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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망 Nov 04. 2024

피 튀기는 모성애 대결

잠이 눈꺼풀에 몽실몽실 묻은 아이가 볼멘소리로 투정 부렸다. "엄마 또 물렸어." 아이가 내미는 손가락과 발바닥에는 발갛게 부어오른 자국이 생생하다. 고개를 드니 아이의 볼에도 두어 군데 불긋하다. 눈두덩이도 벌건 것이 여기저기 난장을 피워놨다. 이쯤 되면 아이가 아니라 내가 골이 틀린다. 어른이야 물려도 조금 가렵고 말 것을 아이는 며칠간 땡땡 부은 자국을 품고 아픔을 호소한다. 그런데도 꼭 아이를 더 많이 무는 이 놈에게 무척이나 부아가 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그랬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나는 모기소리를 무척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학을 뗄 정도다. 귓가에 "왱" 모기소리가 들리면 왠지 소름이 오소소 올라오는 것 같다. 자다가도 모기소리가 나면 잠이 번뜩 깨는데 반드시 모기를 한 마리라도 잡아야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다. 어두울 때 갑작스레 탁 불을 켜면 활공하던 녀석이 주춤 벽에 앉는데 찰나를 놓치지 않고 사면을 잽싸게 훑어보고 잡는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으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귀를 막고 대피하듯 자곤 했다. 숨이 막히고 온몸이 땀으로 축축해지더라도 말이다.


모기와는 꽤 오랫동안 숙적으로 지냈지만 세대를 바꿔가며 새로운 패기와 전략으로 무한히 달려드는 그들을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일이다. 날카로운 동체시력과 예민한 귀, 약간의 도구들로 이들을 섬멸하고 편안한 휴식을 만드는 것이 나의 오랜 임무다.


모기와 대치한 짧지 않은 시간만큼 다양한 도구들을 섭렵했다.

스프레이형 모기약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에도 여전히 자주 쓰기엔 내키지 않아서 가끔 손 닿지 않는 구석을 담당하는 정도로만 사용한다. 어릴 적 많이 사용한 훈증형 고체, 액체모기약 역시 화학물질을 공기 중에 계속 흩뿌린다는 사실 때문에 방출되었다. 모기향은 냄새도 배고 연기와 불똥 탓에 캠핑처럼 외부 활동 때 외엔 부적합이다. 큰 효능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빛으로 유인하는 포충기도 써봤는데 접촉하면 타다닥 타버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유인해서 벌레가 말라죽을 때까지 잡아두는 형태라 24시간 내내 켜놔야 했다. 미적으로나 효능으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퇴출.

우리 집 알루미늄 방충망이 성근지 여름에 방충망만 두고 창문을 열면 모기들이 저녁내 집안을 활보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신기패'는 분필처럼 생겼는데 방충망에 죽죽 격자모양으로 그어놓으면 한동안 집 안에 모기와 기타 날파리가 안 보이곤 했다. 허연 줄은 미관을 차치하고라도 가루를 묻혀둔 것이다 보니 비만 오면 씻겨 내려갔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매번 다시 그리거나 그냥 며칠 창문을 여는 식으로 마음먹어야 했다.

그렇게 최후로 남은 것은 전기 파리채 정도랄까. 감전문제 때문인지 예전에 비해 작동 버튼이 조금 복잡해졌지만-전원을 켜고 버튼 두 개를 동시에 눌러야 작동된다- 그래도 가장 손쉽다. 벽에 딱 붙는 게 아니라 테두리만큼 뜬 상태로 전선에 걸려 마비되는 식이라 잔뜩 피를 빤 모기도 벽에 핏자국을 남기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게 장점. 전선에서 튀는 작은 불빛을 보고 바닥에 탈탈 털어 떨어지는 모기 사체들을 치우다 보면 20마리, 30마리 그날의 전적을 되새기며 기쁨에 젖곤 했다.




모기 소리 노이로제로 모기장을 기피하는 나와 달리 아이는 안전우선이라 항상 모기장을 쳐두고 지냈다. 그러다 최근 방충망을 좀 더 촘촘한 걸로 바꾸면서 한동안 모기가 보이지 않길래 모기장을 치웠더니 그새 이 사단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모기들이 사라질 법한데 며칠 비가 오더니 건물 하수구 어딘가 있던 모기 유충이 자라 배관을 타고 올라왔나 싶다. 암컷 모기들만 알을 낳기 위해 흡혈을 한다는데 대체 알을 얼마나 낳길래 이러나 의아하면서 또 한편으론 나름 위험을 감수하는 모성애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도 새끼를 기르는 어미인 것을. 아이의 숙면과 평화를 위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어미는 연신 "아이고 허리야"를 외치면서도 기어코 모든 환기구와 배관에 남은 방충망을 잘라 끼우고 빈틈없이 모든 구멍을 차단해 버렸다. 두 모성애의 창과 방패 싸움. 계절이 바뀌고 해가 도 그치지 않겠지만 이젠 완연한 나의 승리이길 바래 본다. 이제는 부디.. Say good bye~!



이미지출처: Cameron Webb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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