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성준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엿새째 되는 날, 교실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여전히 같은 병뚜껑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도마 위에는 지난 연습에서 묻은 분필 가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대본을 펼친 채 무심히 서로의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자리 배치가 이제는 습관처럼 익었다.
“자, 오늘은 3막부터 하자.” 민수가 대본을 넘기며 말했다.
“또 여기야? 어제도 했잖아.”
“어제랑 오늘이 다르잖아. 어제보다 자연스럽게 해야지.”
“그게 연습이지 뭐.”
재훈이 몸을 풀듯 어깨를 돌리고 대사를 시작했다.
“용왕 폐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민수가 이어받았다. “하하하, 너는 이제 나의 요리가 될 것이다!”
예림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토끼가 이렇게 바로 웃는 이유가 부족해.”
“그건 대본에 쓰여 있잖아. ‘간을 노린 자라에게 복수한다.’”
“근데 관객이 그걸 알아야 하지 않아? 그냥 대사로만 전달하려는 것 같아.”
민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감정선 잡을 때 하자. 지금은 타이밍이 문제야.”
“타이밍?”
“응. 네가 들어올 때 내가 말 끝내야 돼. 초침 한 칸 쉬고 들어오면 딱 맞아.”
예림이 시계를 올려다봤다. ‘틱, 틱, 틱.’
초침이 교실의 숨소리처럼 일정하게 울렸다.
“그래도, 우리 너무 대사만 외우는 거 아니야?”
“뭐 어쩌겠어. 수행평가잖아. 채점 기준에 ‘주제를 명확히 전달할 것’이라고 쓰여 있더라.”
“그래서 우리 주제가 뭐야?”
민수가 대답하지 못했다.
재훈이 웃었다. “그냥 뭐, 노력하면 이긴다? 토끼랑 자라니까?”
“그건 경주 얘기잖아.”
“그럼… 배신하면 벌 받는다?”
“그것도 좀 애매한데.”
“그럼 우리 아무 말이나 하는 거야?” 예림이 말했다.
민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하자. 하다 보면 나오겠지.”
그들은 다시 같은 장면을 연습했다.
“자라, 무릎 꿇고!”
“용왕 폐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하하, 너는 이제 나의 요리가 될 것이다!”
이번엔 서로의 시선이 맞았다. 대사는 똑같았지만, 말의 속도와 손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졌다. 민수가 웃으며 말했다. “야, 이제 감정 좀 붙었는데?”
“계속하니까 그렇지.”
“지겹지 않냐?”
“지겹지. 근데 안 하면 점수 못 받아.”
시계의 초침이 ‘틱, 틱, 틱’ 하고 돌아갔다. 반복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움직임은 점점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다. 민수가 손바닥으로 도마를 톡톡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좋아, 이번엔 자라가 물러날 때 박자 딱 맞았어.”
“그건 내가 일부러 타이밍 늦춘 거야.”
“그게 좋았어. 약간의 쉼이 있으니까.”
“이젠 우리가 다 연출가네.”
“그럼 성준이 없어도 되겠네.” 재훈이 농담처럼 말했다.
민수가 잠시 멈칫했다. “그래도 있으면 좋지. 디테일 잡는 거 잘했잖아.”
잠깐의 정적.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예림이 조리대 위의 스펀지를 집어 들고 칠판 아래에 묻은 분필가루를 닦았다. 민수가 물었다.
“그걸 왜 지금 닦아.”
“그냥… 더러워 보여서.”
그녀는 힘을 주어 스펀지를 밀었다. 가루가 닦이자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재훈이 말했다.
“우리도 그거 같지 않냐.”
“뭐가.”
“계속해도 자국이 남는 거. 완벽하게는 안 되는 거 있잖아.”
민수가 대답했다. “그래도 해야지. 그게 연습이니까.”
잠시 뒤 재훈이 대본을 덮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로. 이걸로 뭘 전하려는 거야?”
예림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채점표에 있었잖아. ‘주제를 명확히 전달할 것.’ 근데 지금은 그냥 토끼랑 자라 싸우는 것밖에 없잖아.”
