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대로 살기
성준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사흘째가 되자 교실의 공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달라졌다는 건, 오히려 아무 변화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대사를 읽고, 같은 장면을 되풀이했다. 칠판에는 ‘연극 배역 확정’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도마 위에는 여전히 병뚜껑 네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민수가 도마를 살짝 옆으로 밀며 말했다.
“야, 이번엔 이쪽 동선으로 바꿔보자.”
재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럼 대사 순서 꼬여.”
“괜찮아. 그냥 해보자니까.”
“그냥 또 하자고?”
“어.”
민수는 대본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줄을 짚었다.
“토끼: ‘너는 내 간을 탐했지. 이젠 내가 너를 요리하겠다!’ 자, 이 부분부터.”
재훈이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제는 입에 붙었어. 계속 이 대사만 하잖아.”
“그럼 완벽하잖아.”
“완벽한 게 아니라 지겨운 거야.”
예림이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그래도 해야지. 점수는 받아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작하자. 토끼 등장.”
재훈이 자라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용왕 폐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민수가 대본을 따라 읽었다.
“토끼: 하하하, 너는 이제 나의 요리가 될 것이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예림이 입을 열었다.
“이상하지 않아? 여기서 갑자기 웃는 게.”
민수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긴 한데, 그냥 그렇게 하자.”
시계가 ‘틱, 틱, 틱’ 하고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대사 사이를 메우는 배경음처럼 일정하게 이어졌다. 하루 동안 그들은 같은 장면을 반복했고, 대사를 틀릴 때마다 민수는 “다시”, “한 번 더”, “이번엔 제대로”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제대로”가 어떤 뜻인지, 아무도 확실히 몰랐다.
다음 날, 재훈이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왔다. “또 이거야?”
“또 해야지.” 민수가 시계를 힐끗 보며 말했다. “이제는 그냥 하다 보면 되겠지.”
예림이 의자에 앉아 대본을 폈다. “성준이가 고치려던 부분 있잖아. 여기.”
그녀가 붉은 펜으로 남겨진 글씨를 가리켰다. ‘이 장면, 이유가 약함. 토끼의 웃음 수정 필요.’
민수가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냥 놔두자. 지금 바꾸면 헷갈릴 거야.”
“근데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어.”
“모르면 그냥 하자. 우리는 일단 해야 하잖아.”
그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시간이 되면 같은 장면을 연습했다. 시계의 초침은 변함없이 돌고, 그들의 목소리는 같은 박자로 이어졌다.
“자라, 무릎 꿇고!”
“용서해 줘.”
“하하하, 너는 이제 나의 요리가 될 것이다!”
정적이 흐르고, 민수가 대본을 넘긴다.
“좋아, 다음.”
그들은 웃기도 했고, 실수하면 서로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대사는 익숙했지만, 연극은 여전히 낯설었다. 움직임이 있는데, 그 움직임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마치 시계 초침이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것처럼, 연습도 제자리를 맴돌았다.
“시간 다 됐다.” 민수가 시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벌써?” 예림이 물었다.
“응. 3시 반. 오늘도 이 정도면 됐지.”
“내일 또 해?”
“그래야지.”
그녀는 시계를 한참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민수가 묻자, 예림이 대답했다.
“이렇게 계속하는데, 아무것도 안 변해.”
민수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해야지. 성준이가 없다고 멈출 순 없잖아.”
재훈이 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야, 저거 소리 너무 크다. ‘틱틱틱’— 하루 종일 듣다 보면 미칠 거 같아.”
“시계는 연습 안 해도 잘 돌아가잖아.” 예림이 말했다.
재훈이 짧게 웃었다. “그래서 더 짜증 나.”
민수가 교실 문을 닫았다. 소음이 사라지자 시계 소리만 남았다. ‘틱, 틱, 틱.’
그 리듬에 맞춰 그들의 말과 동작이 이어졌다. 같은 대사, 같은 표정, 같은 장면. 하루의 끝이 오면 모두 대본을 덮고 말했다.
“내일 또 해.”
“그래야지.”
그날도, 시계는 같은 속도로 초침을 움직였다. 교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시계 소리만은 계속 이어졌다. ‘틱, 틱, 틱.’ 마치 대본 속 대사가 다시 울리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도 장면은 그대로였다.
(1) Latch - 의탁
개인은 사회가 마련한 구조에 자연스럽게 기대어 살아간다. 이 구조는 안전과 방향을 주지만 동시에 개인을 특정 궤도로 유도한다.
구조에 스스로 맞춰 걷는 것은, 주어진 제도와 관습에 자신을 의식적으로 맞추는 것이다. 학생이 진학 코스를 당연하게 따르거나, 직장인이 승진 체계를 수용하는 모습이 그 예다. 이는 소속감을 제공하지만, 개인이 스스로의 길을 찾을 여지를 줄인다.
