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될, 태도에 관하여

사서일기_20251117_입사 403일차

by 천유

짧은 경험으로 감히 속단하자면, 사서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뚜렷하게 나눠진 편이다. (다른 직종은 잘 모른다.) 비정규직은 대출, 반납, 서가 정리, 이용자 응대, 도서관 실제 운영에서 조금 확장되면 큐레이션까지 하고, 정규직은 수서,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 대외 협력 등 전반적인 기획과 관리를 맡고 더 많은 책임을 진다. 관마다 다를 수 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일찍이 간파하고 나니 '의욕적으로 해봐야 잡일만 늘어나지' 하는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했길래 실망해서 냉소적으로 변했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정규직이 되고 싶었나?

혹시 될 수 없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 내지는 질투가 아닐까?

아니면 스스로 선을 긋고 한계를 정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과연 '모든' 곳이 '다' 그럴까?

겨우 몇 곳에서 짧게 일해 보고 전부 다 그렇다고 치부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같이 일하는 선생님 중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온 분이 있다.

신참자답게 열정 가득, 의욕 뿜뿜, 야무진 일처리로 보는 사람이 다 흐뭇할 정도였다.

이 선생님은 도서관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일을 대하는 자세, 즉 태도가 달랐다. (물론 생초보일 때는 나도 그랬던 것 같지만)

불평할 짬이 안 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열심히 배우고 맡은 일을 잘 수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선생님들도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특강 같은 거 있으면 기획서 제출해 보세요."

팀장의 말을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그녀는 기획서를 두 건이나 제출했고 두 건 다 통과되어 자기 이름을 걸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온전히 혼자서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한 경험은 귀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올려서 어필할 수 있는 사항이고.


일하긴 싫지만 그녀의 성취가 부러웠다.

이게 무슨 심보야 싶지만 솔직히 그랬다.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 스스로 한계를 긋고 안주하는 나 자신이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나서서 할 성격은 또 절대 안 되지만, 이용자 응대 업무를 천시(?)하는 암묵적인 분위기 속에서(내 개인의 자격지심 내지 열등감일 수도 있다)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애초에 '왜 사서가 되고싶었을까?' 생각해보면 또 할 말이 없다.

솔직히 사서가 되어 이루고 싶은 목표 의식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초반엔 데스크에조차 앉지 못하고 하루종일 배가만 하는 일이어도 원래 그런가보다 했고, "데스크 직원들이 왜 책을 보고 있냐!"는 민원이 들어왔을 때도 이용자의 인식에 절망적이긴 했지만 뭐 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니 일할 수 있음에 적당히 만족하고 다니면 될텐데, 내가 하는 일이 가볍게 여겨지는 것이 불쾌한 건 뭘까?


정규직 사서들은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 책만 대출해 주는 곳'이라거나 '사서는 대출 반납이나 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회적인 인식이 그래서인지 데스크에서 이용자를 응대하는 일을 꺼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동급 취급받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같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해한다.


개관연장사서를 모아 놓고 업무 열정을 고취시킨답시고 "이 도서관에서 제일 친절한 사서가 되겠다!" 같은 목표 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너무 옛날식 아닌가? '친절한' 사서라니... 그놈의 친절... 개관연장사서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가 '친절한' 사서라니... 내가 너무 꼬인 게 아닌가 싶지만 좀 그렇다.


하지만,

때론,

그래도 도서관의 기본은 지식의 결정체라고 일컫는 책일 텐데, 이용자와 만나는 데스크 업무가 중요한데, 그 업무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경시하는 현 시스템과 도서관인의 '인식'이 아쉽기도 하다.


개관연장사서직보다 순회사서직이 같은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여기저기서 홀대받기는 마찬가지지만, 업무를 배우고 경험하는 측면에서는 더 낫다고 하는 분도 있다.


현실이 어떻든,

'될 놈은 어떻게든 된다'고들 하지만,

그 될 놈은 결국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태도가 다른 나는 '안 될 놈'이 아닐까 싶고,

뭔가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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