“주제를 정해야 점수 나온다는데.”
“그럼 뭐라고 쓰지?”
“용서?”
“복수?”
“협력?”
민수가 잠시 시계를 바라보다가 작게 말했다.
“몰라. 지금은 그냥 해야 할 것만 보여. 왜 하는지는 모르겠고.”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교실엔 시계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렸다. ‘틱, 틱, 틱.’
예림은 손에 든 스펀지를 조용히 조리대 위에 올려두었다. 물이 천천히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들은 다시 대본을 들었다. 같은 장면, 같은 대사.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서로의 눈을 보며 대사를 이어갔다. 마치 대답을 기다리듯, 한 문장 한 문장을 눌러 말했다.
“자라, 무릎 꿇고.”
“용왕 폐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하하, 너는 이제 나의 요리가 될 것이다.”
대사가 끝났는데도 아무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예림의 말에 민수가 짧게 웃었다.
“그러게. 성준이 오면 알려주겠지.”
벽의 시계가 또 한 바퀴를 돌았다. 초침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틱, 틱, 틱.’
교실은 조용했고, 물기가 마른 스펀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1) Encounter - 마주함
수동적 역할 수행의 시작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압박과 마주하는 일이다. 같은 규칙과 지시가 거듭되며 개인은 일정한 무게를 떠안게 된다.
반복되는 요구를 맞닥뜨린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개인은 동일한 지침을 수행하면서 점차 익숙해지는 동시에, 단조로움과 피로가 쌓인다. 예컨대 학생이 매일 같은 과제를 수행하거나, 직장인이 상사의 반복된 요구에 대응하는 모습이 그렇다. 이는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 되지만, 개인의 활력을 잠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반복과 압박을 직면하는 경험은 결국 자기 욕구를 미루는 단계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사람은 원하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맡겨진 일을 앞세우게 되며, 곧 욕구를 뒤로 미루는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
(2) Neglect - 도외시
압박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자기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채 뒷전으로 미루게 된다.
욕구를 미룬다는 것은 곧 자기희생이다. 하고 싶은 활동을 제쳐 두고, 맡겨진 역할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 학생은 놀이보다 과제를 우선하고, 직장인은 휴식보다 보고서를 선택한다. 이런 습관은 사회적 기능을 원활히 하지만, 장기적으로 불만과 스트레스를 축적한다. 욕구를 억제하는 훈련은 자기 조절 능력을 기르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반복되면 개인의 욕망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 위험이 있다.
욕구를 미루는 태도는 점차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결국 사람들은 책임을 미루고 상황이 흘러가기를 기다리게 되며, 이는 선택과 결정을 유보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3) Delay - 보류
욕구를 계속 미루다 보면,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을 뒤로 미루는 태도가 형성된다.
선택을 유보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감수하기보다 상황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이는 당장의 부담을 줄이지만, 자기 주체성을 약화시키고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학생이 진로 선택을 미루거나, 조직원이 새로운 도전을 뒤로 미루는 모습이 그 예다. 유보는 안전을 주지만, 동시에 책임을 타인이나 환경에 전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개인은 결정하지 않는 대가로 더 큰 압박을 떠안게 된다.
결정을 미루는 습관은 결국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마주하게 만든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며, 이는 불가피한 과정을 겪는 경험으로 연결된다.
(4) Undergo - 불가피
미루는 태도가 계속되면 결국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불가피한 과정을 겪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험을 치르거나 평가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절차다. 이런 경험은 개인에게 삶의 강제성을 일깨워 주지만, 동시에 무력감과 소진을 깊게 만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강제성은 개인에게 ‘결정하지 않아도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며, 수동성과 주체성의 간극을 드러낸다.
불가피한 과정을 감당하는 경험은 종종 내면에서 최소한의 저항을 일으킨다. 억눌린 불만이 작은 목소리로라도 드러나며, 이는 제한적 거부의 시도로 이어진다.
(5) Resist - 저항 시도
불가피한 과정을 겪는 중에도 사람은 완전히 순응만 하지는 않는다.
