, 막내딸의 것은 속이 너무 적어 납작 만두가 되었다. 엄마는 어떻게 만두를 잘 만들 수 있냐며 아이들은 내게 물었다.
“글쎄다. 나이를 먹어 그런가........’
만두를 반으로 접어 양끝을 왜 오므리는지도 알 것 같다. 냄비에 쪄내는 공간도 줄이고, 접촉면이 적으니 생만두가 쟁반 바닥에 덜 붙었다. 만두피가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만두 오십 개가 완성되었다.
만두 빚기는 빨리 해 치워야겠다는 급한 마음도 없고,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었다. 설날 아침 떡국에 온전한 모양의 만두를 넣고 싶다는 생각과 맛있는 김치만두가 먹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엄마 맛을 흉내 내고 싶었다. 맛도 모양도 엄마표에 미치지 못하지만 엄마의 것과 비스름한 것으로 만족한다. 외할머니만큼은 아니겠지만 엄마가 맛있게 만든 김치 만두를 아이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외할머니 유전자가 엄마를 거쳐 아이들에게 전해진 것처럼 음식으로 전하는 그리움도 함께 새겨주고 싶었다. 먼 훗날 엄마와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김치만두를 먹으며 그리움을 삼킬 수 있게 말이다. 내가 김치만두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어떤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 될지 궁금하다. 어떤 음식을 먹으며 나를 떠올릴까 살짝 기대해본다.
'우리 엄마가 담근 김장 김치는 정말 맛있었는데...', '엄마 파김치가 맛있었는데', '엄마 갈비찜 맛있었는데' , '엄마표 잡채가 맛있었는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날 떠올리며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아이들과 남편이 내가 만든 음식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