구조에 의탁하는 선택은 출발의 안정성을 주지만, 곧 기대된 행동을 반복적으로 모방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2) Imitate - 모방
각본은 단지 존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개인에게 구체적 행동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를 따라 하며 집단의 기대에 부응한다.
모방은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을 그대로 재현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성실히 공부하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직원이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태도’를 흉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안정과 인정으로 이어지지만, 자기 내면의 욕구는 억눌린 채 집단의 기준이 우선된다.
모방은 질서를 유지하지만 개인의 자율성을 줄인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따르는 행동이 규범에 맞는지 확인하려는 단계로 나아간다.
(3) Verify - 확인
반복된 모방은 결국 규범과의 일치 여부를 점검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개인은 자신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려 한다.
규범 확인은 집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다. 시험 성적이 기준에 맞는지, 업무 성과가 기대에 부합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한다. 이는 안전한 정체감을 제공하지만, 자기 평가보다는 외부 평가에 의존하게 만든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적 성찰 능력을 약화시키고, 타인의 기준에 종속된 삶을 강화한다.
규범 확인은 안정감을 주지만 내적 자율성을 축소한다. 결국 이 흐름은 사회가 짠 각본을 그대로 실현하는 Enact 단계로 이어진다.
(4) Enact - 수동 실행
각본의 마지막 단계는 규범을 검토하는 수준을 넘어, 그 각본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실행은 사회가 짠 시나리오를 개인의 삶 속에서 재현하는 과정이다. 학생은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각본을 수행하고, 직장인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각본을 충실히 따른다. 이는 집단이 요구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만, 동시에 개인의 고유한 선택과 가능성을 크게 제한한다.
각본대로 실행하는 경험은 질서를 완성하지만, 자율성을 약화시킨다. 이처럼 각본적 삶은 안정과 질서를 주지만 동시에 무게로 다가오며, 개인은 이를 견뎌야 하는 경험으로 인지하게 된다.
시계는 멈추지 않고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는 도구다. 안쪽에서는 태엽이나 건전지가 동력을 공급하고, 그 힘이 기어와 축, 톱니, 베어링을 거치며 정해진 경로로 전달된다. 톱니 하나의 이 모양과 간격, 스프링의 장력, 초침·분침·시침의 길이가 서로 맞물릴 때에만 바늘은 흔들림 없이 제 시간을 가리킨다. 방향을 바꾸거나 임의의 속도로 달릴 자유는 없다. 이스케이프먼트는 과한 힘을 일정한 박자로 잘라 내고, 진동추나 수정발진자는 오차를 미세하게 바로잡는다. 겉에서 보면 그 움직임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부드럽지만, 실제로는 오차를 최소화하려는 규칙의 연쇄가 시간을 밀고 있다.
역할도 이런 시계와 닮아 있다. 개인은 장면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존재하는 규칙과 리듬 속에서 움직인다. 회의의 발언 순서, 보고의 형식, 고객 응대의 톤, 가정의 약속 같은 것들이 각각의 톱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자신의 ‘칸’을 찾아 반복적인 동작을 수행한다. 때로는 삶이 저절로 굴러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정해진 간격에 맞춰 말을 고르고, 표정을 조절하고, 결정을 내린다. 오차가 커지면 관계라는 톱니가 헛돌고, 역할을 과하게 밀면 이스케이프먼트처럼 주변에서 속도를 잘라 낸다. 반대로 리듬을 익힐수록 우리는 작은 조정—말의 간격, 침묵의 길이, 정보의 양—만으로도 장면을 매끄럽게 돌릴 수 있다. 겉으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듯해도, 실제로는 구조가 허락한 범위에서 수동적 반복을 수행한다는 점이 시계와 역할의 공통점이다.
따라서 역할을 시계처럼 이해하면, 삶이 전적으로 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체념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이다. 내가 막혔을 때는 의지 부족만을 탓하기보다, 지금 장면의 리듬이 무엇인지, 어떤 톱니와 맞물려야 하는지, 어디에서 오차가 생겼는지를 먼저 본다. 그리고 미세 조정으로 접근한다—말을 한 박 늦추거나, 보고 순서를 바꾸거나, 권한에 맞게 결정을 축소·확대한다. 그럴수록 ‘사는 듯 보이는’ 표면의 움직임 뒤에서 역할의 수동성을 알아차리고, 동시에 그 수동성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자율의 폭을 배운다. 결국 우리는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구속 사이에서, 시계공처럼 톱니를 손보고 박자를 맞추며 삶을 굴린다. 이 관점은 ‘잘 살아간다’는 것을 거창한 돌파가 아니라, 정확한 구조 인식과 꾸준한 조정의 결과로 이해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