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우울증이 걸리면 잠을 못 잔다.
원래 우울증이 걸리면 잠을 못 잔다. 식욕도 사라진다. 나는 정반대다. 잠이 들어 깨어나기 싫다. 물 먹은 스펀지 마냥 몸이 침대 속으로 푹 꺼진다. 잠에서 깨어 의식이 들어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우울'해진다. 그래서 계속 잠을 자고 싶다. 깨고 싶지 않다. 꿈속 가상 세계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 인터넷 검색 후 알았다. 나는 '비전형 우울증'에 걸렸다. 사람들과 말할 때 웃고 떠들지만, 내면은 우울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유튜브에서 어느 우울증 환자는 "웃고 떠들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 혼자서 밤새 펑펑 울었다"고 말한다. 십분 공감한다. 왜냐면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오늘은 오후 1시까지 잠을 잤다. 중간중간 잠을 깼지만 다시 잠들도록 나를 재촉했다. 그래야 우울증을 망각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나의 존재를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연예인과 재벌들이 프로포폴 마취유도제를 맞고 잠이 든다는 뉴스를 종종 본 적 있다. 이해가 간다. 그 사람들도 많이 힘들었구나. 내가 마음이 아프니까 깨달음이 하나 있다. 주변에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우울증'으로 검색하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공감 간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당신은 얼마나 아플까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도 몇몇 있다. 그때 그 상황에서 그분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에잇!
우울증.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오른다. 떨쳐내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하긴 내 의도대로 생각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게 '병'이겠는가. 그것이 불가능하니 병원도 가고 약도 먹는 거겠지. 힘들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 도저히 혼자서 이겨낼 자신이 없다. 스마트폰을 꺼내 주변 정신과 병원을 찾아본다.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내가 피부과, 치과, 내과는 가봤어도 '정신과'를 가려고 하다니... 요즘은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많고,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지만 쉬이 내키지 않는다. 숨이 안 쉬어진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는데?'
결국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우선 우리 동네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에 글을 남겼다. '님들 정신과 병원 추천 부탁드려요' 순식간에 댓글이 수십 개나 달린다. 마음이 아팠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10개의 정신과 병원을 추천받았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큰일 나겠다. 무조건 오늘 진료를 받아야겠다. 용기를 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한 병원에 전화했다. 마음을 평안하게 만드는 전화 연결음이 들린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런 음악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간호사가 친절하게 전화를 받는다. "너무나도 힘든데요. 오늘 진료가 가능할까요?" 간호사가 즉답한다. "예약이 다 찼어요. 가장 빠른 예약 날은 다음 달 말입니다" 역시 사람들이 추천을 많이 한 병원은 바쁘구나. "다음 달까지 못 기다릴 것 같아요"라고 말을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한국에 많고 많은 게 병원 아닌가. 다음 병원에 전화했다. 똑같은 답변이다. "다음 달까지 예약이 꽉 찼습니다" 그다음 병원에 전화한다. 역시다! 10군데 모두 전화했다. 한결같이 예약이 많아 오늘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뭐야! 우리 동네에 힘든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분명 길을 걷고 있으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 안면에 웃음꽃이 가득 폈었는데. 설마 그 사람들도 모두 '비전형 우울증'이란 말인가! 모두들 저렇게 웃고 떠들면서 집에 들어가면 나처럼 펑펑 우는 건가. 순연 창밖 길 걷는 사람들에게 '동지애'가 생겼다. 의학적인 도움은 조금 미뤄보기로 결정했다. 조금만 참아보자.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온몸에 기력이 없다. 팔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땅 속으로 푹 꺼지는 기분이다. 머릿속은 부정적인 생각 회로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너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넌 이제 끝장이야' 거실에서 혼자서 크게 외친다. "Stop thinking!!!!!" 가족들이 놀라지도 않는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 이렇게 외쳐댔기 때문이다. 5학년 아들 녀석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아빠 점점 심해지나 봐!" 1학년 아들도 덧붙인다. "아빠 저러다가 죽는 거야?" 두 아들 걱정도 우울증에 허우적거리는 아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어쩌랴. 그게 바로 우울증인데...
"Stop thinking!!!!" 또 큰소리로 외쳐본다. 안 되겠다. 책이나 읽어야겠다. 우리는 한 달 전에 이사 왔다. 아직 이삿짐을 풀지 않았다. 이사 박스 하나에 책들이 몽땅 담겨있다. 박스에 손을 넣어 아무 책이나 꺼낸다. 전 주중대사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의 대사'라는 제목의 책이다. 참 신기하다. 또 기독교 책이라니. 책은 총 3권인데, 손에 집은 건 1권이었다. 책을 펼치자 나도 모르게 3권까지 찾아 읽었다.
"너는 두려워말고 겁내지 말지어다. 내가 이미 너의 기도를 들었으며 너의 간구를 해결해 줄 것이니 너는 아무런 염려도 하지 말지어다. 너는 단지 기도하라. 그리하면 다 해결될 것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그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나도 김하중 장로님처럼 기도로 삶을 바꿀 수 있을까?' 하루에 10초도 기도 하지 않았던 나다. 우울증이 무섭긴 하다. 모든 도움을 다 받고 싶다. 기도도 하나의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주변에 도움을 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병원 예약조차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 우울증 걸린 사람이 얼마나 이성적일 수 있을까. 우울증 늪에서만 빠져나갈 수 있다면 뭐라고 못하겠나.
책에는 김하중 장로님의 삶이 담겨 있었다.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묻고 순종했다. 하나님은 그의 길을 인도하셨다. 나도 기도하면 내 삶도 바뀔까. 적어도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지 않을까. 적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말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하루에 30분 이상 기도하자고 말이다.
1분 이상 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기도하는 첫날은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말만 30분 동안 반복했다. 눈물이 났다.
기도하는데 어울리지 않게 가수 윤복희 노래가 생각난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그렇다면 "내가 우울할 때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Bessi님의 이미지 입니다.