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엄마가 되기까지, <엄마의 생각정리스킬>
‘1, 2, 3, ……, 24, 25’. 25층이다.
어느 정도의 높이인지 감안해 보기 위해 창 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느 한가한 오후, 할 일이 없어 집에 굴러다니는 강냉이를 어기적어기적 씹어 먹다가 무심결에 내려다봤던 그 창의 높이가 아니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내려다보니 더욱 아찔하게 느껴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아이를 낳고, 도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까 궁금했더랬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는 아이가 예쁘기는커녕 눈이고 허리고 머리고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특히나 마음은 더 아팠다. 이게 뉴스에서나 보던 산후우울증이구나 싶었다. 어릴 적 사흘이 멀다하고 계속되는 아버지의 주사와 폭력으로 인해 받은 수많은 상처에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는데 25층 창문을 내려다보며 산후우울증에 허덕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내 마음은 한 번 더 처절하게 무너졌다.
결혼한 지 3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찾아오지 않았다. 조바심이 물밀 듯 밀려올 무렵 우리 부부에게 첫 번째 아이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 아이는 9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 배 속에서 함께하다 하늘나라로 갔다. 엄마가 되는 것도 나에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한 번의 유산을 겪으며 결혼한 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드디어 임신 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다. 유산 경험이 있던 터라 상사에게 이야기하고, 바로 육아휴직을 위해 보따리를 쌌다. 임신기간을 무사히(?) 보내고 드디어 2014년 9월 16일, 분만실에서 10시간 동안의 아름다운 사투를 끝으로 ‘인생의 호시절’은 쥐도 산모도 모르게 끝이 났다.
딸과 처음 마주한 순간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순도 100%의 ‘행복’일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딸의 얼굴을 본 순간 든 감정은 놀랍게도 ‘놀람’이었다.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는 남편과 싱크로율 100%인 딸의 얼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년생 아기를 낳겠다는 가당찮은 생각은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쏙 들어갔다.
남편은 육아기간 중 가장 힘든 시기인 아이 출산일부터 돌까지 1년 동안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며 미안해했다. 처음에는 ‘바빠도 뭐 얼마나 바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평일에는 육아 전쟁이 끝난 저녁 11시가 다 되서야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1년 동안 ‘반과부’ & ‘독박육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껏 선인장도 안 키워 본 여자 사람이면서 육아의 ‘ㅇ’도 몰랐던 나에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남편 다음 비빌 언덕인 양가 어머니 찬스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시어머니는 지방에 계셔서 도와줄 수 없었고, 친정 엄마도 멀리 사시기도 하지만 ‘난 애는 죽어도 못봐준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대쪽같은 육아 철학을 가지고 계셨기에 가끔씩 반찬만 가지고 오셔서 잠깐 머물다 가시는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콧바람이라도 쐬면서 즐기는 ‘찰나의 커피타임’도 거의 누리지 못한 채 매일 힘들게만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냈다. 때론 매일 반복되는 육아 쓰나미와 가사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도망치고도 싶었다. 그 시기의 나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목록을 모조리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도 엄마니까 젖먹던 힘까지 짜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아이가 잠든 고요한 밤이 되면 이 세상에 나만 혼자인 듯한 슬픔과 우울함에 복받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내 인생이 송두리째 없어져 버렸다는 공허함. 이렇게 아이 뒤치다꺼리만 하다 내 인생이 허망하게 끝나버릴 것만 같은 초조함에 도무지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잠든 딸을 바라보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대로 무너지지 않겠어!’라는 굳은 다짐과 함께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날부터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나와 아이, 그리고 우리 가족 전체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혹여라도 아이가 깰까 싶어 야간 보초를 서면서도 작은 전등 불빛에 의지해 새벽까지 하루 한두 권의 책을 읽고 또 읽고, 강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상한 마음을 치료하고 싶었다. 또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 꿈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그렇게 나는 나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매일 작은 성공 경험을 조금씩 쌓아가다 보니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도 그치게 되고 내가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편이라고만 생각했던 남편 또한 사회에서 펼쳐갈 자신만의 꿈이 있고, 그 역시 나와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표현이 다소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과 주변 사람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너른 이해력과 포용력이 생겼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없지만 내가 바뀌니 남편이, 가족이, 세상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결에 발견한 한 권의 책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줄 기폭제가 될 줄은 몰랐다. 생각정리연구소의 대표인 복주환 저자가 쓴 『생각정리스킬』이었다. 제목만 보고, 득달같이 서점으로 달려갔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의 고민의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동안의 나는 많이 읽고 생각하고 경험한 것들을 머릿속에 쟁여놓는 것에만 급급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 보니 머릿속에 쌓기만 해서는 복잡하기만 한 생각과 나의 꿈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제는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해서 꿈을 만들어 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니 당장이라도 꿈을 이룰 듯한 기세였다. 그 여세를 몰아 그 후로도 계속 집순이로 무릎이 다 늘어난 두어 벌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미친년 산발같은 머리를 한 채 구체적인 꿈을 만드는 노력을 계속 했다.
그렇게 아이를 낳기 전부터 약 10년 동안 읽은 책이 약 3,000권, 시청한 유튜브 강의가 3,000건이 넘었음을 헤아렸다. 이제는 책을 써야겠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일 자면서도 몰입하다 보니 꿈에서 『엄마의 생각정리스킬』이라는 제목도 지어줬다. 나처럼 마음과 몸이 힘든 엄마들, 이렇다 할 꿈이 없어 방황하는 엄마들을 위해 하루빨리 생각정리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딸과 아이들을 위해 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을 끝까지 쓰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콘텐츠에 대한 확신과 나 자신과 우리 딸 그리고 많은 엄마들과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가장 컸다.
이 한 권의 책에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 자신으로 그리고 엄마로 살며 엄마와 아이가 행복하면서도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수없이 고민하며, 넘어지고 깨지면서 적용하고 연구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없다. 엄마가 생각을 정리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갖춰야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 주체적으로 설 수 있다. 주체적인 나의 삶으로 가는 여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엄마의 생각정리스킬’을 믿고, 내 삶과 아이, 가정에 적용해 본다면 엄마와 아이 그리고 가족 모두 인생의 작은 변화부터 큰 변화까지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부터 그 여정을 함께 떠나보자"
앞으로 <엄마의 생각정리스킬>이라는 제목으로
엄마들이 가지고 있는 집안일, 재무, 육아 등의 고민을
생각정리 도구를 통해 쉽게 해결하는 시리즈가 연재됩니다.
본 시리즈를 통해
오늘도 우리 아이, 가족, 그리고 엄마 나 자신을 위해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이
조금 더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