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우울증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갑가지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쳐들어왔다.

by 아침뱃살

갑자기 찾아왔다. 예고도 없이 쳐들어왔다. '그놈'말이다. 지면이라서 그나마 '놈'이라고 완화해서 표현하겠다. 친구를 만나서 '그놈'에 대해 얘기한다면 세상의 모든 추한 단어를 사용해서 '욕'해주리다. 어쨌든 여기서는 '그놈'이라고 하자. 그놈은 제 발로 찾아오면서 자기소개조차 없었다. 생면부지였지만 나는 단번에 그놈이 누군지 알아챘다. 성은 '우'요. 이름은 '울증'이다. 어느 누구라도 알아채리라.


우울증과 마주친 그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20년 9월 11일 금요일이다. 하필 911 테러 19주년이다. 나의 내면에도 무서운 '테러'가 일어나다니... 내 모든 정신과 육체가 110층 세계무역센터(WTC) 무너지듯 한순간 주저앉았다. 빌딩 속에 열심히 일하던 '기쁨이들'은 모두 몰살되었다. 단언컨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듯하다. 한 명이라도 살았다면 이렇게 우울하지 않았으리라. '우울'이라는 불길이 타오른다. 소방수조차 보이지 않으니 희망이 없었다. 테러범은 여러 명으로 추정만 된다. 주범은 누군지 명확히 알고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자책하는 '나'이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이래서 우울 늪에 빠진다는 표현을 하나보다.


나이 마흔에 처음 만난 우울증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동안 인생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용케도 이겨냈다. 한줄기 희망이라도 보이면 치열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마음의 양상이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다르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또 찾고 싶지도 않다. 이겨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이 더러운 느낌. 그리고 무서운 감정.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첫날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게 알았다. 절대 '의지'하나만 가지고 우울증을 이겨낼 수 없다.


내가 나에게 당황스러워하니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인터넷 바다에서만 관련 정보를 찾아본다. 우울증의 원인은 뇌에 있는 화학물질 '세로토닌' 부족이란다. 원인을 알면 뭐하랴. 이러한 의학적인 정보는 우울이라는 늪에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술적으로 우울증을 공부하고 싶진 않다. 우울증이라는 녀석이 왜 나에게 찾아왔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우울증을 초래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공황증을 불러온다" 그렇나. 나는 지금 나의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하고 있다.


몇 달 전, 회사 인사팀에서 A팀을 갈 거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A팀은 회사에서 소위 날 나가는 권력 부서이다. '왕관을 쓰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다. 권력 부서인 만큼 업무량도 매우 많다. 예전에도 한번 근무했던 부서였기 때문에, 이번엔 조금 '여유'있는 부서로 가겠다고 손들었다. 주위에서는 '미쳤다'라고 했다. 파워 있는 부서에 가서 열심히 일해도 승진하기 힘든 게 요즘 회사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발'로 '한가한' 부서를 찾아간다니 이상하게 생각했다. 권력의 크기가 회장님과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대 원칙에 따르면 나의 선택은 '상식'이 아니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찍혔다.' '그래! 맛 좀 봐라'라는 생각이었는지 정말로 '한가한' 부서로 발령받았다. 나이 마흔에 나는 퇴직을 앞두고 있는 선배들이 가득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바로 옆자리에서 퇴직을 앞두고 계신 분이 만화책을 보고 계셨다.


한숨이 깊어진다. 아등바등 일해도 승진할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또 승진이 코앞인데...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동기들은 서로 파워 있는 부서로 가려고 '으샤! 으샤!'하고 있는데... 옆에 계신 분이 "이 과장, 밀렸구나. 왜 여기 있어?"라는 말을 툭 던진다. 그 옆에 계신 분은 한술 더 뜬다. "이 과장. 예전에 A부서에서 일했다는 데, 안 부른 거 보니 일을 못했나 봐" 나는 마음속으로 '나도 A부서 갈 수 있었다고요! 다만 내가 선택을 하지 않았을 뿐이에요!'라고 외쳤다. 무슨 소용이랴. 현실은 여기에 앉아 있는데...


그렇다. 우울증은 이렇게 찾아온다. 상기의 사례를 보면 제삼자의 눈에는 '아주 사소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에게는 '매우 큰 문제'이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왜 내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나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육체를 집어삼킨다. 주변 친한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도 공감 따위를 받을 수 없다. 우울증 환자에게 "의지가 박약하다. 힘내서 이겨봐!"라는 말은 최악이다. 차라리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들어주기만 해도 감사하다. 물론 징징 짜 대는 말을 들어주기는 쉽지 않다.


"비록 자신의 선택으로 원하지 않는 부서에 갔더라도, 앞으로 열심히 해서 원하는 부서로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이성적인 생각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못한다. 그렇게 생각을 못하니 그게 병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만이 느끼는 큰 고통에 빠져있다. 본인 의지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우울증이 찾아온 걸 알아차린 첫날이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새벽에 나 혼자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들을 시원하게 토하고 싶어 진다. 내뱉어서 사라지는 말이 아니라 글로 기록하고 싶다.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 우울증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곳이 좋은 곳은 아닐 테다. 벼랑 끝일 수도 있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모태신앙이다. 그러나 기도는 하루에 1분 이상 해본 적이 없다. 성경은 봐야 할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했다. 주일 예배는 꼬박 가긴 했다. 설교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나는 '날라리' 크리스천이다. '가짜' 크리스천이라고 하자. 창세기는 구약에 속해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 전도서 등은 구약인지 신약인지 모르겠다. 그랬던 나다.


우울증 늪에서 누구도 나를 건져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 소파 앞에 성격책이 눈에 띈다. 한번 펼쳐본다. 전도서 3장이다.


1.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정한 때와 기한이 있다.

2. 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거둘 때,

3. 죽일 때와 치료할 때, 헐 때와 세울 때,

4.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5. 돌을 던질 때와 돌을 모을 때, 포옹할 때와 포옹하지 않을 때,

6. 찾을 때와 잃을 때, 간직할 때와 던져 버릴 때,

7. 찢을 때와 꿰맬 때, 침묵을 지킬 때와 말할 때,

8.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할 때와 평화로울 때가 있다.


그렇다. 사람에게는 때가 있다. 전도서 3장에 따르면 나는 지금 '우울할 때'이다. 언제 '기뻐할 때'가 온단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끝이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겠다. 언젠간 우울증 터널 끝에 서 있는 날도 있으리라. 그때의 나에게 이 글을 써본다. 바라건대, 혹여나 우울증에 빠진 다른 이들도 이 글을 보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어두컴컴한 거실 한편 소파에 앉아 있다. 내가 한 선택이 후회스럽다. 우울하다. 과거는 바꾸지 못한다. 더 우울하다. 이 우울함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우울하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해야 할까. 누구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할까. 정말 모르겠다. 다만 성경책이 보인다. 한 번도 자발적으로 펼쳐보지 않았던 성경책이다. 오늘은 우연히 전도서 3장을 봤다. '세상에 모든 일은 다 정한 때와 기한이 있다'


우울증의 유통기한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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