제한적 거부는 자기 목소리를 지키려는 마지막 몸부림이다. 학생이 불합리한 규칙에 불만을 표현하거나, 직장에서 작은 방식으로 항의하는 행동이 그 예다. 이 거부는 종종 효과가 미약하지만,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적 시도다. 제한적 거부는 때로 주변에 변화를 촉발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더 큰 압박을 불러올 수 있어, 거부 이후에는 자기 에너지를 관리하며 버티는 전략으로 이동하게 된다.
제한적 거부는 자율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지만 큰 변화를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사람들은 더 큰 소모를 막기 위해 힘을 조절하며 살아가게 되고, 이는 에너지를 아껴 지속하려는 태도로 발전한다.
(6) Economic - 효율화
반복, 욕구 억제, 선택 유보, 불가피한 과정, 제한적 거부를 거친 개인은 결국 ‘에너지 관리’를 배운다.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역할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소모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학생은 모든 규칙을 완벽히 지키려 하기보다 꼭 필요한 부분만 충실히 따르고, 직장인은 업무에서 핵심에 집중하면서 사소한 부분은 최소화한다. 이는 생존을 위한 효율적 방식이며, 소진을 늦추는 실질적 대안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동시에 한계를 가진다. 지나치게 에너지를 아끼는 태도는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힘까지 줄일 수 있다. 결국 에너지 관리 전략은 지금 당장은 생존을 돕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방향 전환(Pivot)을 요구하게 만든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태도는 수동적 역할 수행의 마지막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여기 머물러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오히려 이 상태는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만들며, 마침내 전환점으로 향하게 된다.
스펀지는 미세한 구멍이 촘촘히 이어진 구조 덕분에 겉에서 가한 압력을 받아들이며 형태를 잠시 바꾼다. 손으로 꾹 누르면 납작해지지만, 손을 떼면 서서히 공기와 물을 다시 들이켜 본래의 두께로 복원된다. 물기는 쉽게 흡수되었다가 짜내면 방출되고, 잠시 말려 두면 처음의 탄성을 거의 그대로 되찾는다. 다만 힘을 과하게 주거나 오래 눌러 두면 복원이 늦어지고, 이물질이 쌓이면 표면이 거칠어진다. 스펀지는 화려한 기계 장치가 아니라 흡수–완충–복원이라는 단순한 원리로 버티는 도구다.
역할을 견디는 과정도 이와 닮아 있다. 누구나 관계와 일의 현장에서 기대·마감·피드백 같은 압력을 받는다. 그때 우리는 스펀지처럼 감정을 한 번에 쏟아내기보다 상황을 흡수해 완충하고, 필요할 때는 말을 골라 방출한다. 회의에서 쏟아지는 의견을 받아 적고 정리해 내보내는 사람, 가정에서 다툼의 첫 감정을 받아 잠시 식히는 사람은 모두 ‘스펀지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찌그러짐—즉, 피로와 위축—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휴식과 경계 설정(말 그대로 “짜내고, 말려 두는 시간”)을 거치면 역할의 복원력이 커진다. 반대로 압력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 스펀지의 섬유가 상하듯, 사람도 역할이 영구 변형을 겪는다. 그래서 흡수할 것과 흘려보낼 것을 구분하고, 혼자 감당하지 말고 분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스펀지가 물만이 아니라 공기도 품듯, 우리는 사실과 감정, 요청과 거절을 각각 다른 속도로 다뤄야 한다.
역할을 스펀지처럼 이해하면, 잘한다는 뜻이 언제나 앞장서 싸우는 능동성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들어올 땐 충분히 흡수하고, 넘칠 땐 제때 짜내고, 틈날 땐 말려 두는 루틴—휴식, 기록, 동료와의 분담, 경계의 문장—을 갖추는 일이다. 이 관점은 두 가지를 선명하게 한다. 첫째, 버팀은 패배가 아니라 기능이며, 복원은 훈련될 수 있다. 둘째, 스펀지에도 한계가 있듯 역할에도 용량이 있다; 과부하 신호를 읽고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결국 역할의 성패는 누구보다 크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얼마나 잘 흡수하고, 적절히 방출하며, 다시 회복하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